▲ 지리산 남부능선에서 바라본 거림골
고태규
남부군의 주요 비트(비밀 아지트)가 남부능선 동쪽 사면에 있는 거림골(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에 있었기 때문에 토벌대에 쫓길 때마다 남부능선을 타고 세석평전을 넘어 백무동 쪽으로 도망가거나, 대성계곡을 거쳐 빗점골과 토끼봉을 지나, 뱀사골 방향으로 피신하곤 했다. 그러다가 토벌대들이 철수하면, 다시 거림골로 돌아가곤 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나중에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는 보급 투쟁도 나갈 수 없어서 식량이 떨어져, 5~6일 만에 한 끼씩만 먹고 지리산 능선과 계곡을 넘나들었다. '불굴의 전사'라는 말은 허울 좋은 이름뿐이었고, 피골이 상접한 거지 중의 상거지가 되었다. 한겨울에 다 찢어진 고무신을 신고, 발을 광목과 전선줄로 동여맨 채, 토끼몰이 당하듯 이리 몰리고 저리 쫓겨 다녔다. 고무신조차 없는 사람들은 동상 걸린 맨발에 헝겊을 동여맨 채,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을 넘나들었다.
하룻밤에도 몇 번씩 주능선을 이쪽저쪽으로 넘나들면서, 생사를 가르는 고비를 넘기다 결국 모두 지리산의 혼백이 되었다. 그들은 남북한 양쪽으로부터 모두 버림을 받고, 토벌대의 총에 맞아 죽거나, 동상에 걸려 얼어 죽거나, 배가 고파 굶어 죽어갔다. 생포되거나 귀순한 사람들도 많았다. 빨치산 중에는 10대에서 20대까지 여성들도 많았다.
세석대피소에서는 햇반과 초코파이만 팔았다. 초코파이 5개를 사고, 커피를 다 마신 캔에는 물을 담았다. 이걸 먹으면서 대성계곡을 거쳐 의신마을까지 내려가야 한다. 약 4~5시간 코스다. 이 코스는 빨치산 뿐 아니라, 조선시대 사대부들도 화개 쌍계사로 갈 때, 자주 이용했던 코스다. 남효온(1487년 9월 27일 ~ 10월 13일, 지리산일과), 김일손(1489년 4월 14일 ~ 4월 28일, 두류기행록), 유몽인(1611년 3월 29일 ~ 4월 8일, 유두류산록) 등이 이 경우이다.
▲ 지리산 야생화 산수국(대성골)
고태규
전체 9.1킬로미터 중 남부능선 삼거리에서 큰세개골(대성골 상류) 구간은 정말 최악의 등산로였다. 내려오는 길인데도 짜증이 절로 났다. 이렇게 험한 등산로는 본 적이 없다. 요 며칠 폭우로 등산로가 다 패여서 한 발 한 발이 스릴이었다. 이 코스는 평소에도 지리산 등산로 중에서 가장 험한 코스로 유명하다. 난이도 별 5개중 4.5개, 백무동-세석평전은 별 4개, 중산리-천왕봉은 별 3개(정선중, <지리산여행> 참조)다.
두 가구가 민박을 하는 대성마을을 거쳐, 오후 4시 경에 의신마을로 내려왔다. 의신마을 위쪽에 있는 삼정마을 빗점 부근에는 전설적인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마친 장소가 있다. 나는 걸어서 국토종단 여행할 때인 2013년 1월 1일, 지리산에 흰 눈이 쌓인 날, 아내와 함께 마천면 음정마을에서 벽소령을 넘어, 삼정마을을 거쳐 의신마을로 내려왔었다. 그때 그 곳을 한번 찾아가려 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다. 언젠가는 꼭 한번 찾아가서 향을 피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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