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 빠진 비빔만두의 양배추는 훌륭했다.

[나도 이번 생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비교를 걷어 낼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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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한(raintouch)등록 2020.10.06 10:50
비빔만두로 손이 향한다. 맛나다. 만두도 적당히 튀겨졌고 양배추도 아삭한 게 식감이 좋다. 그 옆에 차려진 치킨 샐러드는 적당히 차갑고 신선하다. 그리고 간간히 입에 넣는 문어숙회가 부드럽게 뒤섞인다. 뚝딱. 그렇게 또 한 끼를 감사히 먹었다.

그런데 먹고 나니 비빔만두에 있던 양배추가 많이 남았다. 만두랑 먹는다고 먹었는데도 좀 밀렸나 보다. 다 버리는 게 아까워 한 젓가락 덜어서 입에 넣고 치우려는데, 이게 뭐지? 왜 이렇게 맛있지? 신선함과 감칠맛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아!

조연이 주연으로

"이거, 너무 맛있어!"

뜬금없는 고백에 갸우뚱 하는 아내. 원래 맛있었다며 부담스럽게 반짝이는 내 눈을 멀리했다. 아니다. 나는 분명 아내가 표현하는 맛있음 그 이상의 맛을 느꼈다. 분명 이 맛이 아니었는데, 양배추는 신선함을 넘어 선 그 무엇을 향하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갑자기 맛있어진 거지? 그새 내 입맛이 변했나? 숙성이 됐나? 한 동안 추리를 펼치던 나는 마침내 한 지점에 도달했다.

"범인은 이 안에 있었다." (두둥)

만두. 만두 때문이다. 만두 때문에 이 맛을 못 느꼈던 거다. 잘 튀겨진 만두 속 고소한 맛이 진해, 양배추의 아삭함과 담백함을 덜 느꼈던 거다. 와우. 나도 몰랐던 셜록의 기운이 퍼진다. 사건이 해결된 듯 하지만 추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범인은 혼자가 아니었다." (두두둥)

문어숙회. 이 녀석도 공범이다. 고소한 기름장으로 치장을 하고 살짝 언 차갑고 부드러운 맛으로 내 혀를 현혹시켰다. 그렇게 비빔만두 속 양배추의 존재감을 희석시켜 버렸다. 불쌍한 양배추. 이제야 빛을 발하다니.

 

양배추 만두와 떼어 놓으면 나름 괜찮은... ⓒ 남희한

 

느닷없는 깨달음

밥 먹다 알게 됐다. 맛은 상대적이라는 걸. 그래서 비교하지 않으면 각각이 충분히 더 맛있을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생각은 뜬금없이 다른 데로 뻗어 나간다. 만두와 있으면 잘 알 수 없는 버무려진 양배추처럼, 나도 다른 것과 비교하지 않으면 나름 감칠맛 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어쩌면 나도, 비교를 걷어 내면 조금은 더 괜찮은 사람일지도..'

대다수의 만두 같은 비교대상들은 따지고 보면 편집된 복합체다. 수많은 재료로 속을 채우고 깔끔한 만두피로 예쁘게 싼, 맛깔스럽게 편집된 복합체. 우리는 이런 편집된 이미지와 비교를 한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맛있으라고 그 번잡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거니까. 하지만 터질 것 같은 만두의 속사정은 모르고 잘 어울리는 맛난 재료만을 넣고 마지막을 예쁘게 장식한 그들과 자꾸 비교한다. 있는 그대로도 아삭하고 순수하게 달콤한 자신도 충분히 훌륭한데도 말이다.

대학시절, '공도 박솔미'라는 애칭을 가진 단아한 학생이 있었다. 누가 봐도 어여쁜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저런 애칭이 붙고부턴, 어여쁜 여학생이 박솔미 보단 예쁘지 않은 여학생이 돼 버렸다. 말 한번 걸어보지 못할, 자신감 없는 뭍 남성들의 정신승리를 위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잣대를 세워 버리니 평가가 변해버렸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꾸 쳐다본다는 거였고, 우연히 마주치면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는 거였다. 박솔미를 떼 놓고 보니 넘사벽이었던 거다.

메인이 아니어도 좋아

슬프게도 나는 누구를 떼 놓고 봐도 넘사벽은 아니다. 쉬운 남자다. 누구나 이리저리 찔러볼 수 있을 정도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남자. 다시 말해 그게 유일한 매력인 남자다. 부담 없는 남자.

그런데 비교를 시작하면 '부담' 없는 남자가 '별 볼 일' 없는 남자가 되어 간다. 언론 매체나 SNS를 들여다보는 순간부턴 세상의 보이지 않는 점이 되어 있다. 작디작은 티끌이 될 때도 있고. '나'라는 존재가 사라지는 무아의 경지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다 스스로 시작해 더 속상한 마음에, 스스로의 한 숨으로 자신을 날려 버리기 일쑤다.

내가 비빔만두의 양배추와 같은 사람이라면 비록 메인은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 이름에 들어갈 일이 없는 것이 속상할 때도 있겠지만 나름의 맛을 낼 수만 있다면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어디 만두라고 항상 메인이겠는가. 튀김의 세계로 들어서면 만두는 가장 뒷전이 된다. 그 맛있게 잘 빗어진 만두도 고추튀김과 야채튀김 앞에선 힘을 잃고 마는 거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임)

아무튼 비빔만두의 양배추 덕분에 나에 대한 부심이 조금 생겼다. 그래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굳이 비교하지 않고 나를 스스로 평가해 본다. "제 점수는요~"

"나름 괜찮음!"

적당히 만족스럽다. 

만두 빠진 비빔만두를 먹다가 여기까지 와버렸다. 뜨고 있는 세간의 뉴스도, 가슴 설레는 사랑 얘기도, 흥미진진한 판타지도 아닌 심심한 양배추 이야기지만, 이 글 하나만 놓고 보면 내게 있어 무엇보다 흥미롭고 진지한 이야기다. 나름 인생 작인 거다.(웃음)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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