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군기지가 들어서기 전 구럼비 바위와 할망물의 모습
강정 평화센터 재건립 추진위원회
다른 시간, 다른 공간.
강정마을이 대한민국에서 보낸 지난 12년을 정의할 때, 가장 적합한 말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민주공화국이라 생각을 했었습니다. 민주공화국이란 주권이 국민에게 있기 때문에, 국가가 개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일을 하려 할 때는 개인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의 주권은 철저히 침해당했습니다. 국가가 제주해군기지를 강정마을에 건설할 것을 결정했기에, 87표의 찬성 측 주권은 존중받았으나 680표의 반대 측 주권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 주민투표조차 찬성 측 해녀들의 투표함 탈취사건을 겪으며 천신만고 끝에 재차 이뤄진 투표에서 얻어진 결과였지만, 제주도정과 국가는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2019년에 발표된 '
경찰의 인권침해 진상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투표함 탈취사건은 찬성 측 해녀들의 자발적인 행동이라기보다 해군과 경찰, 제주도정, 서귀포시청의 조직적인 개입 혹은 방조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우리와 함께 반대한다면 해군이나 국가도 우리를 무시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강정 주민들은 제주도 사회에 제주해군기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제주도를 한 바퀴 도는 도보순례를 하고 차량 시위, 도청 앞 집회, 평화로 10km 구간을 연결하는 1인 시위, 도청 앞 1인 시위 등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여론이 우리에게 우호적으로 변하자 국정원과 기무사는 댓글공작을 통해 여론을 호도했습니다. 심지어 제주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반국가단체로 모함하는 논평들이 중앙 언론에 게재되고, 강정 주민들을 사회적으로 매장하려는 정치인들의 선동이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같은 국가에 동시대에 사는 사람인 우리를 적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며 큰 공포를 느꼈습니다. 제주 4.3이 바로 그런 사건입니다. 평범하게 살고 있던 수많은 제주인이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서 목숨을 잃은 사건이죠. 강정마을에서도 4.3 당시 80여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실제로 강정마을에서 4.3 때 누명을 쓰고 돌아가신 사람이 없는 집안은 없을 것입니다.
한편, 제주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한참 뜨거웠던 2009년 서귀포신문사가 바른정신과의원과 함께 실시한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 강정 주민 중 50%에 가까운 사람들이 정신건강 위험군에 속하고, 자살을 생각한 비율이 40%가 넘고, 적대감을 보이는 주민이 57%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2010년 말부터는 제주해군기지 건설공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공권력에 의한 탄압도 본격화되었습니다. 제주해군기지 사업은 단일 사업으로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연행자와 사법처리자 수를 기록했습니다.
700건이 넘는 연행자, 690건에 달하는 사법처리가 이루어졌고 36건이나 되는 구속자와 28건에 이르는 자발적 노역이 진행되었으며, 벌금만도 3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평화적 관점이나 민주적 관점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법률적 관점에서만큼이라도 제주해군기지가 정말로 정당한 사업이었는지, 그리고 이 사업에 반대한 사람들은 정말로 불법적이었는지 우리는 따져 물어야 합니다.
헌정사상 가장 불법적인 사업, 제주해군기지 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