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대학입시는 어떻게 흘러왔을까?

[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 대한민국 대학입시의 빛과 그림자 ②

등록 2020.08.12 17:31수정 2020.08.1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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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의 대학입시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몇몇 사례를 통해 살펴보면서 우리 대학입시의 역사적 맥락을 알아보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학입시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변곡점에 해당하는 몇 가지를 짚어볼까요?

첫 번째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국민들의 환심을 사고자 교육에 칼을 들이댑니다. 그것이 바로 7.30 교육개혁 조치이죠. 본고사 폐지 및 과외 전면 금지를 시행합니다.

그런데 이 교육 개혁안은 신군부에서 마련한 것이 아닙니다. 이전부터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연구해 오던 것을 신군부가 힘으로 밀어붙인 거죠.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 성과물인 문(文)과 신군부의 무력인 무(武)가 합쳐진 작품이었던 거죠. 당시 사회 분위기는 망국병 과외만 잡아준다면 누구든지 대통령을 시켜준다는 여론일 정도로 과외가 극성을 부렸습니다.

돼지치기라는 은어를 아시나요?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을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자기 집에서 합숙을 시키면서 명문중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시킨 것을 빗대어 한 말입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월급보다 과외비로 더 많은 돈을 벌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 당시 초등학교 교사 집에 대학교수가 세 들어 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죠.

또 당시 서울의 학원 강사들은 돈을 정부미 푸대 자루에 담아갈 정도로 학원이 성업 중이었죠. 대학입학시험에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는 어려운 본고사 문제가 나오니까 학생들이 학원으로 몰린 것입니다. 재수생 숫자도 엄청 많아 사회문제시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망국병 과외를 잡기 위한 신군부의 강력한 교육개혁 조치로 대학입시 정책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기존의 대학입시 방식인 예비고사와 본고사가 폐지되고 4지선다형 시험인 학력고사 체제로 80년대 입시는 흘러갔습니다. 또한 이때부터 대학입시 요소로서 '내신'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됩니다.

두 번째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화려한 등장입니다. 80년대 말이 되면서 4지 선다형 찍기 시험인 학력고사에 대한 회의론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학력고사는 학교교육을 획일화시키는 주범으로 지목되었죠.

1989년 당시 정원식 교육부 장관은 역대 교육부 장관들을 초청하는 모임 자리에서 학력고사를 대체할 '대학입학 적성시험'의 도입을 처음 거론하였습니다. 획일화된 학교교육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등장하게 된 것이죠. 이에 따라 정부는 1992년 4월 대학입학시험제도 개선안을 발표하였고, 1993년 8월 20일 첫 수능이 치러졌습니다.


당시 처음 치러진 수학능력시험에 대하여 언론은 "산교육이다. 탈교과적 문제들이다. 통합 출제되었다. 탐구 교육이 기대된다" 등으로 찬사를 보냈습니다. 수능의 화려한 등장이었죠. 그러나 그 이후로 수능은 수명을 다해가며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형태의 다른 시험으로 교체를 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치고 현재까지 흘러왔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 대학 입시 정책에 큰 틀을 유지해 온 '3불 정책'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3불 정책은 어감이 안 좋아 공교육 정상화 3원칙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994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될 당시 정부는 94년부터 96년까지 한시적으로 본고사를 도입하기로 약속했죠.

당시 반대 여론도 많았지만 문민정부는 국민과의 약속이란 핑계로 그대로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3년간의 본고사로 인하여 사교육이 엄청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본고사 과외를 시키기 위해 엄마가 파출부를 한다는 이야기, 판검사가 과외비 때문에 일찍 옷을 벗고 변호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이때 나온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고자 문민정부는 1996년 새 대입제도 개선안에 본고사 금지를 명문화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그해 기여입학제도 공식적으로 금지하여 2불이 탄생하게 됩니다. 또한 이 당시 5.31 교육개혁으로 대학입시에서 종합생활기록부를 도입하기로 했는데, 이를 계기로 특목고나 비평준화 고교의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우수한 자원이 몰려 있는 비평준화고나 특목고들이 내신에서 절대 불리한데 이를 대입에 반영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한 거죠. 이른바 '종생부 파동'인데요. 그래서 비평준화고와 특목고에서는 이른바 비교 내신을 적용해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죠. 그러나 이는 거꾸로 평준화 지역의 고등학교들이 역차별을 받는 것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종합생활기록부 정책은 누더기로 변해갔어요.

한편 각 학교에서는 종합생활기록부가 대입에 반영된다고 하니 내신을 부풀리는 현상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고등학교에서 내신을 부풀리니 대학들은 내신을 믿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고, 그러면서 학부모들은 대학들이 은근슬쩍 고교등급제를 반영하는 건 아닌지 의심에 눈길을 보내게 된 것이죠. 이러한 논란의 와중에 국민의 정부는 2002년 대입제도 개선안에서 고교등급제를 금지하도록 하여 3불이 완성됩니다.

사실 3불 정책 하면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으로 오해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전 정부에서 성립된 정책을 노무현 정부 들어서 3불을 놓고 대학과 정부 간, 진보 단체와 보수 단체 간, 그리고 언론도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을 벌여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수능등급제 파동을 들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들어 당국에서는 교육혁신위원회를 만들어 사교육도 잡고 대학입시도 획기적으로 바꾸어 보고자 시도합니다. 이때 등장한 핵심 정책이 수능에서 표준점수나 백분위는 제공하지 않고 등급만을 제공한다는 것이었죠.

수능에서 등급만을 제공하고자 한 이유는 수능을 사교육의 주범으로 보고 대학 입시에서 수능의 영향력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의도였습니다. 교육혁신위원회는 아예 이참에 수능의 영향력을 무력화시키고자 5등급제를 제안하게 되었고, 교육부는 그러면 변별력이 떨어져 대학의 본고사가 부활할 것이라고 맞서며 최소한 9등급은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최종적으로는 9등급제로 결정돼 2008학년도 수능을 치르게 됩니다. 수능을 보고나자 학교 현장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습니다. 대학 입시 전형요소로 수능이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데 뭉텅뭉텅 등급으로 나누어짐으로써 수험생들과 선생님들은 기준을 잡지 못해 매우 당황스러워했습니다. 기준을 잡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한 문제 차이로 천당과 지옥을 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필자는 이 당시 고3 담임을 맡고 있어서 당시의 혼란상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당시 국영수를 기준으로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A라는 학생은 국영수 300점 만점에 285점을 맞았고 B라는 학생은 278점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수능 성적표에 등급으로 나온 건 A학생은 국영수가 각각 1등급 2등급 2등급(122)이고, B학생은 국영수가 각각 올1등급(111)으로 나왔습니다.

이 상태로라면 A학생은 전국에서 5000등 정도이고 B학생은 500등이 됩니다. 어처구니가 없죠. 111이면 서울대 지원 가능한 등급이고 122면 서울시립대 정도를 지원해야 하는 점수이거든요. 이런 혼란과 부작용 때문에 수능 등급제는 1년 만에 폐기처분 되었습니다. 교육혁신위원회의 모험적인 개혁안이 산산이 조각나는 순간이었죠.

다섯 번째로 수능 오류의 잔혹사를 살펴볼게요. 1994학년도부터 실시된 수학능력시험은 초창기에는 각종 찬사를 받으며 순항을 했는데요.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고루함에 빠지게 되면서 각종 오류가 나타나게 됩니다.

수능시험에서 처음 오류가 나타난 건 수능이 시행된 지 딱 10년째인 2003학년도 수능 때였습니다. 당시 언어영역 17번 문제가 오류로 판정되어 복수정답을 인정하는 첫 사례가 됐죠.

그리고는 2007년에 다시 문제 오류가 나타났는데요. 수능 문제 물리II 4번 문제에 대해 수험생들이 집단적으로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평가원은 며칠간의 검토 끝에 문제에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봉합되는가 싶었지만 며칠 후 한국물리학회에서 복수정답의 가능성을 제기하였고 급기야 평가원은 정답 없음 처리로 결론지었습니다. 이 사태로 평가원장이 물러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한국 대학 입시의 중추인 수능 문제를 잘못 출제한다는 것은 아주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오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2009학년도 수능 지구과학I 16번 문제도 잘못 출제되어 복수정답을 인정하였고 2013학년도에는 더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계지리 8번 문제에 대하여 수험생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평가원 측에서 이를 묵살하였는데 수험생 38명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재판에서 1심은 수험생들이 패소했지만 2심에서는 승소하여 결국 평가원 측은 수험생 구제방안을 발표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2015학년도 수능은 두 과목에서나 오류가 발견되었는데요. 생명과학 8번과 영어 25번 문제를 복수정답 처리하였고, 결국 평가원장이 사퇴했습니다. 2017학년도 수능에도 문제가 있었는데요. 한국사 14번은 복수정답 처리, 물리II 9번 문제는 아예 정답없음 처리를 했습니다.

수능 한 문제당 들어가는 국가 세금이 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출제수당, 관리수당, 인쇄비, 감독수당 등등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수능이 시행된 지 27년이 지나고 있는데요. 그동안 오류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처음의 신선감은 없어지고 문제의 질도 계속 떨어지는 등 수능에 대한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한편, 문제의 질이 떨어져 가는 수능에 결정타를 먹인 정책이 수능과 EBS 연계 정책입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수능을 쉽게 출제한다는 취지아래 수능과 EBS 문제를 70%까지 연계토록 했는데요. 이 정책으로 말미암아 수능문제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고등학교에서는 EBS 문제집만 반복해서 푸는 비정상적인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EBS 문제집만 달달 외우는 식의 공부만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영어 공부를 EBS 문제집 해석본을 먼저 달달 외운 다음, 영어 지문을 보는 식으로 공부를 했겠습니까? 결국 고등학교 교육을 황폐화시킨 아주 나쁜 정책이었던 거죠.

여섯 번째는 입학사정관제 도입의 역사입니다. 사실 입학사정관제는 미국태생인데요. 지난 1920년대 미국 사회는 유럽에서 수많은 유대인이 이주를 오게 됩니다. 대학입시를 놓고 유대인과 백인과의 경쟁에서 백인이 밀리기 때문에 백인사회에서 궁여지책으로 마련한 제도가 입학사정관제이죠. 이 입학사정관제는 장차 대학에 기부를 많이 할 학생을 뽑아야 대학 발전에도 좋기 때문에 기부를 많이 할 백인을 뽑는 제도였던 것입니다.

이런 취지의 입학사정관제를 우리 대학 입시에 도입한 이유는 너무 점수 위주의 지나친 경쟁을 줄여보자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입학사정관제가 처음 논의된 것은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이 마련되면서부터인데요. 2004년 8월 26일 발표된 2008년 이후 대입제도 개선 방안에 처음 입학사정관제가 언급됩니다.

이에 따라 2007학년도부터 대학 입시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이 전격 실시됐죠. 입학사정관제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또 다른 맥락은 고교평준화 균열 조짐과 관련이 있어요. 2000년대 초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자사고를 포함하여 특수목적의 고등학교들이 많이 생기면서 이 학교들의 학생들을 뽑기 위한 방편으로 입학사정관제를 대학 측에서 선호하게 된 것이죠.

2011년도 대입에서는 춘천의 모 고등학교에서 내신 하위등급의 학생이 연세대 입학사정관 전형에 합격해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학생은 곤충 연구에 남다른 열정이 있어서 합격한 것이었죠. 이후 대학 입시에서 '장수풍뎅이 소녀' '철새 소년' 등 짝퉁 연구 학생들이 대거 등장했다고 하네요. 입학사정관 전형의 어두운 면이죠.

또한 입학사정관 전형은 대학들이 대학 입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입학사정관들을 그야말로 급조하다시피 채용하면서 윤리성 등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안 좋은 면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형 잘 지내? 아들 Y대 원서내면 연락해. 아내가 거기 입사관이자너"라는 문자가 SNS에 퍼져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산 웃지 못할 사건도 있었습니다. 결국 그 입학사정관은 해고되었죠. 아무튼 이래저래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회의가 나타났고 현재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변신하여 우리 입시의 대세를 이끄는 중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대학입시의 그늘이라는 주제로 찾아 뵙겠습니다.
#대학입시의 역사 #수능오류의 잔혹사 #입학사정관제의 그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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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대한민국 교사로 산다는 것'의 저자 김재훈입니다. 선생님 노릇하기 녹록하지 않은 요즘 우리들에게 힘이 되는 메세지를 찾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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