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에 돌산대교, 오른쪽에 장군도가 보이는 여수의 풍경
정만진
금지곡 정책은 일제 잔재의 한 가지이다. 일제는 1933년부터 가요를 심사하여 일부를 금지곡으로 낙인찍었다. 1945년 해방 이후에도 금지곡 정책은 친일파를 대거 등용한 이승만 정권에 의해 존속되었고, 그 이후 박정희·전두환·김영삼으로 이어지는 정권에서도 변함없이 위력을 발휘했다.
1990년 가수 정태춘은 정부의 음반 제작 전 사전 심의, 곧 금지곡 정책에 저항하여 심의를 받지 않고 〈아, 대한민국〉을 발매했다. 정태춘은 현행범이 되었지만 헌법재판소는 1996년 10월 31일 사전 심의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아, 대한민국〉 중 한 부분을 읽어본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 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대한민국 아~우리의 공화국
정태춘은 사전 심의를 규정한 법을 어김으로써 마침내 '악법'을 철폐시켰다. 그가 사전 심의에 순순히 응했더라면 〈아, 대한민국〉은 틀림없이 금지곡이 되었을 터이고, 대중은 이 노래를 즐길 자유를 박탈당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저항의 노래인 포크송과 록 음악이 별로 저항성을 띠지 않았지만, 정부의 탄압으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저항의 노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주3)." 독재 세력은 금지곡을 생산함으로써 정권을 공고히 하거나 유지하는 데 이익을 보려 했지만 오히려 손해를 보았다. 시민들은 〈아침 이슬〉 등의 금지곡을 부르면서 박정희, 전두환 독재를 분쇄했다.
금지곡을 부르면서 독재에 맞선 시민들
김수영 시인은 〈푸른 하늘을〉에서 "자유를 위해서 /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 사람이면 알지 / 노고지리가 / 무엇을 보고 / 노래하는가를 /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 혁명은 / 왜 고독한 것인가를"이라고 노래했다. 문화적·사상적 독재인 금지곡 정책을 폐지시키는 데도, 정치적·경제적 독재를 무너뜨리는 데에도 '고독한' 희생이 뒤따른다는 노래였다.
▲ 여수 흥국사 입구의 커다란 자연석에 붉게 새겨진 '남북 통일 기원'
정만진
흔히 정통성이 없는 권위주의 정권은 소크라테스가 하지도 않은 말 "악법도 법이다"를 내세워 자신들의 억압적 법 집행을 정당화하려 든다. 이의 부당성에 저항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역사는 발전해왔다.
일제 강점기 때 악법에 맞서 싸운 사람들을 우리는 독립운동가라 부른다. 독재 정권 때 악법에 맞서 싸운 사람들을 우리는 민주화운동가라 부른다. 이는 "악법은 어겨서 고쳐야 한다"는 논리가 타당하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증언해준다.
지금은 정치적 측면의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척된 사회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금지곡이 탄생한 1949년 9월 1일 이래 7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악법은 어겨서 고쳐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문제가 불거지고 누군가가 피해를 입기 이전에 악법이 폐기되고 수정되는 대한민국을 보고 싶다.
(주1) 다음 백과 〈여수·순천 10·19사건〉
(주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여순 사건〉
(주3) 민경찬, <청소년을 위한 한국음악사(양악편)>(두리미디어, 2007), 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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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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