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아내를 지켜보았다.

[나도 이번 생은 글렀다고 생각했다] 걱정 속에서도 원인을 찾았던 못난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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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한(raintouch)등록 2020.09.21 14:35
잔업을 하고 집에 들어서니 아내가 다급히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웬 남성이 차로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지켜봤다는 얘기. 순간 정적이 흘렀고 내 마음엔 급격히 소용돌이가 쳤다.
 

위기의 아내 누군가 아내를 지켜봤다. ⓒ 남희한

 

누군가 아내 주위를 맴돌았다.

코로나로 인해 초등학생인 첫째는 일주일에 두 번만 학교를 간다. 그러다 보니 당일 수업과 숙제 확인을 위해 모든 교과서를 짊어지고 다니게 됐다. 열댓 건의 책이 든 가방은 생각보다 무거웠고 아내가 아침 점심으로 등/하교를 도왔다. 학교가 지근이라 산보 삼아 다니던 참이었다.

그날은 비가 왔다. 우산을 쓰고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아이를 데리러 가는데 자동차 한 대가 아내와 속도를 맞췄다. 이상한 느낌에 옆을 쳐다보니 창문이 열린 차 안에서 30대 중후반의 남자가 아내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 잠시 기억을 더듬다 애써 무시하고 고개를 돌려 걷는데, 자동차가 앞에 보이는 동 주차장으로 방향을 틀어 사라졌다. 혹시 아는 사람인가 다시 한번 기억을 더듬으며 차가 지나간 찻길을 건넜는데 아내에게 소름이 돋는다. 주차장으로 들어갔던 차가 놀이터를 사이에 두고 자신을 향해 있었던 것. 주차가 목적이었다면 보이지 않았어야 할 차가 한 동안 그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차를 생각한다면 절대로 멈춰 있어서는 안 될 주차장 도로 한가운데서. 

불안한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어느샌가 그 차는 다시 아내를 앞질러 다음 동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이상함과 무서움이 극에 달할 때쯤 뒤따라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차 안에서 반가운 얼굴이 인사를 한다. 아이 친구의 엄마. 무거운 책가방을 나르러 나온 친한 동네 엄마였다. 다소 안심하며 찻길을 건너는데 역시나 주차장 도로 한 복판에 서있는 의문의 차. 길 건너 택배 보관소를 지나 다시 한번 살피니 차는 귀퉁이 너머 출구로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불안함을 자아내는 상황이 종료되고 아내는 다른 엄마들과 뒤섞여 주위를 살피며 아이를 데리고 왔다.

별 일 아니길 바랐는데 별 일이었다니.

잠시 동안의 이야기가 기나긴 소설처럼 재구성됐다. 괴한의 시선에서의 아내 모습, 혹시 있었을지 모를 괴한의 계획과 심리상태, 아내의 불안했을 마음과 귓전에도 울렸을 심장박동 소리까지. 얘기를 듣는 내내 나는 가슴을 졸였고 어서 빨리 안심되는 어떤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알고 보니 옆 동네 아저씨였다던지 그간 못 봤던 내 친구 녀석이었다던지. 하지만 이야기는 찝찝하게 끝이 났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아내와 함께 당시의 상황을 세밀하게 되짚어봤다. 차와 아내의 위치, 차의 동선과 속도, 시간대 등. 계획된 행동이었는지 우연찮게 맞아떨어진 상황이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집이 1층이라 누군가 평소 창 사이로 우리를 지켜봤을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들면서 매 순간을 A4 용지에 그려가며 모든 가능성을 가늠했다. 그동안 봤던 스릴러 영화와 추리 소설의 갖가지 사건과 해결 과정들이 머릿속에 난립했다. 픽션이 피부에 와 닿는 논픽션이 될 줄이야.

30대 중후반의 남자가 정오 시간에 아파트 단지를 돌아나갔다는 게 쉽게 설명되지 않았다. 비 오는 날에 창문을 연 것도 두 번의 정차도 예삿일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눈에 띄었던 남자의 행동을 보면, 치밀하게 계획된 일은 아닐 것 같았지만, 어쨌든 불안은 만개했고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야 했다. 나는 아내에게 호신술에 대해 어디까지 아느냐고 물었다. "호신술, 어디까지 해봤니?" 무슨 광고 같다. 광고처럼 마음이 설레면 좋으련만 마음 졸이지 않으려 비장함을 묻혔다. 

우선은 어깨를 잡혔을 때다. 아내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고 알고 있는 호신술을 요구했다. 정지화면을 연출하는 아내. 순간 두뇌에 부하가 걸린 듯 멈칫하더니 눈만 우왕좌왕이다. 괴한 입장에선 딱 봐도 뭔가 할 것 같은 모습인 동시에 제대로 할 리 없다는 확신을 갖게 하는 모습. "이렇게!" 아내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쳐 올린 나의 손이 다시 아내의 어깨로 툭 떨어진다. 흠....

힘도 힘이지만 쳐내고 2차 타격을 가하지도 못할 것을 알기에 안 되겠다 싶어 시범을 보였다. "(죽인다는 생각으로) 온 힘을 다해야 해!" 아내에게 어깨를 잡게 하고, 팔 관절을 아래로 내리쳤다. "악" 단말마 비명을 지른 아내가 팔을 부여잡고 힘 없이 내 품에 안겼다. 아니. 쓰러졌다. 이런... 몰입이 과했다. 걱정된 마음과 진지한 태도가 생각보다 과한 힘을 만들어 냈다. 아이들이 옆에 있어 말하지 못한 (죽인다는 생각으로)를 실천해버렸다. 함께 놀란 아이들이 우르르 엄마를 안고 감싸며 엄마에겐 따뜻한 체온을 아빠에겐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거듭해서 사과하고 마사지 해준 후, 여러 상황을 재현했다. 어깨를 잡히는 경우, 뒤에서 팔 안에 갇히는 경우, 뒤에서 목을 잡히는 경우 등 갖가지 상황별 대처법을 가르쳤다. 다소 야비하고 잔인하지만 큰 힘이 들지 않는 확실한 방법을. 그리고 오늘과 같은 상황에선 바로 나에게 전화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걱정이 되면 걱정부터 했었어야지

자려고 누웠는데 아내 얘기를 들으면서 차올랐던 감정이 생각났다. 그것은 불안 같기도 했고 답답함 같기도 했으며 화 같기도 했다. 평소 네 아이의 엄마로 보이지 않던 아내. 뜬금없이, 왜 예쁘게 해서 다니냐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었다. 이건 무슨 심리인가. 밑도 끝도 없이 그런 생각을 했다니. 한심하다. 터져 나오려는 말도 되지 않는 잔소리를 애써 참고 억눌렀지만 몇 마디 말이 기어코 비집고 나왔었다. "뭐 입고 있었어?", "화장했었어?" 걱정되면 걱정을 하는 것이 맞음에도 나는 아내에게서 원인을 찾고자 했다.

그 알 수 없었던 감정에서 화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누군가 쳐다본 것이 아내의 잘못이 아님에도 왜 아내에게서 먼저 지적할 것을 찾으려고 했을까. 이게 아내만 조심한다고 될 일인가. 정작 아내를 불안하게 하고 걱정시켰던 것은 그 불길한 사람이었는데. 나는 왜, 걱정을 없애기 위해 애초에 있지도 않은 '원인'을 찾으려 했을까. 내심 눈길을 끌만한 요소가 있었고 그것만 제거하면 다음엔 그런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을 얻고 싶었던 것일까. 걱정이 되면 걱정부터 했어야지. 불안했을 아내를 안심시켰어야지. 안아 줬어야지. 참. 바보다.

성폭력 피해자들에 관한 글을 읽을 때 느꼈던 그 격한 감정이 동시에 떠올랐다. 피해자가 자신의 아픔을 오롯이 위로받지 못하고 자책한다는 얘기를 보며, 그러지 말라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마음에 힘주어 얘기했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진심 어렸던 그 가식적인 마음이 남자의 시선으로 옮겨오며 낱낱이 드러났다. 그나마 걸치고 있었던 얇디얇은 천 조각 하나마저 사라지고 벌거벗겨진 느낌이다.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살면서 불쑥불쑥 드러나는 이런 편협한 시선과 생각은 뛰어넘고 싶다. 입장 바꿔서도 아니고 딸 가진 부모 여서도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 걱정과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인간'이고 싶다. 그 막연한 마음이 생각보다 무거운 것을 보면 아무래도 꽤나 긴 시간이 걸릴 테지만, 지금 잠 못 드는 이 시간만큼은 그 긴 시간의 일부이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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