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겐 더 많은 ‘경계인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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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우리는 아픈 몸에 대해 성찰함과 동시에, 조금은 올바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에 사소해 보이는 부분에서부터 민감해져야 한다. 저자는 일상에서의 실천 중에 자신의 '텍무새' 경험을 공유한다. 텍무새란 텍스트 앵무새의 준말로, 포스터나 카드뉴스 등에 내용을 설명하는 텍스트를 추가할 것을 요구한 저자의 경험이 담긴 말이다.
포스터와 카드뉴스 같은 콘텐츠의 경우 시각적인 정보만을 전달하기 때문에, 텍스트로 설명을 마련해 두어야 어떠한 신체적 조건에 놓인 사람이든 그 내용을 제대로 알 수 있다. 즉,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콘텐츠를 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텍스트보다 사진의 내용이 더 많은 게시물을 찾아가서 음성 지원을 요구하는 댓글을 쓰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번 무시당했다. 가끔은 '절차에 큰 변화가 생기므로 논의가 필요하다'는 황당한 대답을 듣기도 했다. 더 오기가 생겨 텍스트가 없는 게시물에는 줄곧 '텍무새'가 등장하게 됐다. 지속해서 지적하다 보니 어떤 곳에서는 계속 무시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지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텍스트를 추가하기도 했다.
저자 안희제의 책은 이처럼 질병과 아픔, 장애에 대한 시선을 확장시켜 준다. 정상성 규범에 기반한 렌즈로는 우리가 멋대로 상상한 딱 거기까지만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질병과 장애에 대한 상상이 빈곤하다. 우리는 아프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 불행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그러한 단정은 하나의 삶이 가진 맥락을 모두 지우고 만다. "(질병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아갔다"는 저자의 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더 많은 '경계인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모두가 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을 이야기하자고 하지만, 그것이 정상성 규범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재난 대비 교육은 모든 몸을 대상으로, 주기적으로,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건강한 비장애인 남성이 건강한 비장애인들만을 대상으로 구할 수 있는 교육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코로나19 참사에서 정신장애인들의 집단감염 및 사망, 기저 질환자들의 사망, 그리고 수많은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의 생계 위기를 경험한 후에야 우리는 '감염병 시대의 뉴 노말'을 상상하자고 한다. 지진과 화재로 장애인들이 죽었지만, 과연 우리가 재난 이후의 '뉴 노말'을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난치의 상상력 - 질병과 장애, 그 경계를 살아가는 청년의 한국 사회 관찰기
안희제 (지은이),
동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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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게 불행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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