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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같은 세 여성의 모습이 전해주는 따뜻한 힐링

[리뷰] 비록 현실의 벽이 높을지라도, 사랑의 희망은 유효하다 <담쟁이>

20.10.25 15:36최종업데이트20.10.25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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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묵묵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희망에 도달할 수 있음을 벽에 자리 잡은 담쟁이를 통해 말한다. 영화 <담쟁이>가 주고자 하는 이야기 역시 이와 같다. 사회적인 편견과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말한다.
 
교사와 학생 사이였던 은수와 예원은 커플이 된다. 두 사람은 함께 동거하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두 사람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에 조심스럽다. 예원은 주변 사람들에게 은수를 사촌언니라 소개하고, 은수는 예원을 동거인 정도로만 규정한다. 예원이 일하던 옷가게에서 매니저 제안을 받아 들뜬 날, 제사를 지내러 간 은수는 사고를 당한다. 이 사고로 은수는 하반신이 마비된다.
   
사고 후 은수는 예원을 밀어내려 한다. 두 사람 사이가 교사와 학생이었다는 점에서 은수는 예원을 자신이 보호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관계는 연인이지만 사제지간이었다는 점에서 은수에게는 그런 의무감이 남아있는 듯하다. 그런데 자신의 몸이 불편해지면서 오히려 예원이 은수를 돌봐야할 입장에 놓이게 된다. 만약 은수와 예원만 있었다면 짙은 로맨스의 색이 영화를 지배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다양성의 가치를 내포하게 되는 건 수민의 존재 때문이다. 사고가 나던 날, 은수와 함께 차에 있던 그녀의 언니는 목숨을 잃고 어린 조카는 혼자 남게 된다. 수민의 존재는 세 사람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게 만들어준다. 예원은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가며, 수민과 친구처럼 지낸다. 이제는 은수를 보호하고자 하는 예원은 이전보다 더 큰 에너지로 세 사람을 위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들이 꾸리고자 하는 가정은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작품은 세 주인공의 심리를 밀도 있게 그려내며 '담쟁이의 삶'을 살아갈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밝은 모습의 은수가 사고 후 거칠게 예원을 밀쳐내는 장면이나 화장실에서 주저앉아 혼자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깊은 슬픔과 고민을 전한다. 정신적으로 무너졌던 은수가 점점 강인해지는 모습은 수천 개의 잎을 달고 담벼락을 오르는 담쟁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담쟁이>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잠만 자며 책임감도 노력도 부족한 모습을 보여줬던 예원은 은수를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다. 사랑의 기적을 보여준 예원이지만 은수에게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은수는 예원이 지닌 가능성을 알고 있다. 혼자의 힘으로도 인생을 개척해 나갈 힘이 있는 아이라는 걸 말이다. 스승은 제자에게 홀로 높은 담벼락을 오르는 힘을 마지막으로 알려주고자 한다.
 
수민은 이 작품에서 측은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어린 아이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일이 수민에게 연달아 일어난다. 그럼에도 수민이 높은 담을 넘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사랑을 받아봤기 때문이다. 수민은 엄마와 은수, 예원에게 사랑을 받았기에 어떤 힘겨운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담쟁이>는 한 편의 시가 주는 따뜻한 감성을 퀴어와 여성서사로 풀어낸 특별한 감성을 지닌 영화다. 마치 수채화 같은 감성을 통해 촉촉하게 마음을 적셔준다. 더불어 세 사람 사이의 복잡한 내면을 진중한 드라마로 풀어내며 깊이를 더한다. 작품은 최근 코로나19를 비롯해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슬픈 상황에 처한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벽을 넘는 '담쟁이'가 될 수 있다는 희망찬 메시지를 전달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담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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