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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와 사랑에 빠진 선생님, 이들 막아선 더 큰 장애물

[리뷰] 영화 <담쟁이>,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찾는 여정

20.11.04 16:56최종업데이트20.11.0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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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담쟁이>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살아야지, 사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어!


<담쟁이>는 제21 전주국제영화제의 화제작이자 정통 퀴어 멜로드라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벽을 타고 담을 넘는 강한 생명력의 담쟁이처럼 두 여인의 사랑과 어려운 현실적 고민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동성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한편 삶에 대한 굳건한 믿음까지 '사랑'이란 이름 앞에 아름답게 펼쳐진다.

국어 선생님인 은수(우미화)는 제자였던 예은(이연)과 몇 년 전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은수는 예은의 연인이자, 언니, 엄마 같은 존재다. 은수가 보살핌을 자기만의 사랑 방식으로 택했지만 예은은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것도, 많은 꿈 많은 청춘이다. 그녀는 은수에게 어리광을 피우며 살갑게 사랑을 표현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환경과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조심스러운 사랑을 키우며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큰 불행의 전조증상처럼 어쩐지 술술 일이 잘 풀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는 은수를 절망에 빠트리고 서로의 관계는 어느새 역전된다. 이들이 처한 사회적, 제도적 어려움은 그동안 느꼈던 것보다 훨씬 잔인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거기에 예상치 못한 은수의 조카 수민(김보민)까지 함께 살게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절망과 희망이 교차한다.

은수는 몸을 가까스로 추스리고 돌아간 학교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깨닫는다.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 데 사랑이 무엇이며 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커져만 간다. 아직 젊은 예은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미안하고 짐이 되는 것 같아 싫었다. 아직도 예원을 사랑하지만 보내주는 게 맞는다고 믿어 마음에서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은의 마음은 더욱 단단해져만 간다.

아직 먼 성소수자 인권 문제
 

영화 <담쟁이>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세 사람은 시련을 이겨내고 가족이 되려 하나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일단 두 사람이 자신도 떳떳하지 못한 동성 커플이라는 점이 큰 걸림돌. 예원이 은수의 사고 소식을 듣고 찾아온 중환자실에서 가족이 아닌 동거인이라는 이유로 면회가 거부당하고, 동성 결혼 반대 피켓을 든 시민과 마주하며, 매스컴에서는 자극적인 뉴스로 여론몰이에 이용된다. 또한 언니의 사망으로 보육원에 가게 될 수민을 양녀로 입양하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현실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그래서일까. 유독 삶의 한계에 부딪혀 지쳐 있는 상황에서도 사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하는 은수의 대사가 뇌리에 남는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존재가 되어준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희망적인 의도를 전달한다. 절망의 벽을 넘을 수 없다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는, 영화 제목 '담쟁이'에 담긴 뜻을 풀어낸다.

영화는 인간을 위해 만든 법 앞에 모두가 보호받지 못하는 소수자 인권의 문제점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사회의 약자, 법 앞에 평등하지 못한 소수자 인권의 입장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활용된다. 사랑의 형태는 하나만이 아닌 여러 가지가 있고, 모든 가족은 저마다 다르게 특별하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오프닝과 클로징이 맞물리는 수미상응 결말은 현실적이라 긴 여운을 준다. 단, 사회적 함의를 한 영화 속에 많이 담으려고 한 탓인지 피상적인 장면들이 아쉬움을 더한다. 퀴어에 초점을 맞추고 하나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한편, 연극 무대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우미화 배우가 은수를 맡아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아직 낯설지만 <담쟁이>로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이연 배우는 특유의 사랑스러움과 굳은 생명력을 동시에 풍기는 예원을 잘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부모를 잃었지만 꿋꿋하게 살아갈 날을 바라보는 어린 조카 수민은 김보민이 맡아 열연했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한제이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퀴어 멜로라는 소재뿐만 아니라 다양한 모습의 가족과 사회 제도 개선의 질문을 던지는 메시지가 인상적이다.
담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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