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9월 17일 서울대 공과대학장 명의의 공고문 3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관련 데모 새 법 따라 단속’이라는 제목의 “대검찰청은 17일 아침 앞으로 국민투표에 관련하여 「데모」를 벌였을 때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적용치 말고 국민투표법을 적용, 처벌하도록 관하 각 검찰에 지시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를 공고문에 그대로 실었다.
최육상
윤 원장은 자신을 학삐리에 불과했다고 했지만 노동운동으로 점철된 그의 삶 구석구석엔 시대와 맞서던 저항의 흔적이 가득하다. 그 자신뿐만 아니다. 그의 형제자매들 역시 불의에 항거하며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1950년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난 윤 원장은 전형적인 시골 집성촌 출신으로 3남 1녀 중 장남이다. 윤 원장이 당시 전태일 열사와 맺은 인연은 동생들인 둘째 윤관덕(남, 1953년생, 고려대 수학과 72학번), 셋째 윤후덕(남, 1957년생, 연세대 사회학과 76학번, 현 더불어민주당 파주갑 국회의원), 막내 윤명신(여, 1959년생, 이화여대 사범대 77학번)에게도 운명처럼 이어진다.
쉽지 않은 고단한 세월을 겪어서일까. 윤 원장은 학생운동 등으로 얽힌 동생들과 가족사 이야기에는 늘 조심스럽다.
"살림이 어려웠던 전태일 열사 형제들은 공부를 하는 게 소원이었어. 동생 중에 전태삼이라고 있는데 초등학교 졸업을 못했지. 이소선 어머니와 친구들, 장기표 선배, 주변과 상의해서 전태삼에게 공부를 시키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서대문에 방을 따로 얻어 학원을 보냈어. 그 때가 1971년이었는데, 이소선 어머니와 의논해서 대입 재수하던 동생 윤관덕에게 제의하여 전태삼의 공부를 몇 달간 도와주게 했지."
전태일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금은 덜었지만, 그 인연은 결국 동생을 사회개혁에 눈뜨게 했다. 대학에 입학한 윤관덕은 당시 운동권이던 제일교회에서 서울지역교회청년협의회 총무를 맡았다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으나 다행히 1년 만에 출소했다. 하지만 훗날 또 다른 공안사건으로 엮여 다시 감옥에 갔다. 다른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윤후덕은 대입 시험 직후 두 달 정도 내가 공장 체험을 제의해서 서울 가리봉동의 전기소켓을 찍어내는 공장에서 일을 했지. 동생이 나중에 출판업을 했는데, 불온서적 출판이라는 죄명으로 감옥을 두 번이나 다녀왔지. 세계출판사라고, 거기서 전태일문학상 제1, 2회를 주관했어."
큰오빠의 영향력은 막내 여동생에게까지 미쳤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평화시장에서 시다(보조)로 일할 것을 제의했다. 당시 실제 시다들, 즉 여공들 나이가 여동생 또래였기에 그 어려움을 알기를 바라는 큰 오빠의 바람이었다. 이를 위해 윤 원장은 직접 청계노조를 통해 여동생을 추천했다. 윤 원장의 어머니도 동생의 구속 이후 민가협(민주화운동가족협의회)에서 이소선 여사와 인연을 맺어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훗날 동생들이 어릴 때부터 나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 셋째가 펴낸 책에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형이 정신적이 지주였다'고 썼어. 좋은 의미에서 권유를 한 건데 결과적으로 동생들과 어머니 모두 전태일 열사와 여러모로 관계 맺게 된 거지."
경기도 지방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윤낙용)를 둔 4남매가 모두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하던 가족사를 처음으로 털어놓은 윤 원장. 만감이 교차하는 듯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그는 마른침을 삼키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동생이 수배 중 가명을 쓰고 도망 다녔지. 내 주민등록증도 빌려 주고. 친구 집도 소개해 머물게 했어. 한밤중에 모두 자고 있는데 경찰이 들이닥쳐 온 가족을 괴롭힌 일도 있었어. 일가친척도 샅샅이 조사하고. 본가, 외가, 처가 3족을 멸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할아버지 형제들까지 9족이 고난을 겼었지. 어머님(이정순)은 치를 떠셨지. 그때 놀라셔서 폐경이 왔어. 처음 하는 말이야. 가족이 너무 괴로웠지. 가족의 수난사라고 할까. 결국 아버님이 1977년 2월 48세에 공무원을 그만 두셔야 했어."
▲ 위장 취업했던 일신제강(주) 오류제조소 1978년 노동조합 임원 야유회 때의 윤조덕 원장(앞줄 왼쪽에서 3번째)
최육상
- 2편 "유일하게 찾아온 이가 후배 김문수였어"(http://omn.kr/1qcrj)
로 이어집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전북 순창군 사람들이 복작복작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공유하기
죽은 전태일... '학삐리' 4남매 삶이 바뀌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