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이 버스에 올라타고 있다.
헬싱키시
축구클럽 PPJ(공 차는 소년들)는 핀란드에서 세 번째로 큰 축구클럽으로 겨울엔 칼라사타마에서 7km 정도 떨어진 체육관에서 훈련을 한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친 뒤 부모가 체육관으로 데려다 줄 수 있는 저녁 시간에야 모여서 훈련을 시작하는데 그러다보니 해가 떠있는 낮 시간을 아깝게 흘려보내는 일이 많다. 체육관도 낮 시간을 비워두는 게 비효율적이고, 부모들도 아이들의 연습 시간을 맞추려고 서둘러 퇴근해야 하니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다.
축구클럽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자일 파일롯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전세 버스로 학교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태워 체육관으로 데리고 오고, 훈련이 끝나면 다시 집까지 데려다주는 실험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저녁 시간이 아니라 체육관이 비어있는 낮 시간(2시~5시)에 훈련을 할 수 있게 된다.
체육관 입장에서는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 되고, 아이들도 낮 시간에 디지털 기기에 빠지기보다 몸을 활발히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부모가 시간을 낼 수 없는 아이들도 참여할 수 있게 되고, 아이들은 부모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일 기회를 얻게 된다. 또 부모들도 일을 마치고 서둘러 집에 돌아오지 않아도 되고, 저녁 시간엔 가족 모두가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집집마다 차를 몰고 복잡한 시내로 나오지 않아도 되니 환경에도 도움이 된다.
체육관은 비어있던 시간을 쓰는 만큼 사용료를 낮춰줬고, 클럽과 부모들은 그렇게 아낀 돈을 보태 전세버스를 빌렸다. 포럼비리움헬싱키는 이 프로그램에 1만7500유로(약2300만 원)를 지원했는데 이 돈은 전세버스를 빌리고 실험 설계자를 고용해 계획을 세우고 또 디지털 플랫폼과 앱을 만드는 데 쓰였다. 디지털 플랫폼과 앱으로 부모들이 아이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간단해보이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7~10살의 어린 아이들이 과연 제 시간에 정확한 승차 위치에 나와 차에 탈 수 있는지, 만약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 각기 다른 학교의 시간과 동선을 어떻게 맞출지, 만약 길이 막혀 차가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 또 수요를 감당하려면 얼마나 큰 버스가 몇 대나 필요한지, 그리고 이 모두를 만족시키면서도 어떻게 하면 부모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비용을 맞출 수 있는지 등을 모두 꼼꼼히 따져 답을 찾아내야 하는 실험이자 고차방정식이었다.
실험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두 단계로 진행했고, 2019년에는 6개 팀에서 무려 2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실험이 끝난 뒤 조사에서 모든 부모들이 이 새로운 서비스에 만족했고, 학생들도 90%가 만족했다. 모든 부모들은 이 서비스가 가족의 삶을 더 나아지게 했다고 답했고, 3분의 2는 비용에도 만족했다. 70%의 부모들은 더 이상 차를 소유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답했는데, 이 지역이 처음부터 자동차가 필요 없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이동한다는 점을 특히 좋아했고, 이것이 팀의 단합력을 높인다고도 했다. 또 '엄마 아빠 없이' 독립적으로 이동한다는 점도 좋아했다. 2020년 들어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진행되면서 이 서비스는 다른 지역으로 퍼져가고 있다.
온통 자율주행 자동차와 배달로봇, 퍼스널 모빌리티 등 새로운 기술의 실험장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 스마트 시티들에선 찾아보기 힘든 실험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도시를 만들려면 정작 필요한 실험은 이런 게 아닐까.
[참고한 글]
"Are small cities the smartest?", <CNN>, 2019.2.25.
"Smart kalasatama, Finland's Future Smart City That Values Its Citizens The Most", <i'm Herald>, 2019.2.25.
Dorn Townsend, "Helsinki Makes Sustainability a Guiding Principle for Development", <NewYorkTimes>, 2020.10.14.
Veera Mustonen, Kaisa Spilling and Maija Bergström, "Cook Bokk - Recipes for agile pilots".
"세계 리빙랩 포럼- (중) 화두는 스마트 시티·노인 돌봄", <전북일보>, 2019.09.24.
Kaisa Spilling and Janne Rinne, "Pocket Book for Agile Piloting", Forum Virium Helsinki, 2020.
문재용, "입주민 40%가 도시실험... 미래도시 핵심화두는 '민간참여'", <매일경제>, 2018.3.21.
Veera Mustonen, Kaisa Spilling and Maija Bergström, "Cook Bokk - Recipes for agile pilots".
Kaisa Spilling and Janne Rinne, "Pocket Book for Agile Piloting", Forum Virium Helsinki, 2020.
송승환, "취재설명서] 전동킥보드 안전 규제 거꾸로 풀어진 이유 설명해 드림", <jtbc>, 2020.11.13.
황재희, 신승훈, "'13세 킥라니가 온다'…전동킥보드, 사고 급증에도 되레 규제 완화", <아주경제>, 2020.10.30.
Annika Järvelin Consulting, "FROM SCHOOL TO PRACTICE AND BACK - How to move training sessions from evenings to afternoons and arrange children's transport", <Forum Virium Helsinki>, 2020.3.
https://www.myhelsinki.fi/en/business-and-invest/invest/kalasatama-smart-city
[기획/ 정책 실험과 행정 혁신]
① 돈 줄까 집 줄까? 노벨상도 인정한 새로운 실험을 하자 http://omn.kr/1m4qu
② 실업자 2천명에게 매월 72만원 줬더니... 이 실험의 결과 http://omn.kr/1m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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