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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17년째, 내년엔 책 한권 내겠습니다

[2020 올해의뉴스게릴라] 서부원 시민기자

등록 2020.12.30 11:58수정 2020.12.3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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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2020 올해의뉴스게릴라로 민병래 서부원 이봉렬기자를 선정했습니다. 올해의뉴스게릴라에게는 상패와 상금 150만 원을 드립니다. 수상자 모두 축하합니다.[편집자말]
전화가 울렸지만 받지 않았다. '070'은 아니었지만 처음 보는 번호여서 그냥 걸렀다. 몇 분 뒤 같은 번호로 문자가 왔다. 첫 줄에 <오마이뉴스> 사회부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청탁 문자로군? 요즘 청탁할 만한 교육 관련 이슈가 뭐 있을까? 순간 머릿속으로 글감을 스캔했다.

이슈가 궁금해 문자를 열어봤다. 올해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기쁘기보다 좀 뜬금없고 당황스러웠다. 의심병이 도졌다. 스팸 문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혹시 내용 중 특정 URL에 링크를 걸어두진 않았는지 찬찬히 살펴보았다.

의심스러운 건 없었다. 요청 사항을 쪽지를 보냈으니 확인하라는 내용뿐이었다. 안심은 됐지만, 또 다른 의심병이 일었다. 내가 올해 뭘 했다고 수상자로 선정됐을까? 기사가 미친 영향력이나 글의 수준을 놓고 볼 때, '깜'이 못 된다는 건 자명하다. 이건 겸손이 아니다.

쪽지를 열었다. 코로나로 오프라인 시상식을 열지 못한다는 것. 당연한 결정이면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지금 학교에선 서울에 다녀왔다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자가 격리하도록 권장된다. 말이 권장이지, 출근 후 확진 판정을 받으면 책임을 묻겠다는 엄포다.

한 가지 더, 소감을 적어 보내란다. A4 한 장 반 이내로.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분량이다. 순간 난감해졌다. 명색이 소감인데 기쁘고 고맙고 영광이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겠지만, 차마 민망해 못 쓰겠다. 자꾸만 머릿속에 이게 올해 내가 입어도 되는 옷인지 맴돌아서다.

하여 스스로 수상 이유를 찾아 분석해보기로 했다. 내가 만약 선정 위원이었다면, 어떤 점에 가산점을 주었을까 이입해보려는 거다. 자평을 위해 지난 한 해 동안 쓴 글을 다시 끄집어내 읽어보았다. 읽기 시작하기도 전에 수상 이유를 대번 알 수 있었다.

바로 '질'보다는 '양'. 지난 1월 5일 첫 기사로부터 12월 20일 현재까지 송고한 분량이 이 소감문까지 포함해 모두 98건이다. 얼추 3~4일에 하나꼴로 쓴 셈이다. 지금껏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스스로 조금 놀랍기도 하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도 든다.


그렇다. 이것 말고는 달리 수상 이유를 찾기가 힘들다. 지난 한 해를 되돌아보면, 일상 속에 기억나는 일이라곤, 원격수업 영상을 준비하는 것 빼고는 책 읽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 두드린 일이 전부였다. 가만 보면, 올해처럼 책을 많이 읽은 해도 없었던 것 같다.

17년간 이어온 시민기자 활동,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서부원 시민기자 ⓒ 서부원

  
지난 11월 초, 오연호 대표님이 우리 학교를 찾아오셨다. 교사를 대상으로 '삶을 위한 수업'에 대해 들려주셨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 함께한 동료 교사 앞에서 나와의 인연을 잠깐 소개하셨다. 그때까지 내가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는 걸 아는 동료 교사는 드물었다.

"서 선생님이 워낙 글을 많이 쓰는데, 그것 때문에 수업을 소홀히 하는 건 아니겠지요?"

동료 교사들은 다행히(?) '아이들과 늘 함께하려는 교사'라고 대답했다. 강연으로 시민기자 활동이 알려진 뒤 내 글을 부러 찾아봤다는 한 동료 교사는, 올해 것만 다 읽는데도 족히 두세 시간은 걸릴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한데 모으니 글만으로도 A4 270매가 넘는 분량이란다.

이게 다 코로나 덕분이다. 고3 수업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고2 수업의 절반이 원격수업이어서 책 읽고 글 쓸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온라인 강의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는 먹었어도 시간으로 충분히 보상받았고, 그 결과가 98편의 글이다.

다른 수상 이유는 찾을 수 없다. 정작 덧붙여야 할 건 반성이다. 반성은 다짐의 전제일 테니, 소감에서 빠지면 안 될 성싶다. 우선, 98편의 글은 내용상 한데 묶을 수 없을 만큼 중구난방이다. 교육과 여행, 사는이야기부터 어쭙잖은 주장 글까지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지난 8월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되었을 때, 날 '팔방미인'이라고 소개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용 불문, 장르 불문, 못 쓰는 게 없다는 거다. 그런데, 순간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뒤집어 말하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솔직히 글을 쓰며 취재다운 취재를 한 적이 별로 없다. 이는 내가 '금강 요정' 김종술 기자님을 특별히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감 대부분이 학교에서 아이들과 부대낀 일상이기 때문이다. 여행기나 주장 글 역시 수첩에 그때그때 메모한 내용을 가다듬은 것일 뿐이다.

또, 글이 쓸데없이 너무 길다. 한 동료 교사는 읽다가 숨넘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군더더기를 덜어내면 분량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들었다. 노력 중이지만, 한계 극복이 쉽지 않다. 이곳 광주에는 글쓰기 교실 같은 프로그램이 드물어 아쉬움이 크다.

죄다 담아야만 진심이 전달될 거라는 고정관념 탓이다. 일종의 불안이다. 모름지기 글은 간결해야 한다. 열 마디의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해내는 게 실력이다. 당장 수식어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평소 김훈 선생님의 소설을 반복해 읽는 이유다.

이런! 난 구제불능인가 보다. 소감문조차 길다. 탁월한 편집부 기자님들께서 손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지난 2013년에도 과분하게 올해의 뉴스게릴라 상을 받았는데, 그때와 지금은 느낌이 사뭇 다르다. '좋은 글'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조금 달라졌다고나 할까.

그땐 술술 읽히고 표현력이 뛰어난 글을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우리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글이 좋은 글이라 믿고 있다. 이 또한 내가 '금강 요정' 김종술 기자님을 그 누구보다 존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땐 기쁨이 먼저였는데, 지금은 부담감이 크다.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다. <오마이뉴스>와의 인연이 올해로 만 17년이다. 내 삶의 가장 소중한 '도반'이다. 이번 상이, 내게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는 영원한 친구'로 호명하는 것처럼 느껴져 행복하고 감사하다. 내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사족 삼아, 내년의 바람 하나 적어본다. 그동안 쓴 기사 수가 내년 말쯤이면 천 편을 넘길 것 같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인생 앨범 삼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내고 싶다. 책 제목은 미리 정해 놨다. '천편일률'. 아빠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랑삼아 두 아이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이는 17년 전 <오마이뉴스>에 처음 문을 두드린 이유이기도 하다.

☞ 주요 기사
연재기사 : 아이들은 나의 스승 http://omn.kr/1pu3k
18세 유권자가 김종인을 두고 '충격적'이라고 한 이유 http://omn.kr/1n9xi
"왜 진중권을 두둔하세요?" 제자의 당황스러운 공격 http://omn.kr/1q050
#올해의뉴스게릴라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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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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