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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후보자가 꼭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서평] 말은 내면을 드러내는 창... 책 '말공부'를 읽고

등록 2020.12.25 19:04수정 2020.12.25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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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막말 논란이야?"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의 막말 논란을 보면서 한숨부터 나왔다. '구의역 사고' 당시 숨진 김군의 죽음을 폄훼하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에는 솔직히 화가 났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문재인 정부의 국무위원 후보가 저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배신감마저 들었다.


논란이 일자 변 후보자는 수차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숨진 김군의 유가족과 동료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이미 늦은 것 같다. 그들이 받은 상처가 사과 몇 마디에 쉽게 아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말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변창흠에게 부족했던 이것

이번 논란을 지켜보면서 5년 전에 읽었던 <말공부>란 책이 떠올랐다. 사실 나 역시도 워낙 '욱'하는 성질 탓에 살면서 말실수를 자주 하곤 했다. 생각 없이 뱉었던 말에 뒷수습을 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했고, 부끄러운 기억에 밤마다 '이불킥'도 자주 하면서 살아간다. 이 책은 그런 실수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고자 집어 든 책이었다.
 

<말공부> 표지 ⓒ 흐름출판

 
책은 <논어>, <맹자>, <장자>, <사기>, <십팔사략>, <전국책>, <설원>, <세설신어> 등 동양 고전에서 말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뽑아 저자의 주석을 달아놓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대화법'으로 끝나는 스피치 관련 자기계발서류의 책이 아닌가 싶어 심드렁한 태도로 읽기 시작했다가, 다음의 문장에서 눈길이 멈췄다.
 
"말이 재주에 머물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내면의 깊이와 지혜에서 비롯된 말이라야 향기가 오래간다."

그렇다. 저자는 구구한 말재주보다는 먼저 내면을 닦으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 가치관 등 내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 공부의 표본으로 동양의 옛 고전들을 고른 까닭도 고전이 내면 공부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 까닭이다.

공자, 맹자, 장자 등 옛 철학자들은 말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고 제자나 위정자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대화'를 중요한 수단으로 삼았다. 공자의 <논어>가 왜 '論語'이겠는가. 토론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지혜를 익히고 내면을 가꿔나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옛 선현들은 대화를 통해 내면을 가꾸고 말을 아끼는 법을 익혀나갔다. 결국 말 공부란 '마음 공부'인 것이다.
 
"말은 단순히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과 인격, 가치관 그리고 본성들이 집약되어 나오는 것이다. 내면의 힘이 말의 힘이 되고, 내면의 충실함이 말의 충실함이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을 기술로 배우려 하기 때문에 실패한다. 내면보다는 겉을 꾸미고 겉치레 말로 포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곧 밑천이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 최근만 해도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하는 청와대 대변인이나 장관들이 '말'이 아닌 내면의 부실함으로 인해 추락한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 5쪽

"급박한 상황에서 리더가 전략적으로 말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재치나 임기응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말은 그 사람의 내면의 표현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폭넓은 공부를 통해 다져놓은 탄탄한 내면에서 촌철살인의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 24쪽

마치 오늘의 사태를 예견한 듯한 말에 소름이 돋는다. 한편으로 막말 논란이 예나 지금이나 흔한 일이라는 생각에 씁쓸함이 느껴진다. 옛 선현들이 이미 2500년 전에 경계했던 실수들을, 왜 오늘의 우리는 반복하고 있는 걸까 쓴웃음도 나온다.


막말하는 정치인들에게 지금 필요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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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마스크를 만지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살다 보면 말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수도 한 번이어야 실수지,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고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씁쓸했던 것은 막말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또 다른 막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이쯤 되면 긴장해서 혹은 말재간이 부족해서 벌어진 실수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가치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내면의 공부가 부족할 때 설화(舌禍)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논어> 계씨편에는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 말하는 것을 조급하다고 하고, 말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을 숨긴다고 하고, 안색을 살피지 않고 말하는 것을 눈뜬 장님이라고 한다'라고 실려 있다. <명심보감>에서는 '입과 혀는 재앙과 근심의 문이요, 몸을 죽게 하는 도끼이다'라고도 한다. 뛰어난 실력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말'로 인해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말'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그래서 '군자는 말을 아끼고 소인은 말을 앞세운다(<예기>)'라고 하는 것이다." - 318쪽

정치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변 후보자의 막말은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눈에서, 지하철역에서 컵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우며 일하는 노동자들의 눈에서 눈물을 쏟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결격 사유가 없다"며 오히려 변 후보자를 두둔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막말을 한 당사자도 문제지만 그를 감싸기에만 바쁜 여당의 태도도 정치인들이 얼마나 '말의 무게'를 가벼이 여기는가 싶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변창흠 한 개인만의 문제이겠는가. 국민의 '입'이 되겠다는 정치인들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반성해야 할 일 아니겠는가.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정치인들이 오히려 막말로 국민들의 두 눈에서 눈물을 쏟게 만드는 일이 더는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한다. 아무리 뒤늦게 사과하고 해명해봐야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다.
 
"자기 자신은 물론 사람을 다스리는 말을 하고 싶다면, 그리고 사람 공부를 하고 싶다면, 먼저 말을 제대로 배워야 할 것이다." - 9쪽
덧붙이는 글 <말공부>, 조윤제, 흐름출판, 2014.03.24, 15,000원.

말공부 - 2500년 인문고전에서 찾은

조윤제 (지은이),
흐름출판, 2014


#말공부 #변창흠 #문재인 #말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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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한국근대사 전공) / 취미로 전통활쏘기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 기사 제보는 heig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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