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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피부 질병, 왜 이렇게 됐을까

몸이 아프면서 마음을 고치기로 결심하다

등록 2020.12.30 08:14수정 2020.12.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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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증상은 갑작스럽게 몸을 덮쳤다. 어느 날부터 얼굴 양 볼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개의치 않고 술을 마셨다가 그 기세가 더욱 거세졌다. 5년 동안 습진에 시달렸던 만큼 여느 때처럼 피부과에 가서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았고 얼굴은 다시 하얗게 돌아왔다.


그리고 정확히 2주 후, 얼굴은 이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붉어졌다. 스테로이드를 쓰면 안 된다는 직감이 불현듯 스쳤고, 더 이상 양학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판단해 한의원에 가게 됐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이유는 딱 잘라 무엇이라 설명할 수는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체질, 음식, 스트레스 나열할 수 있는 그 모든 걸 조절해야 한다는 암울한 이야기에 고개가 떨궈졌다.
 

어느 날부터 얼굴 양 볼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고 개의치 않고 술을 마셨다가 그 기세가 더욱 거세졌다. ⓒ Pixabay

 
다음 날부터 얼굴은 부풀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가 된지는 알 수 없었으나 침을 맞은 곳 주변으로 고름이 퍼졌고, 얼굴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퉁퉁 부었다. 아마도 독소가 빠져나오는 과정일 듯싶으면서도 얼굴을 보기 힘든 건 어쩔 수 없었다.

가려움도 심했고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찾아와 괴롭혔다. 처음으로 재택근무를 하게 된 코로나19 사태에 감사하게 되는 시기였다. 미친 듯이 타자를 치면서도 두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억울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고통과 좌절 속에서 날려 버릴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했다.

아파서 눈물을 흘린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고3 때 스트레스로 습진이 발병한 이후 겨울 철마다 골치가 아프긴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당황스럽고 난감했다. 덕분에 집은 긴급 요양병동이 됐다. 하루 종일 나라는 사람을 먹이고 달래고 응원하는 게 우리 가족들 일이었다. 고마웠지만 한편으로는 창피했다. 반드시 낫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기 시작했다.

낫고 싶다는 염원이 생기면 그다음에는 의문이 따라온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아무런 일도 없이 자고 일어난 다음 날부터 시작됐던 증상. 특별한 이상도, 사건도 없던 나날들. 그 보통의 순간들 사이에 어떤 문제가 숨겨져 있던 걸까.

아프기 시작하면서 엄마와 매일 산책을 시작했다. 얼굴에 열감이 떨어지지 않아 찬바람을 쐴 필요가 있었고, 조금이나마 걱정을 덜어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게 아파트 주위를 매일 같이 엄마와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조금이나마 이 사태의 원인을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됐다.

나는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는 성격이다. 우선 남들의 반응이나 평가에 예민한 편이다. 올해 여름 처음으로 입사했던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할 때도 마음 한편에는 아주 무거운 돌이 얹힌 느낌이었다.


나는 회사 생활을 아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떠난 후 이 사람들이 나를 예상치 못하게 비난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들을 했다. 주위에서 퇴사할 회사 사정이나 생각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수차례 말해줬음에도 잘 들리지 않았다.

회사 선배와의 작은 마찰도 아주 큰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사소한 커뮤니케이션의 오류가 있었고 그에 대해 사과했음에도 영 찜찜했던 선배의 반응이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그 선배가 숨을 쉬는 소리마저 매 순간 귀에 꽂힐 정도였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저 사람의 마음을 되돌리는 데에 온 신경이 집중돼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일 욕심도 너무 많다. 상사에게 잘 보이고 동기에겐 의로운 동료이면서 동시에 일도 잘하고 싶었다. 그걸 가능케 하는 건 남보다 빨리 출근하고, 남보다 많이 읽고, 남보다 덜 쉬는 거라고 생각했다. 화장실 한 번 못 갈 정도로 일을 하는 날들이 잦았고 '성취감'이 피로도를 잊게 하는 마약이 됐다.

여름에 퇴사를 하고, 한 달 만에 다시 인턴으로 입사를 하고, 지금 회사로 옮기면서까지. 크고 작은 굴곡을 거쳐야 했고 그때마다 나 자신을 혹독하게 채찍질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좋은 회사원이 되느라 좋은 자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이제서야) 했다. 내 몸이 아픈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니 이제서야 아픈 게 용할 정도로 도저히 유지할 수 없는 삶이었다.

어떤 이유로 내가 이렇게까지 완벽에 대해, 남들의 인정에 대해, 경쟁에서의 우위에 대해 집착하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성실하게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었는지, 나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고 싶었던 건지. 그 이유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몸이 아프기 전에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내 마음속 독소를 덜어내지 않으면 언제든지 몸이 다시 아프고 퍼질 수 있다. 반드시 달라져야만 했다. 공교롭게도 12월에 이런 기회가 생긴 것이 감사하기까지 했다.

아직 많은 것을 시도하진 않았다. 하지만 우선 내 마음을 죄이는 보이지 않는 고삐들을 풀어주는 데에 집중했다. 일을 할 때에 의도적으로 휴식 시간을 많이 가졌고, 그때에 숨을 깊게 쉬면서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데에 에너지를 쏟기로 했다. 일기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내 마음이 어떤지 매일매일 나름의 진단을 내리고 치료해보기로 했다. 걷기와 더불어 요가도 시작했다. 홈요가라 어설픈 감이 있지만 그래도 밖에서 운동을 하기 어려운 시국, 클릭 몇 번으로 요가를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단기간에 치료가 가능한 병은 아니라 최소 3개월에서 6개월을 바라보고 있다. 추운 겨울이 꽃 피는 봄이 될 때까지의 시간. 그 기간 동안에도 나는 수없이 열받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욕심내고, 안간힘을 쓰겠지만- 그때마다 지금의 결심을 발판 삼아 조금씩 다스리고 조절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건강한 게 최고라는 상투적인 말을 2020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마저도 올해의 수확이 될 것이라고 소망하면서, 오늘도 건강하게 잘 생각하고 잘 살아봐야겠다.
#직장인 #건강 #스트레스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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