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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속헹, 3년 넘게 건강보험 적용 못 받았다

의료공백 상태로 방치... 건강보험 적용 안되는 사업장에 고용허가, 과연 맞나

등록 2020.12.30 11:31수정 2020.12.3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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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헹씨 등 이주노동자 5명의 기숙사 ⓒ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 제공

 
지난 20일 포천의 한 농장에서 이주노동자인 속헹(30)씨가 사망한 채 발견되었을 때 시민단체들은 추운 한파에 난방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비닐하우스 등 임시가옥에서 동사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러나 언론보도가 나오고 경찰의 부검영장 신청이 있었고 국과수 1차 부검결과에 대해 포천경찰서는 24일 "국과수 부검 결과, 1차 구두 소견으로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으로 보이며, 동사(凍死)했을 것으로 추정할 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라고 발표했다. 

일부 시민들은 '동사'를 주장한 시민단체를 비난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직접 사인이 간경화 합병증이라고 하더라도 열악한 주거환경의 문제가 덮어질 수 없고, 이번 사안을 통해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문제가 함께 폭로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 이주노동자가 간경화 등 기저질환에 대해 제대로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적용조차 되지 않는 사업장에 고용허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9일 윤미향 의원실에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속헹씨는 한국에 입국한 2016년 3월 15일부터 2019년 7월 15일까지 건강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고 한다. 
 

윤미향 의원실 제공(건강보험공단 보고자료) ⓒ 최정규

 
속헹씨는 2019년 7월 15일까지 간질환에 대해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권단체, 종교기관 등에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봉사활동이 있지만 간질환에 대한 진단 및 치료까지 제공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왜 3년 넘는 시간 동안 속헹씨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했던 것일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사업주에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에 대해 직장건강보험가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영세농의 경우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고 농업경영체등록만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영세농에 고용된 이주노동자 등은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주인권단체들은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농장주에 고용당한 이주노동자들은 건강보험(직장)가입이 불가하므로 건강권에 심각한 침해가 우려된다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다른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고용노동부는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속헹씨는 3년 넘는 의료공백 동안 간질환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없었고, 지난 20일 기숙사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속헹씨는 4년 전 한국에 입국한 후 건강진단을 받았다. 그 검사에는 "소변검사(요PH, 요당, 요단백, 요잠혈), 빈혈(hemoglobin), 혈당(glucose), 지질(총콜레스테롤), 간기능(SGOT, SGPT, r-GTP), 혈액형(ABO, RH), 간염항원(HBs Ag), 매독(VDRL), 흉부간·직촬, 결핵" 검사가 포함돼 있었다.

위 건강진단결과 속헹씨에게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속헹씨의 고용허가는 종료되지 않았다. 결국 간질환 없이 입국한 속헹씨는 대한민국에 입국한 후 간질환이 발병하여 악화됐을 가능성이 높다.

시민단체들은 건강보험(직장)가입도 되지 않는 사업장에 고용허가를 해 주는 건 이주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며 속헹씨 죽음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는 ILO 협약 제111호 차별(고용과 직업)을 비준한 국가다. 위 협약은 모든 형태의 차별을 철폐할 목적으로 국가정책을 결정, 추진하도록 비준국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건강보험(직장)적용도 되지 않은 사업장에 고용허가를 해 준 대한민국은 비준국의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속헹씨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목소리에 고용노동부 등은 기저질환으로 사망했다는 식의 책임회피식 답변을 할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 적용도 받지 못한 고용허가제도를 운영하여 발생한 이 사건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내놓아야 한다.

[관련 기사] 
속헹씨의 죽음을 둘러싼 미심쩍은 의문점 세 가지 http://omn.kr/1r69m
속헹씨 시신 발견한 동료들, 여전히 비닐하우스에 산다 http://omn.kr/1r65h
비닐하우스서 죽은 서른 살 이주노동자, 막을 수 있었다 http://omn.kr/1r4y4 
#속헹 #이주노동자기숙사사망 #이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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