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대책위 기자회견 국가인권위 긴급구제신청에 앞서
고기복
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사업장의 31.7%가 노동부가 정한 외국인 기숙사 최저기준에 미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7월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1만 5773개 사업장 중 5003개 업체는 고용허가를 주지 말았어야 하는 사업장이었습니다. 2020년 여름 수해 이재민의 80%가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던 이주노동자였던 사실을 떠올려 보면 비닐하우스 이주노동자 사망사고는 충분히 예방 가능했습니다.
수많은 이재민을 발생시켰고, 화재 등의 반복된 사고에도 고용노동부는 기숙사 최저기준에도 미치지 않는 숙소를 방치했습니다. 난방 장치 고장이 아니더라도 해당 비닐하우스는 외부 노출된 배분전반에 먼지나 빗물로 인한 누전 등으로 화재에 취약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방화설비가 없었다고 고용노동부 현장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비닐하우스 사망사고는 명백하게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에 의한 사고임을 말해줍니다.
2020년 산재사망 대책마련 공동 캠페인단은 최악의 살인기업특별상에 고용노동부를 선정했습니다. 2019년 산재 사망의 12%인 104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지만 그 구조적 원인인 고용허가제를 폐지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심장마비, 원인불명의 급작사는 산재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에서 현실은 더 심각합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중앙행정부서가 최악의 살인기업특별상을 받았는데도 책임 있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삽니다
2019년 겨울 이주노동자쉼터에 '하우스'가 불에 탔다면서 찾아온 여성 이주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온 푸스프였습니다. 예전에도 실직했을 때 쉼터에서 생활했던 그는 하우스 화재로 옷도 다 타 버려서 겨울철에 입을 옷이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런데 푸스프가 말하는 하우스는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식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였습니다. 설 연휴에 화재를 당했던 그는 하우스가 마련되기 전까지 쉼터에서 출퇴근했습니다. 쉼터에서 며칠 출근하다 농장으로 돌아간 푸스프는 지금 사람이 살려고 지은 집이 아닌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대책위가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신청을 하며 기자회견을 하던 자리에서 한 활동가가 울음을 삼키며 했던 말이 있습니다.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삽니다. 지금도... 살려주십시오."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살려 달라는 소리조차 못 내고 한 사업장에서 일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은 늘 편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혐오 표현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비난은 대체로 타자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 의심에 근거합니다. 그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적 분노를 전가할 대상이자 손쉬운 희생양이 됩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민족적 고정관념은 출입국 추방과 단속 정책의 근거가 되며, 폭력적인 통제, 비인간적인 입법을 통해 타자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시도로 귀결됩니다.
쉬운 예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열등한 지위, 직업을 할당하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들 수 있습니다.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고, 저임금 비숙련 업종에만 취업하도록 하는 등 특정 종류의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고, 같은 급여나 존중을 받지 못하게 하며, 코로나19라는 지구적 재난상황에서 재난지원금 정책에서 배제시켰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주민으로 대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언론에서는 농촌 일손이 없다고 하고, 구직 중인 이주노동자들은 다들 여기저기 알아본다고 하는데, 며칠은 기본이고 한 달 넘게 허탕 치기도 합니다. 겨울이면 일하다가 동상에 걸려 그만두고도 금세 일자리를 찾으러 나가는 이주노동자들을 보는 일은 일상입니다.
날이 추워지면서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들은 점점 일자리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어떻게든 일하고 싶어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센터가 알선해 준 업체를 찾아가 보지만, 사장은 일을 시켜 보지도 않고 경험이 없다거나 원하는 국적이 아니라거나, 성별 혹은 나이 등을 이유로 거절하기를 예사로 압니다.
▲동상 걸린 이주노동자 농장에서 일하다 동상 걸린 이주노동자
고기복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사장은 일 잘하는 사람을 골라가며 고용할 수 있는 반면, 이주노동자들은 최악의 조건에서라도 어떻게든 일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아야 할 순간마저 절망이 되기도 합니다.
루슬란, '사자'라는 뜻을 갖고 있어서 나니아연대기의 우슬란을 떠오르게 하는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이름입니다. 한국에서 두 해를 일하고 결혼을 위해 휴가를 청하자, 회사는 휴가 대신 퇴사를 요구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축하받아야 할 결혼 때문에 실직한 루슬란은 달콤한 신혼방을 뒤로 하고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아야 했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위해. 이주노동자를 설명하는 단어인 꿈이 취약성을 동반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합니다. 차별적 정책과 그러한 제도를 방관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2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