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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서사, 검찰총장 그리고 노동자의 엄마

미로에 갇힌 한 사람, 생명이란 소명을 간직한 한 사람

등록 2021.01.18 13:16수정 2021.01.18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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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도 세상은 곳곳에 자리를 잡은 '괴수'들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편견, 무지, 교만, 집착, 질투, 나약, 불안, 셀 수 없는 악덕이 관행, 시스템, 논리, 법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는 것과 생명 그리고 우리를 옥죄고 있지요. 천의 얼굴을 가진 괴수가 인간의 옷을 차려 입고, 세상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좋습니까? 영웅이 나서야지요. 괴수와 맞서 압제를 풀고 세상을 구해야지요. 그러니 본질상 영웅은 하나인 셈입니다. 세상을 구하는 척만 하는 가짜 영웅이 아닌 세상을 구하는 진짜 영웅 하나.
  
시험에 든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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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 사진은 2019년 10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법사위 국정감사를 앞두고 법사위원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 이희훈

 
인생의 후반부에서 길을 잃은 사내가 있습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아주 무서운 숲이었습니다. 사자와 표범과 늑대가 도사리고 있는 곳, 자만과 공포 그리고 욕망이 교차하는 곳.

검찰총장이라는 자리의 영광이 주는 기쁨은 잠시, 이내 시련이 시작됐습니다. 골육상잔인지 내부 권력투쟁인지 모를 싸움에 휘말려 명예를 잃고 자리에서 축출됐습니다. 그를 엄호하는 축과 그를 적대하는 축, 세상은 둘로 갈라졌지만 그는 그를 지지하는 무리들을 믿을 수 없었기에 안심할 형편이 못 됐습니다.

그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의지뿐,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끈질김으로 버티며 고래의 뱃속으로 떠밀려가다 꺼내든 호신부, 법리, 그에게 익숙했던 그 법리가 그를 살릴 부적이 될 줄은 그도 반신반의했겠지요?

급하게 그를 삼키던 고래는 목구멍쯤에서 그를 뱉어내고 맙니다. 살아 돌아온 그를 보고 경탄이 쏟아졌습니다. 승리자가 된 것이지요. 다시 검찰의 수장으로서 자리가 보장됐습니다. 대중적 지지율도 치솟아 검찰총장에서 대권주자로 도약하게 됐고요. 시련을 겪은 대가로 보상이 주어진 셈이랄까요.

하지만 그는 여전히 외롭습니다. 보상을 얻은 만큼 상처도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잃었던 것은 지위와 명예인데, 지위는 되찾았으나 명예는 되찾지 못했으니까요. 그의 부적으로도 방어가 되지 않았던 명예의 실추. 판사사찰과 감찰방해는 검찰총장으로서 그의 행적에 오점으로 남았습니다. 그가 지휘해야 하는 집단에게 내리는 영이 수장으로서 권위가 아니라 대선주자로서 영향력에 기대야 할지도 모르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별의 순간' 운운하며, 별별별 허망한 선문답을 던지는 베르길리우스인 척 하는 사람은 또 어떠합니까? 이 무서운 숲에서 길을 찾을 때, 내내 그를 경계하고 조종하고자 했던 사람이 바로 그 선문답을 던진 이가 아니던가요?

'바른 검찰을 만들겠다.'


그가 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구절의 일부입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바른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입니다. 우리 세상에 살아있는 권력이란 청와대나 집권여당만을 뜻하진 않을 겁니다. 

야당을 포함한 국회권력, 행정부 내 관료권력, 경제권력, 언론권력 그리고 사법권력, 검찰권력 모두를 아우르는 말일 것입니다. 그의 서원이 이뤄지려면 결국 그 칼날이 자신의 집단, 자기 자신에게까지 이른다는 것을 뜻한다는 말입니다. 과연 그의 서원은 이뤄질까요? 그는 우리 세상의 진짜 영웅일까요?
  
밀알이 된 노동자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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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된 후 고(故)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운동본부 해단식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살아서 한 알의 밀알에 그치는 게 아니라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으려 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산업재해로 자식을 잃은 슬픔을 안고 아직 남아 있는 다른 이들의 자식을 위해 싸우는 어머니지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위해 싸운 고 김용균씨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부적 같은 건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과 맞서려면 극한의 고행이 필요했지요. 혹한의 추위 속에서 곡기를 끊을 수밖에요. 그녀를 돕는 조력자들 역시 고만고만한 '난장이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식과 아비를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겠다는 그녀의 서원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때리고 눈시울을 뜨겁게 물들였습니다.

바리데기 같은 그녀의 모험은 성공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다다른 고래의 뱃속은 참으로 냉정한 거인들의 세상이었지요. '우리를 빼고 마음대로 처리하라'는 제1야당 간사의 방관과 조롱, '시간이 지체됐으니 그냥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고) 처리하자'는 여당 간사의 무도한 논리가 횡행하는 세상의 중심. 국회란 그런 곳이었으니까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는 동패들이 무리를 나눠 자기네끼리만의 선악을 따지는 곳이었으니까요.

삭제하고, 제외하고, 유예하고... 한몸이 된 거인들에 의해 난도질돼 누더기가 된 중대재해처벌법, 적어도 4년간은 잠자는 법이 될 반쪽짜리 법. 이런 법을 두고 어찌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죽은 아들에게 '엄마도 이만큼 했다'고 말하고 싶었다던 어머니가 그녀인데.

물러서지 않겠다는 그녀의 단식을 만류한 건 그녀의 '난장이 동료'들입니다. 29일 동안 곡기를 끊은 몸을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병원으로 실려가 몸을 추스르고 있지요. 그녀는 패배한 영웅인 것일까요?
  
미로에 갇힌 영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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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검찰청의 모습. ⓒ 연합뉴스

 
검찰총장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쌓아올린 업이 그에게 더 많은 시련, 더 큰 시험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젠 진짜 고래의 목구멍이 아닌 고래의 뱃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신화의 주인공답게 '너의 아버지가 누구인가' 하는 뿌리를 묻는 물음에 답해야 할지도 모르지요.

험한 산길엔 폭설이 몰아쳐 길을 지우고, 걸음걸음 옆으로 크레바스가 아찔한 구멍을 드러낼지도 모르지요. 예측할 수 있는 위기는 진짜 위기가 아니라 했던가요? 진짜 위험은 예측할 수 없는 사소한 데서 시작되곤 합니다. 어쩌면 그는 아직도 무서운 숲의 미로에 갇혀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의지할 길잡이별이 아직까진 보이지 않으니까요.

별이 된 영웅 이야기 
 

마석모란공원의 김용균 묘소. ⓒ 김용균재단

 
노동자의 어머니의 모험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산업재해로부터 안전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소명을 그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을 테니까요.

공사장에서, 기계의 틈에서, 화학공장에서 죽음의 행렬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매일 이어지는 죽음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방관한 거인들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로 작동할 것입니다. 4년 내내 그 무정한 자들을 죄인의 창살 아래 가둬 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죄인의 대척점에 바로 그녀가 서 있습니다. 도덕적 심판자로, 영웅으로, 순간의 별이 아닌 영원한 밤하늘의 길잡이별로.

자기를 확장해, 공동체를 확장해 내는 것, 추방당한 목소리를 불러내는 것, 차별 없이 생명의 가치를 지켜내려 하는 것, 패배 속에서 승자가 되는 역사를 쓰는 것, 현대의 신화는 이렇게 계속 됩니다.
#윤석열 #김미숙 #영웅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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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로 이란 학생 김민혁군과 김민혁군의 아버지 난민 인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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