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사람
pixabay
'가만있어 봐. 이 사람은 뭐 하고 있는 거지?' 눈사람 만들기 삼매경에 빠진 딸애와 나는 그제야 남편이 눈사람 만들기에 조력하지 않은 걸 깨달았다. 그래도 눈사람 인증샷엔 아빠를 끼워주자는 딸애 제안에 집 밖으로 나가 보니 세상에, 이 사람, 4미터는 족히 넘을 집 앞 도로를 싹 밀어놓은 것이 아닌가.
허리 잡으려고 뭘 이렇게까지 하냐는 내 말에, 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남편의 좀 과한 몰입은 늘 당황스럽다. 하지만 앞집 노부부가 비록 앞 도로일망정 눈 길을 안전하게 걸어 다니실 걸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지난번 눈 왔을 때, 집 앞 도로 눈을 치우는 남편에게 앞집 할아버지가, "요새도 집 앞 눈 치우는 사람이 다 있네"라며 흐뭇해했다고는 했다.
인증샷을 찍다 문득 딸애가 눈사람 오랜만에 만든 것 같다고 한다. 그 말에 각자 기억의 회로를 더듬는다. 또 세상에다. 각자의 기억을 소환해 얼추 맞춰보니, 마지막 눈사람이 딸애 열두어 살 때쯤이 아닌가. 눈이 제법 온 어느 날, 당시 살던 아파트 단지 앞에 작은 동산 같은 공원이 있었는데, 거기를 갔던 날이었다.
눈 쌓인 공원에 가니, 아이들 몇이 눈썰매장에서 타는 눈썰매 보드를 가지고 바쁘게 오르내리는 게 보였다. 경사가 급한 한 곳이 반질반질하게 길이 난 걸 보니, 벌써 수십 차례 타며 놀았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눈 미끄럼 타는 걸 보니 딸애도 타보고 싶었던 모양인데, 우리는 눈썰매 보드가 없었다.
남편이 대신 눈사람을 만들자고 제안하자, 우리는 바로 으쌰 으쌰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린 지 좀 된 눈이라 잘 뭉쳐지지 않아 애를 먹었는데, 어찌어찌해서 좀 작게 만들었다. 이것이 우리 기억 속 마지막 눈사람이었던 것이었다.
딸애가 크며 눈사람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눈사람과 멀어진 데엔 아파트라는 거주 구조가 주는 물리적 거리감도 큰 몫을 했다.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보는 눈은 그야말로 관상용이다. 고층에서 밖을 내려다보며, 타 건물의 처마나 지붕 등에 쌓인 눈을 눈대중하며, 많이 왔네 적게 왔네 강설량을 짐작할 뿐이니 말이다.
주차장이 지하에 갖추어진 아파트 단지에 살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지 않는 한 동선이 눈 쌓인 밖을 향하게 되지 않으니, 실제로 눈이 와 쌓인 걸 보기는 하는데 경험할 수 없다고나 할까.
이런 아파트에서 줄곧 살다 보니 눈이 와도 조망할 뿐이었는데, 주택의 눈은 그렇지가 않다. 우선 문만 열면 눈 풍경이 들이닥치기도 하지만, 생활면에서도 실재적 눈을 경험한다. 지하주차장을 벙커처럼 들어왔다 나갔다 할 수 없는 주택은 최소한의 동선의 눈을 치워야만 걸어 다니며 생활할 수 있다.
또 눈이 아무리 와도 걱정 없이 주차장에 모셔져있는 차를 타던 아파트 때와는 확연히 다르 것이, 일단 차에 덮인 눈을 대충이라도 제거해야만 차를 움직일 수 있다. 이렇게 주택과 아파트의 눈은 실감되는 격차가 크다. 불편하다면 불편 하달 수 있는 이 작은 차이가 생활과 안전이라는 감각을 새롭게 인지하게 한다.
서로의 기억을 짜깁기하며 우리는 눈 마당에서 기꺼이 인증샷을 찍는다. 이내 서로 알 것 같은 회심의 미소를 주고받기 무섭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을 뭉쳐 던지기 시작한다. 눈공은 만들기는 잘 만드는데 왜 이렇게 목표물 조준이 안 되는 건지, 던지는 게 타깃(식구들의 몸)에 잘 맞지가 않는다.
어려서부터 눈싸움에 도가 튼 남편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싸움이기에 딸애와 나는 암묵적 동맹으로 협공한다. 어릴 적 눈싸움에 이기려고 작은 돌을 넣어 눈공을 만들어 싸웠다는 남편은 협공해도 이기기 어려운 상대이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장난기가 발동한 우리는 마침내 수영장에서 물 파편을 날리듯 눈을 퍼 날리며 싸운다.
에구구... 나이는 속일 수 없지. 눈사람도 모자라 생각지도 않았던 눈싸움까지 하고 나니 노곤하다. 눈으로 젖은 몸을 털고 들어오니, 또 또 세상에, 자정이 훌쩍 넘어있는 게 아닌가. 세수와 양치를 하고 곤한 몸을 눕힌다. 딸애가 밤 인사를 하러 와서는 옆에 누우며 속삭인다. "엄마 오랜만에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해서 정말 행복했어."
공연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딸애의 감상이 사랑스럽기도 하지만, 내 마음 속 한 곳은 어느새 우울한 다른 곳으로 흐르고 만다. 그래. 이게 우리 집이면 얼마나 좋겠냐. 아파트 팔았을 때 집을 샀어야 했는데. '벼락거지' 되어보니, 집 없는 설움으로 애달프다. 이 나이에 다시 집 걱정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멘붕'된 멘탈은 이런 속절없는 속엣말을 무시로 비어져 나오게 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 만든 눈사람이 한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다. 어, 쓰러지면 안 되는데. 아침 커피를 마시고 마당에 나가 기울어진 눈사람을 다시 세워본다.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 산 것 같은 초조함으로 균형감을 잃고 기우뚱해진 내 마음도 이렇게 붙잡아 세워 보고 싶다. 따뜻한 아침볕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연기 같은 입김을 불며 혼잣말을 해본다. 눈사람, 너무 빨리 녹지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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