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잡한 멕시코시티 도로
이희동
쿠바 아바나행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무려 6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공항에서만 있을 수 있겠는가. 내 평생 언제 또 멕시코에 올지 모른다며 우리 일행은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멕시코시티 도심을 잠깐이라도 다녀오자고 가이드에게 요청했다.
그러자 가이드는 멕시코시티의 치안이 너무 좋지 않다며 공항에서 짐 맡길 곳을 찾았다. 눈뜨고 코 베가는 곳이 멕시코시티라며 한순간에 배낭을 도난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모든 보관소는 만원이었고, 가이드는 도심행을 포기하자고 했다. 어쨌든 공항을 벗어나면 가이드가 모든 걸 챙길 수밖에 없는데 아직 일행 얼굴도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기는 쉽지 않은 듯 보였다.
평소 같았으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냥 수긍하고 말았다. 혼자 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저어됐지만, 무엇보다 공항에 내려 들려오는 낯선 스페인어에 주눅이 들었고, 굳이 달러를 멕시코 페소화로 환전해야 한다는 것도 나를 주저케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영화 <시카리오> 등에서 봤던 무법천지 멕시코의 이미지가 계속 떠올랐다. 잘못된 편견일 가능성이 높고,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그 정도일까 싶었지만 굳이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뜻이겠지.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도심을 포기하는 대신 공항을 나와 잠깐 그 주위를 돌아다녔다. 가장 먼저 와 닿은 것은 매캐한 매연 냄새였는데, 역시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무감각해졌다. 그러니까 이곳 멕시코시티 사람들도 멀쩡하게 사는 거겠지.
멕시코의 거리를 돌아다녀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베트남에서도 그랬듯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개들이었다. 꽤 큰 개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19세기 말 조선에 처음 왔던 서양인들도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들을 신기한 듯 기록했었는데 내가 딱 그 꼴이었다. 우리는 언제쯤 무엇 때문에 개를 묶기 시작했을까? 이웃이 사라지면서 생긴 현상은 아닐까?
다시 공항에 들어와 쿠바행 비자를 사고 출국 심사를 한 뒤 공항 라운지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생전 처음 가본 라운지에서 무제한으로 술도 마시고 음식도 먹었지만 나가서 보지 못한 멕시코시티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돌아올 때는 밤이라고 하니 더더욱 나갈 수도 없을 테고, 과연 나는 또 멕시코 땅을 밟을 수 있을까?

▲ 눈뜨고 코 베간다는멕시코시티 광장의 모습
윤승훈
포르노? 여행자보험?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멕시코시티에서 아바나로 가는 비행기는 인천에서 타고 온 비행기의 절반 크기였고, 기내 안에서 들리는 언어도 온통 스페인어뿐이었다. 그래도 국제선이라 은근히 기대했지만 기내식도 간단한 빵과 샐러드뿐이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아바나는 그리 멀지 않았다. 눈을 잠깐 붙이려 했으나 이내 도착 기내방송이 나왔고, 나는 부랴부랴 입국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름과 여권번호를 적고 소지한 제품들에 대해 체크를 하는데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포르노물 소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입국심사지에 포르노물이라.
아마도 그것은 공산주의 국가 쿠바의 특성인 듯했다. 포르노를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는 거겠지. 모든 걸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포르노 아니던가. 제국주의가 종교를 앞세워 식민지를 개척해 나갔다면 자본주의는 포르노와 맥도날드 등을 앞세워 세력을 확장해나갔다.
비행기 착륙. 드디어 쿠바였다. 인천에서 출발한 지 거의 하루 만이었다. 입국심사를 하는데 여행자보험을 보여 달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쿠바의 무상의료 때문에 오는 이들 때문에 생긴 것 같았다. 영화 <식코>를 보면 적지 않은 미국인들이 간단한 수술을 받기 위해 쿠바로 온다고 하지 않던가. 그와 관련된 거겠지.
심사대를 거치자 이번에는 아시아인들만 따로 분류하더니 또 다른 서류를 작성해야만 했다. 코로나와 관련된 것이었다. 행선 추적을 위해 쿠바에서 묵는 숙소의 주소를 적는 것이었는데 매우 형식적이었다. 그때만 해도 쿠바에서 코로나는 딴 세상 이야기였으니 그럴 수밖에.
그 모든 수속을 거치고 짐을 찾은 뒤 공항에서 나왔다. 열대의 나라답게 후덥지근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쿠바의 상징 형형색색 올드카. TV에서나 볼 수 있는 그 50년대 차들이 저리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다니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쿠바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쿠바공항에서 더 작성해야 했던 서류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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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원이, 2026년에는 서울시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20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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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확인한다고?' 쿠바의 입국심사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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