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선서원 오른편,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강항 선생의 묘. 사당 용계사에서 도보로 2-3분 거리에 있다.
이돈삼
한편으로는 일본의 통치 및 관료체계, 지리와 풍속을 살폈다. 군사 정세와 시설, 장수 명부까지도 입수했다. 성곽의 건축법까지도 꼼꼼히 챙겼다. 전쟁에 대한 일본과 조선의 대처방안을 비교하며 조선의 군사제도를 비판하고, 총체적인 개혁 방안까지 고민했다.
강항은 정탐의 결과를 조선에 몰래 보고했다. 그 기록을 한데 모은 것이 '건거록(巾車錄)'이다. 죄인이 탄 수레, 즉 포로생활을 한 자신의 경험담을 적은 글이다. 나중에 제자들에 의해 '간양록(看羊錄)'으로 제목이 바뀌었다.
'간양록'은 1980년대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만들어져 방영됐다. 조용필이 부른 주제가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서리고/ 어버이 한숨짓는 새벽달일세/ 마음은 바람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의 잡초는 누가 뜯으리/ 어야어야어야 어야 어~~야/ 어야어야어야 어야어야//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님그린 뜻 바다되어 하늘에 달을 세라...'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 오즈시의 시민회관 앞에 강항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비문에 '일본주자학의 아버지, 유학자 강항'이라고 씌어 있다. 그 지역에 강항 현창사업회와 연구회도 꾸려져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소개돼 있다.

▲ 영광 내산서원에 있는 용계사. 수은 강항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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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산서원 전경. 수은 강항을 추모하며, 그의 절개와 성품을 기리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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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내산서원에 배향돼 있다. 서원은 강항이 죽고 17년 뒤에 처음 세워졌다. 강항을 추모하며, 그의 절개와 성품을 기리는 공간이다.
입구에 강항의 동상과 유물전시관이 있다. 홍살문을 지나서 외삼문과 내삼문, 내산서원, 용계사, 경장각을 차례로 만난다. 내산서원 건물 뒤에 있는 용계사가 강항을 모신 사당이다. 오른편 산자락에 강항의 묘도 있다.
내산서원을 찾는 사람이 드물다. 갈 때마다 한산하고, 혼자였다. 코로나 시대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피기 시작한 동백꽃과 산수유꽃도 예쁘다. 힐링을 겸한 역사 여행지로 맞춤이다.
광주 민족민주화대성회 박관현 열사의 생가도
▲ 박관현 열사의 생가. 내산서원에서 가까운, 영광군 불갑면 쌍운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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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 5월 옛 전남도청 앞의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이끈 박관현 열사의 동상. 내산서원에서 불갑사로 가는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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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 가볼 만한 데도 많다. 내산서원이 있는 불갑면 쌍운리에 박관현(1953∼1982) 열사의 생가가 있다. 1980년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은 그해 5월 옛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민족민주화대성회를 이끌었다.
82년엔 광주교도소에서 5·18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하다가 사망했다. 국립 5·18민주묘지에 잠들어 있다. 내산서원에서 불갑사로 가는 길목에 박관현 동상도 있다. 영광군청년회의소에서 세웠다.
역사 깊은 절집 불갑사도 지척이다. 백제 침류왕 원년인 384년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하면서 처음 지은 도량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중창과 중수, 보수를 거쳤지만 기와 하나까지도 허투루 봐선 안 될 절집이다. 가을엔 붉은 상사화로 황홀경을 연출한다.
▲ 영광 불갑사 전경. 백제에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가 처음 지은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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