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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매? 부모에게 맞는 아이, 이를 구하려는 어른

[리뷰] 세 여성의 특별한 연대, 영화 <고백>

21.03.02 11:00최종업데이트21.03.02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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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고백> 포스터 ⓒ 리틀빅픽처스

 
"몸에 든 멍이 사라지는 건 안으로 깊숙이 스며들기 때문인가 봐."

영화 <고백>은 사라지지 않는 아동학대 심각성을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소재 면에서 <도가니> <미쓰백> <어린 의뢰인> 등이 떠오르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다. 아이를 학대하는 장면을 사용하지 않고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게 고통스러울 수 있단 걸 알려준다. 

어느 날, 전대미문의 유괴 사건이 벌어진다. 일주일간 1천 원씩 1억 원이 모이지 않을 경우 유괴한 아이를 죽이겠다는 유괴범의 선전포고. 푼돈으로 아이를 살릴 수 있다는 면책권과 이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며 순식간에 전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한편, 며칠 전 사회복지사 오순(박하선)과 보라(감소현)의 아빠가 격한 싸움을 벌인 지 얼마 안 돼 아이 아빠가 숨진 채 발견되는 일이 벌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를 돌봐주던 오순과 보라가 행방불명되자 신입 경찰 지원(하윤경)의 의심은 날로 커진다. 최근 조깅을 하다가 공원에서 오순과 보라의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던 것이 떠오른다. 아이 아빠의 변사체와 유괴 사건에 연결성이 있을 거란 생각이 커진다. 사건 당일과 동선이 겹치는 알리바이, 각종 CCTV 속 수상한 행적은 오순이 유괴범이라는 확신으로 굳어진다.
 

영화 <고백>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영화는 두 사건을 투트랩으로 이끌어 간다. '천원 유괴사건'을 맥거핀으로 두고 거기에 시선이 쏠리도록 유도해 극명한 대비를 선보인다. 며칠간 뉴스에 보도되며 관심이 이어지는 사건과 달리 사랑의 매라는 명목으로 학대와 방치가 일상인 어느 가정을 톺아본다. 이 중심에는 정서불안을 가진 사회복지사와 감정 제어가 안 되는 경찰이 있다.
 
사회복지사와 경찰은 고장 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친다. 좋게 이야기해 오지랖, 요즘 사람들은 민폐라 불리는 경찰의 과한 행동과 마음 쓰임이 오히려 팽팽한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영화는 과연 유괴범은 누구인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보라 아빠의 사망에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는지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하고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사회복지사 오순과 경찰 지원은 학대받는 아동, 또 다른 여성을 구하며 울타리가 되어준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언제든지 달려가겠다는 의지와 지속적인 관심을 두겠다는 약속을 강조한다. 이런 결과가 계속해서 반복되지 않으려면 제대로 된 법과 사회적 함의가 함께 가야 한다고 관심을 촉구한다. 어쨌든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며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관행도 깊게 반성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방관한 사회와 국가, 개인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이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나와 내 가족의 일이 되지 않으리만 법은 없기 때문이다.
 

영화 <고백> 스틸컷 ⓒ 리틀빅픽처스

 
벌어진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가슴에 영원히 박히는 대사를 이용해 오랜 여운을 남긴다. "사회복지사를 도와주는 복지사는 없어. 그래서 남은 돕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잃어선 안 돼"라는 오순의 상사 미연(서영화)의 말도 잊을 수 없어 자꾸만 베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이는 보라가 유독 눈에 밟히는 지역 사회복지사 오순은 자꾸만 날을 세워 물의를 일으키다 최근 경고를 받은 상태다. 하지만 친자식을 소유물처럼 대하는 보라 부모의 태도에 자꾸만 분노하게 된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슴이 시키는 일에 몸이 반응하는 걸 어쩔 수가 없다.   가정 폭력의 상처를 딛고 사회복지사가 된 오순이 소녀 보라를 만나며 아동 학대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체험한다. 영화 속 오순은 방관 또한 죄임을 시사하며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소녀, 사회 복지사, 경찰 이 세 여성이 주도적으로 행동하며 이해와 공감을 넘나든다. 폭력에 노출되었던 세 여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를 보듬는 특별한 연대를 보여준다. '너의 편이 되어 줄게'라는 포스터의 문구는 자신이 경험한 일을 더 이상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이 포함된 주문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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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다소 매끄럽지 않은 연출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환기하며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고민하도록 만든다. 이 작품으로 박하선은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장편 부문 배우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보여준 배우 박하선의 통통 튀고 유머러스한 매력과는 전혀 다른 얼굴이 낯설면서도 몰입감을 더한다. 거기에 의욕으로 똘똘 뭉친 여성 순경 지원을 연기한 하윤경, 상사 정은표와 선배 사회복지사 미연을 맡은 서영화까지 베테랑 조연들이 탄탄히 성벽을 세워준다. 이 영화의 제목 '고백'은 한 소녀의 말 하기 힘든 선택이면서도 'Go Back'의 뜻처럼 돌아가고 싶은 때로 가고 싶은 회귀의 후회, 혹은 희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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