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앞에 줄을 서 있는 아이들
이희동
호텔 레스토랑에 내려가 쿠바에서의 첫 식사를 기다렸다. 그래도 꽤 급이 있는 호텔이었기에 어떤 음식이 나올까 기대를 했건만 막상 음식은 기대 이하였다. 오믈렛, 과일, 음료수가 전부였고 맛도 그저 그랬다. 쿠바 음식에 대해선 기대하지 말라던 책 내용 그대로였다.
혹자들은 이 역시 미국의 경제봉쇄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했는데,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쿠바는 적도에 가까워 식자재가 풍부한 편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이후로도 쿠바 음식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다 비슷했으며 기억에 남는 건 오로지 술뿐이었다.
아침을 먹은 후 일행 몇몇과 아바나 시내를 잠시 돌아다녔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등교하는 학생들이었다. 다양한 인종의 아이들이 똑같은 교복에 각기 다른 색의 스카프를 메고 학교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스카프 색은 학년을 의미하는 듯 했다.
낯선 동양인들이 자신을 쳐다보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은 채 깔깔거리며 일상을 영위하는 아이들. 같은 공산주의국가여서 그런지 왠지 북한의 학생 모습과도 비슷해 보였다. 아마도 스카프 때문이리라.

▲ 교실 안에 호세 마르티의 사진.
이희동
창문 너머로 교육받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수업을 듣는 아이가 있는 반면, 이방인과 눈맞춤을 하며 딴짓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교실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한 인물의 사진이었는데 그는 피델 카스트로도, 체 게바라도 아닌 바로 호세 마르티였다. 호세 마르티는 1853년 아바나에서 태어나 스페인으로부터 쿠바의 독립운동을 이끈 혁명가로서 쿠바인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다.
소년 시절부터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1차 독립전쟁 때 실패한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뉴욕에서 쿠바 혁명당을 조직한 뒤 다시 쿠바로 돌아와 일으킨 2차 독립전쟁 때 전사했다. 그러나 이를 바탕으로 쿠바의 독립 열기는 뜨거워졌고 결국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쿠바 공화국의 국부로 추앙받았으며, 쿠바 각지에는 그의 동상들이 서 있다.
그런 호세 마르티의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문뜩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한 통틀어 우리의 독립운동사에서는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분단 구조는 각 체제에 필요한 위인들을 만들어냈고, 이 왜곡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히려 국내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만약 우리에게 호세 마르티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나중에 남북이 통일되었을 때 조금 더 쉽게 사회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바나의 거리

▲ K-POP에 맞춰 춤을 추는 쿠바 학생들
이희동
다시 거리를 걷는 중에 마주친 쿠바는 꽤 놀라운 구석이 많았다. 우선 그들에게 한국은 낯선 국가가 아니었다. 우리와 마주친 쿠바인들은 처음에는 "치노(중국)? 자폰(일본)?"이라고 물었지만, "꼬레아"라고 대답하자 그중의 십중팔구는 "싸커, 쏜, 굿"을 이야기했다. 여기서도 손흥민의 활약상은 대단한 듯했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의 자동차도 인기였다. 소위 올드카라고 불리는 1940~1950년대 차들 속에 한국 자동차 엔진이 꽤 있다고 하더니, 어떤 쿠바인은 오래된 티코를 정비하며 한국의 자동차가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또한 공원에서는 쿠바 아이들이 K-POP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 전혀 상상해 보지 않은 풍경이었다. 쿠바 속 한국이라니.

▲ 아바나 거리의 대포
이희동
이번에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등이 없어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는데 웬걸. 지나가던 차들이 모두 서는 것이었다. 운전자들이 우리더러 건너라고 손짓을 했다. 이때만이 아니라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모든 차가 마찬가지였다. 행인이 우선이라는 교통시스템인 듯 했다. 놀라웠다. 신호등 대신 약속으로 교통 체계가 움직이다니. 이것이 쿠바 사회가 가지고 있는 신뢰의 힘일까?
밝은 태양 아래 처음 걸어본 올드 아바나의 거리는 마치 오래된 유럽의 도시를 걷는 느낌이었다. 곳곳에 스페인 식민지 때 성당과 광장이 자리하고 있었고 도로에는 스페인 식민지 당시에 썼던 대포들이 차량금지판 용으로 세워져 있었다. 건물들은 대부분 낡았지만 오랜 세월의 두께만큼 그 나름대로의 운치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는 비극일 수도 있겠지만 이방인의 눈으로 그것은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건물의 발코니마다 걸려 있는 원색의 빨래들이 인상적이었다. 원색의 건물에 원색의 빨래들. 발코니는 스페인식 건물의 특징인 듯 했는데 아마도 이곳 사람들은 빨래를 널며 이웃과 소통하고,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인지할 것이다.
▲ 아바나 거리의 빨래들
이희동
그러나 아바나의 모든 곳에 감탄한 것만은 아니다. 거리 곳곳에 쓰레기가 널려져 있었다. 아바나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많은 여행객들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었지만, 사회가 점점 자본주의화 되어감에 따라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인 듯도 했다. 결국 과생산과 과소비가 자본주의의 본질 아니던가. 결국 쿠바도 늘어가는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을 시기가 올 것이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외출 채비를 한 뒤 로비로 나갔다. 오늘의 여행 일정은 아바나에 있는 헤밍웨이와 관련된 장소들. 과연 헤밍웨이는 쿠바에서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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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원이, 2026년에는 서울시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20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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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여행객을 깨운 닭 우는 소리... 이게 왜 부러웠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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