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xabay
자살은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
자살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회사측 진술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서사는 '자살은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로 압축할 수 있다. 증거 방식은 '정신 질환', '범죄', '가정사', '개인 성향' 등 죽음의 원인을 개별화하는 논거들이 동원되고 있었다.
특히 우울증이 언급되는 방식은 자살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경향을 강화한다. "고인은 평소 우울증과 비슷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서 자살을 선택한 것 같다"고 하며 업무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진술이 대표적인데, "고등학교 때 목 매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었다"거나 "2년 전부터 우울증 증세로 병원치료를 받아오던 중이었다거"나 "평소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이라거나 "빈틈을 전혀 안보이는 완벽주의자였다"는 등 다양했다. 이렇게 과거력이 등장하는 순간 모든 판단은 중지된 채 목숨을 끊은 이유가 꽤나 그럴듯하게 설명되는 것처럼 서술된다. 과거력으로서의 우울증이 자살 시점에서 왜 악화되었는지, 그 연유가 혹시 업무와의 연관성은 없는 것은 아닌지를 따져 묻는 질문들이 파고들 여지는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1990년대의 경우 회사측 진술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점과 비교해서 2000년대 이후의 자살 기사에는 회사측 진술이 꼬박 들어가곤 하는데, '업무와 관련이 없다'는 패턴이 반복된다. 이는 자살 사건을 개인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여러 담론 가운데 하나로 상투적이지만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회사측의 진술과 달리, 기사 텍스트만 보아도 업무와의 연관성이 높았던 자살 사건들이 적지 않다. 논쟁적인 지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업무 관련성은 산재 기준에 따른 것은 아니다. 일터에서의 절망 상태에 놓였던 망자의 고통을 드러내기 위한 차원에서 업무 관련성을 폭 넓게 본 것이기는 하다.
일례로 2010년대를 보면, 55건의 자살 사건 가운데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26건이 업무 관련성이 높은 자살로 추정된다. 업무 관련성에 대한 내용으로는 '촉박한 개발 일정', '할당 약정 스트레스', '고객과의 금전적 분쟁', '월급 값하라는 인격적 모독', '불완전 판매에 대한 고객 항의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실적 압박 스트레스', '실적 문제로 비롯한 여러 번의 발령', '지점 통폐합과 영업실적 압박', '손익분기점(BEP) 스트레스', '과도한 목표치' 등을 들 수 있다. 이 시기는 실적 압박에서 비롯하는 자살 사건이 빈도 높게 발견됐다.
관행과 실적 그리고 자살 사이
금융노동자의 자살 기사에서 불법적 관행과 연관된 자살 사건들이 많았던 점도 논쟁적이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기사만 보면 금융노동자들은 불법적인 사람들이 많은 것일텐데, 그렇게만은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법적 업무 관행을 조장하는 조직문화나 경영방식이 그 밑에 깔려 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울증 블랙홀'처럼 불법적 요소가 언급되는 순간 자살의 맥락에 대한 모든 판단은 중지되고 죽음의 원인 또한 개인적인 사유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만다.
하지만, 불완전 판매나 불법적 관행이 경쟁적인 이윤 추구 경영방식과 사실상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싶다. 차명계좌나 지인명의, 보고하지 않는 매매 등이 실적 압박과 연관되는 지점이 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적을 쌓기 위한 방법으로 위법적 관행이 방조되는 형국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관행들이 자살 사건으로 불거졌을 경우에도 그 책임은 오롯이 개별 노동자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회사로부터 빚어진 불완전 판매 문제임에도 불거진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개별 노동자가 떠안고 끙끙 앓아야 하는 실정이다.
고위험 고수익 상품을 출시하는 곳일수록 개별 노동자가 느끼는 실적 압박도 크고 만약 문제가 불거졌을 경우에 대한 책임이 개인에게 지워지는 경향이 강해 보인다. 금융노동자의 자살은 개인적 비극의 형태를 띄지만 그것은 실적 쥐어짜기식 조직문화가 방조한 비극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살 사건) 그건 실적 압박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죠'라는 어느 인터뷰이의 강조도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가 여기서 참조 삼을만한 대목은 대안을 마련하는데 있어서 개별 노동자 수준의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방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적 쥐어짜내는' 조직문화나 경영방식을 전환해내야 반복되는 자살의 행렬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공유하기
금융기업의 업무관행과 실적 그리고 자살의 연관고리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