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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한 노년을 덮친 불쾌한 침입자의 정체

[리뷰] 영화 <더 파더> 새로울 것 없는 소재 '치매'를 다룬 완벽한 연출과 연기

21.04.06 14:45최종업데이트21.04.0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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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파더>포스터 ⓒ 판씨네마(주)

 
"내 딸이 요즘 이상해요. 갑자기 다른 남자를 만나 파리로 떠나게 되었다고 이제 자주 찾아오지 못한다더군요. 그래서 간병인을 들여야 한대요. 근데 간병인이 자꾸 뭘 훔쳐 가는 거 같아서 시계로 시험해 봤죠. 거봐요... 방금 전까지 있던 시계가 또 없어졌어요. 세상에... 간병인을 믿을 수 있어야죠.

그나저나, 딸이 새 간병인을 데려왔어요. 딸이 또 있었다고 말했었나요? 화가였던 그 애랑 꼭 닮은 아가씨가 왔네요. 처음으로 간병인이 마음에 들어요. 이번에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일부터 우리 집에 날 보러 온다더군요. 아 참, 내 시계 어디 갔지?"

 
<더 파더>를 보다 보면, 마치 치매로 기억이 뒤죽박죽인 한 노인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혼란스럽다. 환자의 시점과 돌보는 사람의 시점에서 대리 체험을 할 수 있는 영화기 때문이다. 비선형적인 시간은 조각난 퍼즐처럼 마구 섞여 있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과연 끝을 낼 수 있을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무한궤도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영화는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의 기억에 의존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뚜렷한 서사를 찾기 힘들지만 앤(올리비아 콜맨)의 옷 색깔로 유추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확실하지는 않다. 안소니가 늘 제자리를 맴돌다 깨어난 곳은 가장 편한 장소여야 할 내 집, 내 방이다. 눈을 뜨고 문을 여는 순간 닥치는 공포스러움은 안락한 노년을 덮친 불쾌한 침입자다.
  

영화 <더 파더> 스틸컷 ⓒ 판씨네마(주)

 
따라서 영화의 흐름을 놓쳤다고 해도 상관없다. 영화 속 상황이 진짜인지 상상인지 찾을 필요도 없다. 극이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들어가는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간혹 어지럼증을 느낀다 해도 어쩔 수 없다. 혼란을 유발하는 설정인데다, 심리 드라마와 스릴러 장르를 오가는 게 작품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공간에서 답답함을 느낀다면 계산된 연출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배경과 인물은 집-병원-요양원 등으로 매우 한정적이이라 이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영화를 봤을 뿐인데 피로감이 밀려온다. 자연스럽게 딸 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시시각각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상대방을 지치게 하는 병 치매. 태산 같았던 부모가 서서히 무너져가는 과정을 곁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자식은 힘들다. 앤은 남편과의 잦은 충돌까지 감내하며 아버지를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어긋나버린 마음의 균열을 본인만 애써 모른체하고 있을 뿐이다.

계속해서 시계를 찾고, 몇 시인지 묻는 안소니의 행동은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잃어가는 시간을 붙잡기 위해) 최후의 발악인 셈이다. 안간힘을 쓰는 노인의 집착이 안쓰럽고 애잔하다.
  

영화 <더 파더> 스틸컷 ⓒ 판씨네마(주)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더 파더>는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동명 프랑스 연극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처음부터 80대의 안소니 홉킨스를 유념하고 쓴 대본답게 그를 위한 영화다. 고집불통에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이내 귀엽고 수줍은 행동을 보여주는 등 예측하기 힘든 치매 노인의 다채로운 모습을 제대로 포착해냈다. 이에 뒤질세라 올리비아 콜맨은 복잡한 내면을 대변하고 있다. 점점 노쇠해지는 부모의 몸과 흔들리는 정신을 그대로 받아내야 하는 자식의 입장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적 있는 두 배우의 앙상블은 시종일관 이야기를 팽팽하게 끌고 간다. 영화는 더 이상 새로울 것 없는 '치매'라는 소재도 연출과 연기의 변화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부녀의 일상을 바라보며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감정 이입과 동시에 혼돈, 공포, 충격, 부정, 포기의 단계를 밟아 가는 화면 속 인물들의 심리 상태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래서 <더 파더>는 아버지에 관한 영화이면서도 딸에 관한 영화다. 돌봐주고 보호해 주는 관계가 역전되는 순간을 사려 깊은 눈으로 조심스럽게 담아냈다. 찬란하게 빛나던 잎사귀가 다 떨어져 볼품없는 앙상한 나무처럼 돼버린 부모. 나조차 온전히 기억할 수 없는 아기가 되어버린 텅 빈 머릿속, 굽은 등과 센 머리카락, 흐릿한 눈동자가 애달프게 관객을 바라본다.
더 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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