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앞바다 세방낙조로 바닷가에 있는 숙소에서 보는 새벽 경치다.
정명조
쉬미항에 들렀다. 진도 서쪽에 있는 섬 여행 길목이다. 저도, 광대도, 송도, 혈도, 양덕도, 주지도, 가사도를 가사페리호가 오고 간다. 한때 이곳에서 낙조 유람선이 출발했다는데 지금은 없어져서 아쉬웠다.
참전복로 옆 바다는 온통 전복 양식장이다. 여기서 나는 참전복은 거친 물살 속에서 자라서 육질이 단단하다고 한다. 길가에서 사람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손맛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가다 서기를 되풀이하다 세방낙조 전망대에 다다랐다. 여기서 5분여 더 가면 가학방파제다. '서부해안로'에서 출발하여 '지산민속로'와 '참전복로'를 거쳐, '세방낙조로'까지 이어지는 진도 저녁노을길이 끝나는 곳이다. 해넘이 때면 어디에서나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볼 수 있는 길이다. 약 50km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드라이브 코스다.
청룡안에서 세방낙조 전망대까지 이어진 28km 구간은 '아름다운 자전거길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바다를 이웃하는 2차선 길이다. 자전거만 갈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지만, 앞뒤를 잘 살피며 달려야 한다.
저녁노을길이 끝나는 바닷가에서 하룻밤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찬바람이 불었다. 고깃배는 서둘러 바다를 오가고 있었다.

▲큰애기봉 전망 열일곱 살 순이가 총각 뱃사람을 기다리며 끝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곳이다. 가사도가 기다랗게 놓여있다.
정명조
큰애기봉
아침 일찍 세방낙조 전망대를 거쳐 큰애기봉에 올랐다. 오르는 길은 동백숲이다. 동백꽃은 나무보다 땅에서 많이 피었다. 비 온 뒤라서 이파리가 반들거렸다.
힘겹게 비탈길을 올랐다. 하늘도 바다도 잠시 사라졌다. 능선에 오른 뒤 백여 미터를 더 가면 애기봉 전망대다. 진도 서쪽에 있는 섬이 환히 보였다. 큰애기봉의 전설이 실린 안내판은 쓰러진 채로 한구석에 박혀 있었다.
春草年年綠 愛人歸不歸 (봄풀은 해마다 푸르건만, 사랑하는 사람은 가더니 아니 오시네)
열일곱 살 순이가 산 아랫마을 부잣집에서 일했다. 우물가에서 총각 뱃사람을 만나 산봉우리에서 보자고 약속했다. 순이는 나무하러 간다는 핑계로 날마다 험한 산을 올랐다. 점점 몸이 약해졌다. 귀신에게 홀려 미쳐간다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끝내 주인집에서 쫓겨났다. 어느 날 사냥꾼이 산봉우리에서 순이를 보았다. 다가가 흔들자, 썩은 나무 밑동처럼 힘없이 무너졌다. 사람들은 그곳을 큰애기봉이라고 불렀다.
▲송가인마을 앞산이 앵무새처럼 생겼다고 하여 앵무리다.
정명조
송가인길
송가인길을 달렸다.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차로 20여 분 걸리는 곳에 있다. 송가인공원부터 송가인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길 양옆 들판에는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송가인이 태어난 마을이 앵무리다. 앞산이 앵무새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우연이 아닌 듯싶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뒤 그의 집이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고, 마루에는 커피가 놓여 있었다. 그의 부모는 보이지 않고, 마을 어르신이 정자에 앉아 찾아오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트로트 한 가락이 나올 것 같은 정겨운 시골 풍경이었다.
▲가학방파제 약 50km에 이르는 진도 저녁노을길이 끝나는 곳이다.
정명조
▲주지도와 양덕도 참전복로에서 바라본 손가락섬과 발가락섬이다. 가사군도에 딸린 여섯 개 유인도 가운데 두 곳이다.
정명조
▲유채꽃 쉬미항을 지나 소포마을 앞 너른 들판에 유채꽃이 피었다.
정명조
돌아오는 길에 저녁노을길을 다시 달렸다. 저녁 무렵이 아니라도 좋았다.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고 바다를 즐길 수 있었다. 가는 곳마다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은 또 다른 볼거리였다. 요즘 같은 때 잘 맞는 비대면 드라이브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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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유채꽃과 파란 바다... 비대면 드라이브로 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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