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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적인 남편의 비밀...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리뷰] 영화 <내일의 기억> 기억이 나지 않는 과거, 자꾸만 보이는 미래

21.04.26 16:45최종업데이트21.04.2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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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일의 기억> 포스터 ⓒ (주)아이필름코퍼레이션 , CJ CGV

 
최근 이슈를 거두어 두고 오로지 영화만 집중해서 봤다. 영화란 혼자만의 작업물이 아닌 협업의 결과물이기에 또 다른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했다. 각색가 출신 서유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고, 한국에서 선호하는 장르 '스릴러'와 '미스터리'라는 이점이 강한 작품이다. 가장 믿어야 할 가족과 타인 사이의 거리감을 적절히 활용한 면도 있었다.
 
영화 <내일의 기억>은 분리된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에 관객은 다소 혼란스러워진다. 믿었던 사람을 어느 순간 불신하게 되고, 내 기억과 존재감까지 한꺼번에 무너지는 상황은 두렵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복잡한 심리를 분석해 진실의 퍼즐을 맞추는 과정은 긴장감을 유발한다. 대사 한 마디, 행동 하나까지 눈여겨본다면 트릭을 찾아내 결말 부에 예상외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과거, 자꾸만 보이는 미래
  

영화 <내일의 기억> 스틸컷 ⓒ (주)아이필름코퍼레이션 , CJ CGV

 
수진(서예지)은 낙상 사고 후유증으로 기억을 잃었다. 자신을 남편이라 소개하는 지훈(김강우)이 미심쩍지만 지금으로서는 누구를 믿고 말고 할 상황이 아니다. 남편이 일러준 대로 이름, 나이, 사는 곳, 간단한 사실을 익히며 천천히 회복하던 수진은 퇴원을 원했다.
 
한편, 남편은 급히 캐나다 이민 절차를 밟고 있었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아내 아침을 챙겨두고 출근할 정도로 헌신적이다. 남부러울 것 없는 아늑한 가정과 집, 그리고 캐나다로 곧 떠나는 청사진. 생각나지 않는 게 더 많았지만 수진은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믿었다.
 
약만 잘 챙겨 먹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던 건 오산이었다. 앞선 기대는 퇴원 첫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갇히면서 우려로 돌변한다. 수진은 잠깐 사이 정전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
 
이후 아파트 주민과 마주치는 짧은 시간 동안 미래가 보이는 이상한 일이 계속된다. 3층 여자아이를 만나는 순간 곧 차에 치일 사고를 떠올리게 되고, 7층에 사는 여학생이 귀가해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등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급기야 수진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온 힘을 다해 사고를 막으려고 한다. 걱정된 남편은 그때마다 약을 먹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에서 만난 옛 직장 동료(염혜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편에 대해 믿기 힘든 소리를 한다. 남편은 왜 직장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걸까. 그때부터 수진은 남편을 의지해 알아낸 게 전부인 자신마저 의심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나는 누구란 말인가. 남편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은 남편이 아닌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다. 급기야 전 직장에서 보낸 물건 틈에서 모르는 남자와 다정히 찍은 사진을 발견한다. 이 믿을 수 없는 상황 앞에서 과연 수진은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을까?
 
탄탄한 전개의 초중반을 지나 후반부 탄력 잃어

  

영화 <내일의 기억> 스틸컷 ⓒ (주)아이필름코퍼레이션 , CJ CGV

 
영화는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가진 자의 혼돈을 이용해 교묘한 트릭으로 관객을 속이고 있다. 과거의 기억, 불쑥 찾아오는 환영,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 혹은 기시감의 데자뷔가 뒤섞여 공포와 미스터리를 유발한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내일(미래)과 기억(과거)은 공존할 수 없고 어긋난 일이다. '내일의 기억'이란 말 자체부터 어폐가 있는 모순이란 말이다. 불쑥 강렬하게 스치는 환영이 과거에 일어난 것인지 미래를 예측한 일인지 모호한 연출은 수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여주는 도구다. 믿었던 남편이 진짜 남편이 아님을 알았을 때의 공포감, 그로 인해 잊고 싶었던 과거가 떠오를 때의 무력감이 동반된다.
 
영화는 초반 뿌려놓은 떡밥을 차질 없이 수거하며 마치 추리극의 범인을 찾듯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간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밝혀질 무렵,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나 싶고,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과 아침 드라마에 쓰인 자극적인 설정이 툭툭 튀어나오지만, 폭력에 노출된 여성을 구하려는 시도와 가족의 희생 방식은 애절함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나 느끼게 했다.
 
과연 사랑의 이름이 여러 개라면 그중에 하나를 이들의 관계에 붙여줄 수 있을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사랑이다. 상대방을 지켜주고 싶었던 마음은 과했고, 그 마음의 수신인은 항상 민폐만 끼쳐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두 주인공 서예지와 김강우의 케미도 잘 섞이지 못했다. 참고로 수진이 어떻게 고백했냐고 묻는 장면에서 쑥스러워하며 제대로 고백해본 적 없다고 했던 남편의 말이 진짜 둘 관계의 정체임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이 그렸던 내일은 오지 못한 채 추억으로 남겨졌다. 앞서 말한 협업이 바로 예술의 중요한 포인트임을 서두에 꺼낸 이유를 관객은 다들 눈치 채지 않았을까?
내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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