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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글드글했던 설악산 산양, 다 어디갔지?"

[이 사람, 10만인] 박그림 설악산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와 김종술 시민기자

등록 2021.05.04 07:21수정 2021.05.04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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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앞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박그림 대표와 김종술 시민기자. ⓒ 김병기

 
위이잉~ 땅, 땅, 땅, 땅, 땅...

지난달 15일 오전 8시30분경 환경부 앞. 도로 건너편 공사장에서 1초 간격으로 굉음이 들려왔다. 잠깐만 서 있어도 귀가 얼얼할 정도였다. 박그림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 국민행동 공동대표(녹색연합 공동대표)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10만인클럽 회원인 김종술 기자가 그 앞에서 나란히 피켓을 들었다. 

박 대표는 지난 2월 3일부터 청사 앞에 2달 넘게 천막 농성과 시위를 이어가고 있고, 김 기자는 한 달째 피켓을 들고 있단다. 박 대표는 30여 년간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운동을 해왔고, 김 기자는 지난 13년간 4대강사업에 맞서면서 금강 살리기에 전념해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보자니 '산과 강'의 연대 투쟁처럼 비춰졌다.

[산과 강의 연대] "미친 놈? 그 소리 듣고 너무 통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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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 피켓 시위를 벌이고 천막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박그림 대표와 김종술 시민기자. ⓒ 김병기

 
'이 사람, 10만인'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을 소개하는 코너이다. 이날은 김종술 회원을 따라 나섰다. '금강의 요정'으로 불리는 그가 지난 한 달여간 환경부 앞에서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를 위한 동조 시위에 나선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날 출근길 피켓 시위를 마친 뒤 천막에서 두 사람에게 물었다. 우선 서로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생각이 사무치면 꽃을 피운다는 말이 있죠."

박 대표는 이같이 운을 뗀 뒤 매일 금강에 나가 온몸으로 취재하고, 수천여건의 기사를 쓰면서 4대강사업으로 인한 강의 죽음을 고발해온 김 기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간절하지 않으면 몸을 던지지 않아요. 몸을 던진다는 것은 삶을 던진다는 거죠. 10년 이상 강을 살리려고 몸을 던진 것은 간절함 때문이겠죠. 금강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 대표는 "어떤 사람이 내 앞에서 돌아서면서 '미친 놈'이라고 말했을 때 나를 인정해준 것 같아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모른다"면서 "특히 환경문제는 오랜 기간을 거쳐 해결해야 하는 지구전이기에 김종술 기자처럼 미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 김종술 기자의 눈에 비친 박그림 대표는 어떨까? 

"저는 강에 있고 박그림 선생님은 산에 있어요. 산의 물줄기가 망가지면 강의 물줄기도 망가집니다. 산과 강은 하나죠. 그래서 이번에 피켓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김 기자는 "13년밖에 안 된 저는 지쳐서 어딘가로 도망칠 생각도 하는 데 박 선생님은 30년을 버텨오셨다"면서 "지난 겨울을 추위에 떨면서 버티셨고, (공사장 소음 때문에) 굉장히 시끄럽잖아요, 저 같으면 완전 돌아버렸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박 대표의 표현을 빌리면 자신과 김 기자는 이미 산과 강에 '미친 사람들'이었다. 

[그의 무기] 전투복 치마와 접이식 원형 방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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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림 대표가 산양의 가면을 쓰고 설악산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박그림

 
이날 박 대표는 '녹색 치마'를 입고 '원형 피켓'을 들었다. 

"이건 제 전투복입니다. 투쟁복이죠. 처음엔 멋쩍었는데, 이젠 치마를 벗으면 허전합니다. 녹색은 생명, 평화를 상징하죠. 치마는 모든 것을 품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하려고 케이블카 싸움을 하면서 입었어요. 지난 2019년 9월 16일 환경부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결정을 한 뒤에는 벗었는데, 다시 전투복을 꺼내 입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가 원주지방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낸 양양군의 청구를 인용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원주지방환경청은 양양군에 환경영향평가서 추가 보완을 요청할 예정이다. 박 대표가 환경부 앞에 선 까닭은 "제대로 된 재보완 지시"를 촉구하기 위해서다.

녹색 치마가 전투복이라면, 결혼식 촬영 때 쓰이는 조명용 반사판을 개조해 만든 '원형 피켓'은 기습 시위 도구이자 케이블카를 막는 방패였다. 한쪽 면엔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라는 글귀가 적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같은 글귀와 함께 멸종위기종 1급이자, 천연기념물 217호인 '설악산 산양'이 그려 있다. 

"한번 접어볼까요?"

양 손으로 둥근 피켓을 비틀어 누르니 작은 가방에 쏙 들어갈 정도의 크기로 접혔다. 

"기습 시위할 때 최고죠. 휴대하다가 앞에서 탁 펼치면 경비들이 놀래서 허둥대요. 하-하. 제가 고안한 건데, 누군가와 약속하면 저는 1시간 전에 그 곳에 갑니다. 인근 도로에서 1인 시위를 한 뒤 사람을 만나죠. 제에게는 모든 곳이 운동의 현장입니다." 

그가 설악산을 위해 바친 30년이라는 세월도 그렇지만, 녹색치마와 원형 피켓만으로도 케이블카를 막으려는 박 대표의 간절함이 전해졌다. 사실 환경부 청사 앞 대로변에서 천막을 쳐놓고 90여일 가깝게 '나 홀로 천막농성'을 벌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침부터 날이 저물 때까지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견디는 것도 만만치 않다.  

특히 그는 73세의 고령이자 협심증을 앓고 있다. 이런데도 맨땅에 플라스틱 깔판과 스티로폼 위에 이불을 깔고 한겨울을 버텼다.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씻거나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불편할 텐데, 그는 되레 천막 속에서 '동거'하는 철쭉 걱정부터 했다. 

"저 철쭉에겐 미안해요. 천막을 칠 때 공간이 마땅치 않아서 저와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요, 꽃은 폈다 졌지만, 지금도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잖아요. 빨리 설악산 케이블카 부동의 하고 제가 철수해야 철쭉도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철쭉이 있는 곳에는 천막이 제대로 쳐지지 않아서 겨우내 찬바람이 그의 노숙 침실 안으로 매섭게 파고들었을 것 같았다.    

[알몸시위] 대청봉 체감온도, 영하 35~40도... 그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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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2일, 설악산 대청봉에서의 박그림 대표 알몸시위 모습. ⓒ 박그림

 
"김종술 기자를 처음 봤을 때는 '한두 번 정도 오고 말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매일 오더라고요. 가까이 있어도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렇게는 못하죠. 요즘은 '금강 요정'(김종술 기자의 별칭)이 찾아오는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하-하-. 그런데 '금강 요정'이라기보다는 투쟁적인 별명으로 '금강 전사'로 부르면 어떨까 싶어요."

박 대표의 표정은 밝았다. 어투도 확신에 차 있었다. 
  
시민기자이자 13년차 환경운동가인 김 기자는 30년 경력의 '대선배'에 대해 "대청봉에서 피켓을 들고 알몸 시위를 하는가 하면, 오체투지 등을 해온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구닥다리 운동방식'이라고 이야기할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온몸을 던져 활동하는 방식은 통한다"면서 "제가 그동안 금강에서 활동했던 것은 새 발의 피"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1월 2일이었다. 그날 설악산 대청봉의 체감 온도는 영하 35~40도였단다. 박 대표는 대청봉에 올라가 알몸으로 시위를 했고, 다음날 언론들은 앞 다퉈 둥근 피켓을 든 알몸 시위 사진과 함께 이 소식을 타전했다. 

"그 뒤에 만난 사람들이 제게 한 가장 많이 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박 대표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기자에게 물었다. 이어 박 대표는 "팬티는 입었는가였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는 "대청봉 밑 대피소에서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놓이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를 저의 행위로서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하다가 알몸 시위를 하자고 결심했다"면서 "설악산이 이렇게 헐벗은 몸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물론 팬티까지 벗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옷을 벗고 나서가 문제였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누군가는 사진 찍어줘야 하는데, 저 혼자였죠. 그래서 기다렸어요. 오래지 않아서 두 사람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분들의 도움으로 알몸 시위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죠."

그 뒤에도 박 대표의 싸움은 계속됐다. 오색에서 대청봉, 비선대에서 대청봉, 한계령에서 대청봉... 설악산 대청봉으로 나 있는 등산길 전 구간을 기어서 올라갔다.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불교 수행법이다.

"설악산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건가? 화가 치밀어 올라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 온몸을 땅에 대지 않고서는... 이마를 설악산 어머니의 등에 갖다 대면서 느꼈던 감정은 제 가슴에 진동으로 전해졌습니다, 어머니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전이됐죠. 목숨을 바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박 대표는 케이블카 반대를 외치며 오색에서 청와대까지 걸었다. 강원도청에서 443일간 천막농성을 했다. 원주지방환경청 앞에서 364일 동안 천막도 없이 '비박농성'을 했다. 광화문, 환경부 서울사무소에서도 50일, KT 본사 앞에서도 농성했다.

"길거리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 속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농성을 통해 이룬 작은 성공의 기억들이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에 꽉 차 있죠."

오랜 노숙에도 그의 표정이 밝은 이유는 단단함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악산에 대한 간절함과 사랑, 그리고 승리에 대한 확신이 오래된 육신을 단단한 바위처럼 만든 것 같았다.

[일문일답] "황금알 거위 배 가르고, 고려청자에 금 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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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림 대표 ⓒ 김병기

 
30여 년간 싸우면서 단련된 마음의 근육 때문인지 박그림 대표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 케이블카 반대 운동이 이렇게 길어질 것으로 생각했나? 
"이 일은 저의 삶이다. 일정 기간 동안만 하고 그만둘 일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 운동을 접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 일밖에 없다."

- 생계가 어렵지는 않았나? 
"그냥 살아진다. 하-하-. 환경운동이 돈벌이 직업은 아니지 않은가."

- 지속적인 운동을 가능케 한 힘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내가 설악산을 지킨다고 이야기하는데, '설악산 어머니'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 내가 힘들고 처져 있을 때 설악산 어머니 품속으로 들어가면서 나를 다독여서 일으켜 세우고, 다시 나아가도록 만들어준다. 모든 게 풀리면서 나의 상처와 아픔이 치유된다." 

- 눈물을 흘린 적도 많을 것 같다.
"대청봉에 오르면 땅이 너무 패여 돌이 다 드러나 있다. 엎드려서 손을 대면 떼기가 두렵다. 손에서 피가 나는 듯해서.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울컥했던 기억도 많다. 산양에서 풍겨 나오는 야생의 당당함에 흘린 눈물도 있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자 안타까움의 눈물이다." 

-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걸면서 '환경이 밥 먹여주냐'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색 주민들과 상생마당을 했을 때에도 그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케이블카가 놓이면 하부 종점인 오색은 그저 거쳐 가는 곳이다. 속초, 강릉에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풍부한데 누가 오색에 머물겠나? 환경은 밥 먹여준다. 환경은 우리 삶을 결정하는 존재이다. 그게 망가지면 우리도 망가진다. 설악산이 망가지면 지역경제가 살 수 없다."

- 장애인, 노인의 접근권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케이블카는 장애인들에게는 필요한 시설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명절 때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집회 시위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봐라. '우리도 고속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이다. 보편적인 이동권이 확보돼 있지 않다. 케이블카를 놓아도 케이블카를 타러 갈 수가 없다. 장애인들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특히 국립공원은 전 국토의 4%밖에 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아이들에게 되돌려주어야 하는 땅이다. 4%도 물려줄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국립공원이나 자연보전지구를 지정하나. 전국 유원지 등에 케이블카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70~80대가 대청봉에 꼭 올라가야 할까? 젊은 세대가 누릴 수 있는 삶을 똑같이 누리려고 한다면 그건 욕심이다. 80살 먹은 분이 케이블카 타고 대청봉 가야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이런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저 바라 보면서 '아 정말 아름답구나', 이렇게 느끼면 된다."

- 그럼에도 양양군이 설악산 케이블카에 미련을 갖는 이유는?
"치적에 눈 먼 지자체장의 욕심이다. 대박을 터트릴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지금까지 설악산 때문에 먹고 살았다는 것을 망각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겠다는 것이다. 고려청자에 금을 긋겠다는 것이다." 

- 환경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환경부 기구 중 '환경 훼손부서'가 있나? 그럼 보존해야 한다. 2019년 환경영향평가를 부동의한 잣대를 바꾸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빨간불은 멈춤', '파란불은 통행'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횡단보도를 마음 놓고 건너간다. 그 믿음이 깨지면 사고로 뒤죽박죽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자연 전체에 대한 결정이다. '부동의'를 전제로 한 재보완 지시를 해야 한다."

- 결국, 환경부가 '부동의'를 결정하라는 말로 들린다.
"맞다. 양양군은 그 노선에 케이블카를 놓아도 자연 훼손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그곳은 전국토의 1%밖에 되지 않는 자연보존지구이다. 케이블카를 놨을 때 환경에 영향이 없겠는가? 또 양양군은 산양, 삵, 하늘다람쥐, 까막딱따구리, 담비 등 멸종 위기종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국립공원을 찾는 것은 경관 때문이다. 케이블카의 가장 큰 문제는 경관 훼손이다. 이 문제를 보완하려면 '투명기둥'을 세워야 한다. 또 80대의 곤돌라가 돌아갈 것이다. 이를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나?"

[멸종위기종 1급, 산양] "설악산에 드글드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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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림 선생의 무인 카메라에 포착된 산양의 모습. ⓒ 박그림

 
박 대표가 설악산에서 산양을 처음 본 것은 70년대 초였단다. 

그는 "내설악에서 백담사 거쳐 대청봉 올라가는 산행 중에 우연히, 아주 잠깐 마주쳤다"면서 "첫 느낌은 먼발치에서 얼떨결에 지나쳤기에 강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 뒤부터 박 대표는 산양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산양의 흔적을 조사하고 산양이 사는 곳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가까이 가서 본 산양은 당당했습니다. 야생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혼자 누리기에는 너무 안타까웠죠. 다음 세대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에게 현재 몇 마리의 산양이 설악산에 살고 있냐고 물었다. 그는 "250여 마리"라면서 기자에게 "250마리라면 많다고 느껴지냐"고 되물었다. '그렇다'고 말하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설악산에 사는 노인들에게 250여 마리 이야기를 하면 다음과 같이 되묻는다고 했다. 

"그 많던 산양들이 다 어디로 간 거야?"
   
그분들의 표현으로는 "설악산에 산양이 드글드글"했단다. 박 대표는 "산양에 대한 우리의 기준이 높아지지 않으면 설악산은 회복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김종술 기자가 오랫동안 금강에서 싸워온 것은 설악산을 바라보는 나의 경외감, 간절함과 같은 종류의 신념 때문일 것"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4대강 등 훼손된 자연의 회복은 몇 세대를 거쳐서 이뤄질 수 있습니다. 그 시간은 지구의 시간입니다. 그걸 우리의 시간으로 판단하려니까 자꾸 시행착오가 일어나죠. 사람들은 가시적인 효과를 보고 싶어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하면서 아이들에게 내가 꿈꿨던 세상을 되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박 대표는 "지역경제 살리기 등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지만 난개발하고 산에 케이블카를 놓고 금강을 해치는 것은 미래 세대 아이들로부터 자연유산을 훔쳐서 돈으로 바꿔치기 하는  것과 같다"면서 "부끄러운 조상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4월 23일 원주지방환경청은 양양군에 환경영향평가 보완요구서를 보냈다. 박 대표가 그동안 '부동의를 전제로 한 제대로 된 재보완 지시'이어야만 한다고 강조했던 그 요구서였다. 그 문서에는 동물상, 식물상, 수질, 토지이용, 지형·지질, 소음·진동, 경관, 탐방로 회피대책, 시설안전대책 등 10여개 항목의 재보완 요구가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양군은 즉각 반발했지만 박 대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평가했다. 박 대표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설악산 케이블카 부동의를 전제로 한 재보완 지시 요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지 않았나 싶다"면서 "하지만 완전한 부동의가 결정돼야만 만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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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그림 대표가 설악산 케이블카 반대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 박그림

 
지난달 27일 다시 만난 박 대표에게 '이번 결정으로 천막을 걷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물었다. 개인적 생각을 전제한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매주 대청봉에서 1인 시위, 전국 22개 국립공원 정상에서 1인 시위, 소공원에서 1인 시위, 설악산에서부터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정도를 생각했어요." 

'그 정도'라니...

환경부 농성장을 철거해도 그는 '지독한 싸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이 밝은 건 지난 30여년 동안 싸운 게 아니라 설악산을 사무치게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어디서건 '전투복'인 녹색치마와 '방패'인 원형 피켓을 들고 다니는 그는 싸움을 한 게 아니라 사랑을 했다.

박 대표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85일만의 귀향'을 알리며 이렇게 적었다.

"거대한 성 앞에 녹색집 하나. 설악산을 지키는 씨앗을 뿌려 넓은 그늘을 만들어 쉬게 하리라!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날들이기를! 함께 해주셨던 연대의 힘을 안고 더 굳게 지키려고 85일 만의 귀향, 농성장을 떠나 어머니께 돌아갑니다. 설악산 어머니여! 산양 형제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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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영상 보기] https://youtu.be/ueqwhVYC4y4
 
#박그림 #설악산케이블카 #김종술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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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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