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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최선 다 한 전자랜드에 박수를

올시즌 끝으로 팀 매각... 전자랜드가 팬들에게 남겨준 잊지 못할 '추억'

21.04.30 14:24최종업데이트21.04.3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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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전자랜드 농구단 선수들 ⓒ 인천 전자랜드 농구단 홈페이지

 
아쉽게도 역스윕의 기적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자랜드는 챔피언을 향한 기나긴 도전도 미완의 꿈으로 남긴 채 18년의 역사를 마무리하게 됐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가 29일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4강 플레이오프 전주 KCC와의 5차전에서 67-75로 패하며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했다. 1, 2차전을 모두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던 전자랜드는 홈에서 열린 3, 4차전에서 극적인 대승을 거두며 대역전에 대한 희망을 되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전주에서 치른 마지막 5차전에서 끝내 체력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이날 경기가 전자랜드라는 이름으로 치르는 마지막 경기였기에 선수단과 농구팬들 모두 진한 아쉬움을 감출수 없었다. 이미 올시즌을 끝으로 구단 매각이 확정된 전자랜드는 이날 패배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며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전자랜드는 2003년 인천 SK 빅스를 인수하여 창단했다. 프로농구 초창기 인천은 대우증권 제우스(1997-99년)-신세기 빅스 (1999-2001년)-SK(2001-03년)로 모기업과 팀명이 자주 바뀌면서 불안정한 역사를 이어갔다. 전자랜드가 등장한 이후 블랙슬래머(2003-09년)에서 엘리펀츠(2009-21년)로 팀 명이 한 차례 바뀐 것만 제외하면 인천 연고팀 중 가장 오랜 시간 역사를 이어오며 농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쉽게도 전자랜드가 농구계의 중심에서 빛난 시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신 구단들을 포함하여 인천은 24년에 이르는 역사 동안 프로농구 정규리그-챔피언전에서 우승을 차지해본 적이 없는 유일한 연고지다. 부산 KT와 창원 LG도 챔프전 우승은 없지만 이 팀들은 정규리그 우승은 각각 한 번씩 해봤다. 전자랜드는 챔프전 진출도 2018-19시즌에 딱 한 번 기록한 바 있다.

슈퍼스타들과도 유독 인연이 없었다. 물론 서장훈-문태종-문경은-신기성-조니 맥도웰 등 스타급 선수들이 활약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들은 다른 팀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말년에 영입되었거나 잠시 거쳐가던 수준에 머물며 전자랜드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스타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신인드래프트에서도 유독 운이 없어서 유능한 신인들이 등장할 때는 상위 지명권에서 밀리고, 흉작일 때만 높은 순위를 따내는 징크스로도 악명이 높았다. 자연스럽게 전자랜드는 스타보다는 끈끈한 조직력과 도전정신으로 승부하는 언더독의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사실 전자랜드는 농구팬들 사이에서 성적보다는 이른바 컬트적인 이미지로 더 주목받았던 팀이었다. 농구팬들 사이에서 전자랜드는 한때 이른바 '개그랜드'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했다. 2년 연속 꼴찌(2005-06), 역대 최단명 감독 배출, 역대 한쿼터 최소 득점 등 프로농구사에 각종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경신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형편없는 경기력을 자주 보이는 것을 비꼬는 의미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전자랜드는 다사다난했던 창단 초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강자들에게 도전하는 '언더독-스몰마켓의 반란'이라는 자신들만의 서사를 구축했다. 전자랜드의 역사는 사실상 '유도훈 시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랜드는 유도훈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최고성적이 4강에 한 차례(2003-04)에 오른 것에 불과했고, 매년 6강진출도 오락가락하던 그저그런 팀이었다. 하지만 유도훈 감독이 부임한 2010년 이후 전자랜드는 단 한 시즌(2015-16)을 제외하고 매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봄농구의 단골손님으로 거듭났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2009-10시즌 코치와 감독대행 시절을 거쳐 무려 11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구단 역사상 최장수 사령탑이자 전자랜드 농구사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구단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유 감독은 전자랜드에서만 정규리그 통산 319승을 달성하며 유재학 울산현대모비스 감독(543승)에 이어 역대 2번째로 '단일팀에서만 300승 이상'을 거둔 감독에 이름을 올렸다. 플레이오프 진출은 무려 9번이나 이뤄냈고 이중 챔피언결정전 진출 1회 포함 4강 이상의 성적을 거둔 것만 올시즌까지 5번이다.

전자랜드는 매시즌 강팀들을 괴롭히는 대항마로 성장하며 무수한 명장면들을 만들어냈다. 2010년대 이후 플레이오프 명승부의 중심에는 항상 전자랜드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2014-15시즌 6위로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하며 정규시즌 승차가 12게임이나 나던 3위 서울 SK를 6강플레이오프에서 3-0으로 업셋한 순간은, 프로농구 역사상 최대의 이변이자 전자랜드 농구사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2007년 프로농구에 데뷔하여 농구인생의 시작과 끝을 전자랜드와 함께한 '032' 정영삼은 팀을 대표하는 원클럽맨으로 남은 것을 비롯하여, 리카르도 포웰, 문태종, 정효근, 김낙현, 이현호 등은 전자랜드 농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설들이다.

전자랜드는 올시즌을 끝으로 구단 매각이 확정되면서 팀 슬로건을 '내 인생의 모든 것'(All of my Life)으로 정했다. 유도훈 감독이 올시즌을 앞두고 출사표를 던지며 "인생을 걸고 뛰겠다"는 각오를 밝힌데서 유래했다. 전자랜드는 슬로건에 부끄럽지 않게 시즌내내 열정과 근성을 보여줬다.

가뜩이나 다른 팀에 비하여 약한 선수층에 샐러리캡 소진율이 60%가 되지 않을 만큼 전력보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전자랜드는 27승 27패로 5위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했다. 시즌 후반기에는 외국인 선수 2명을 모두 교체하는 강수를 두며 조나단 모트리와 데본 스캇을 영입하며 우승을 향한 승부수를 던지기도 했다. 전자랜드는 프레이오프에서 4위 고양 오리온을 3승 1패로 제압하며 다시 한번 업셋을 이뤄냈고, 4강전에서는 정규시즌 1위팀을 전주 KCC를 한때 벼랑끝까지 몰아붙이는 등 인상적인 선전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끝내 우승트로피와는 인연이 없었다는 것을 비롯하여 각종 징크스를 넘지 못한 것은 전자랜드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을 만하다. 전자랜드는 역대 플레이오프에서 시리즈 최종전인 5차전에서만 7전 전패를 기록하며 단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KCC를 상대로만 올시즌 포함 최근 4번의 플레이오프에서 모두 패했고 이중 3번이나 최종전에서 무너졌다는 것이 뼈아프다. 또한 유도훈 감독은 용산고 선배인 전창진 감독과의 맞대결에서 전 감독이 부산 KT 사령탑 시절이던 2011-12시즌과 2013-14시즌에 이어 올시즌까지 3번 모두 5차전 승부 끝에 석패하는 징크스를 되풀이했다. 좋게 말하면 '졌잘싸'지만 전자랜드 선수단과 팬들에게는 끝내 청산하지 못한 통한의 역사로 남게 됐다.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승부의 세계에서는 때로 결과보다 더 중요한 가치들이 있다. 전자랜드가 지난 18년간 보여준 투혼과 열정은 지켜보던 많은 농구팬들에게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다. 

인생도 스포츠도 수많은 희로애락을 가슴에 안고서 다시 또다른 내일로 나아가야하는 법이다. 전자랜드라는 이름은 이제 사라지겠지만, 그들과 함께한 추억들이 남아있는한 결코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까지 팬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추억을 선물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준 전자랜드 선수단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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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전자랜드 유도훈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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