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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송중기라는 포장에 가려진 '빈센조'의 한계

21.05.03 13:31최종업데이트21.05.0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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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조 ⓒ tvN

 
tvN 주말드라마 <빈센조>(극본 박재범, 연출 김희원)가 바벨 그룹에 대한 강렬한 복수에 성공하며 막을 내렸다. 2일 방송된 최종회에선 팽팽한 대립을 거듭하던 많은 등장인물들이 잇달아 최후를 맞이했다.

장한서(곽동연 분)는 장한석(장준우, 옥택연 분)을 막으려다가 총에 맞아 사망한다. 홍차영(전여빈 분)도 총상을 입지만 빈센조(송중기 분)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져 목숨을 건지고, 장한석은 도주한다.

빈센조는 바벨에 대한 마지막 복수전에 나선다. 바벨을 배신한 한승혁(조한철 분)은 장한석이 보낸 암살자에게 살해당하고, 최명희(김여진 분)는 빈센조에게 붙잡혀 잔혹한 최후를 맞았다.

빈센조는 마지막으로 장준우를 추격하여 붙잡는다. 빈센조는 경찰의 추격을 받지만 금가프라자 주민들의 도움을 얻어 장한석을 납치하여 무사히 빠져나가는데 성공한다. 빈센조는 자신이 설계한 '속죄의 창'이라는 기계로 장준우를 처형한다. 공포에 질려 회유와 발악을 거듭하는 장한석에게 빈센조는 "동생(장한서)을 저승에서 만나면 사과해라"는 싸늘한 말을 남기고 기계를 자동장치로 변환한 채 자리를 떠난다.

모든 복수를 마친 빈센조는 이탈리아로 떠나고, 금가패밀리는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홍차영은 세상을 떠난 빈센조 어머니의 누명을 뒤늦게나마 벗겨준다. 시간이 흘러 빈센조는 한-이탈리아 수교 기념날 사절단에 섞여 한국을 찾아 홍차영과 재회했다. 빈센조는 이탈리아의 섬에 홍차영을 초대하고 두 사람은 키스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해피엔딩을 맞이했다.

<빈센조>는 조직의 배신으로 한국에 오게 된 이탈리아 마피아가 베테랑 변호사와 함께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린다는 이야기를 다룬 코믹 범죄 누아르물을 표방했다. 드라마는 방송 내내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고, 최종회 시청률도 수도권 기준 평균 16.6% 최고 18.4%, 전국 기준 평균 14.6% 최고 16.2%(닐슨코리아)를 기록하며 자체 최고를 경신, 지상파를 포함한 전 채널 동시간대 1위를 석권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주인공 빈센조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송중기는 <태양의 후예>에 이어 또 한 번의 대표작을 만들어내며 흥행보증수표로서 건재를 증명했다.

<빈센조>의 특징은 기존의 권선징악 스토리나 선한 영웅 캐릭터와 달리, 명분이나 도덕에 연연하지 않는 악당형 주인공을 내세워 정상적인 방법으로 처단할 수 없는 악을 응징한다는 카타르시스에서 나온다. 일급 범죄자들을 모아 더 나쁜 악당들을 응징한다는 OCN<나쁜 녀석들>이나 사적복수대항극을 표방한 SBS <모범택시>같은 다크 히어로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의 배경은 현대의 한국이지만 정작 빈센조라는 인물은 60~70년대 인기를 끌었던 미국 서부극의 카우보이 총잡이나, 일본의 사무라이, 중국 무협물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다. 이들의 공통점은 법과 질서에 연연하지 않고 본인만의 정의와 초인적인 능력을 앞세워 상대를 제거하는 무법자에 가까운 캐릭터라는데 있다.

최근 범죄물이나 스릴러 장르의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면서 이런 무법자형 주인공들이 득세하는 데는, 그만큼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부조리한 현실들을 제대로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대중의 아쉬움과 갈증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외부자'이자 지켜야할 선도 없는 '악당'인 빈센조가 종횡무진하며 평범한 사람들을 대신 거대한 기득권을 응징해주는 활극은 사이다같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빈센조>는 송중기라는 화려한 껍데기만 벗겨내고 보면, 결코 매력적이거나 공감할 수 있는 인물과 전혀 거리가 멀다. 빈센조는 이탈리아 마피아의 콘실리에리(참모, 변호사) 출신으로 설정되어있다. 동양인이 혈통을 중시하는 이탈리아 마피아, 그것도 고위직이 절대 될 수 없다는 기초적인 고증 오류 정도는 어차피 현실성과 거리가 멀었던 이 드라마의 극적 상상력으로 너그럽게 이해한다 치자. 하지만 엄연히 현존하는 최악의 범죄집단 중 하나인 마피아를 미화하는 것은 선을 넘었다.

<빈센조>의 가장 큰 문제는 '철학'이 없다는 점이다. <배트맨>시리즈의 브루스 웨인, 드라마 <괴물>의 이동식(신하균), <나쁜 녀석들>의 오구탁(김상중)과 미친개들(이정문, 정태수, 박웅철), <루카>의 지오(김래원) 등은 이른바 악과 대립하고 응징하면서도 자신들의 정체성이 주는 모순과 한계 또한 돌아보고 고뇌하는 모습을 통하여 성숙해가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빈센조>에는 이런 성찰이 아예 보이지 않는다. 이미 시작부터 완성된 주인공인 빈센조가 초인적인 능력을 과시하며 얼마나 폼나게 악을 처리하는지를 연출하는 데만 매몰되어있다.

또 <빈센조>는 최근에 방영된 그 어떤 드라마와 비교해도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들이 넘쳐난다. 첫 회부터 마지막까지 극중에서 이래저래 사망한 인물만 거의 백명에 육박한다. 치안이 우수하고 총기규제에 엄격한 한국에서 수시로 총격전이 벌어지는 것은 예사다. 빈센조는 악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납치, 협박, 조작, 살인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저지른다. 귀에다 총을 쏘거나, 사람을 불태워 죽이고 심지어 고문기구를 사용하여 고통스럽게 처형하는 잔혹한 묘사까지 등장한다. 히로인인 홍차영과 금가프라자 주민들은 그런 빈센조를 맹목적으로 추앙하며 오히려 스스로 '빈센조 패밀리'의 일원이 되어 범범행위에 동참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주인공이라는 캐릭터가 이 모양이니 악당들도 자연히 단순무식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부패한 기득권' 자체를 상징하는 바벨그룹과 메인 빌런 장한석, 최명희 등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강력한 포스를 내뿜었지만 오히려 회를 거듭할수록 그저 악랄하기만 하고 매력이 없는 삼류악당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들이 왜 악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왜 필사적으로 빈센조와 대립하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하는지에 대하여 납득할 만한 서사를 제시하지 못했다. 

무엇이 우리 사회에 바벨같은 거대한 악을 만들어냈을까. 왜 법과 질서가 제 기능을 못하여 빈센조같은 악인의 방식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 과정과 사회구조를 관통하는 깊이 있는 풍자나 성찰은 드라마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저 기득권은 기득권이라서 무조건적인 악이 되었고, 빈센조는 폼나게 악당을 응징했으며 어쨌든 결과적으로 정의구현을 이뤘으니 잘 된 게 아니냐는 게 이 드라마가 내세우는 권선징악의 한계다. 

<빈센조>는 가볍게 웃고 즐기는 판타지 활극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어둡고 잔인했다. 그렇다고 진지한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았다. 송중기의 화려한 원맨쇼 뒤에 가려진 <빈센조>식 권선징악이 과연 시청자들에게 어떤 공감대와 진정성을 남겼는지 돌아봐야할 부분이다.
빈센조 송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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