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섯알오름 학살터 기념 형상물
차노휘
섯알오름의 비극은 한국전쟁에서 시작되었다. 정부는 후방에서 북한군과 결탁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제주도에 예비검속령을 내렸다. 대부분 무고한 민간인 1000여 명이 단속되었다. 반항하면 빨갱이로 간주해서 경찰서 유치장이나 농협 등에 가두었다.
7월 16일과 8월 20일 한국군이 낙동강 지역까지 밀리게 되자 예비검속 된 사람들을 급기야 사살하기에 이르렀다. 섯알오름에서는 200여 명이 처형되었다. 그들은 죽어서도 집에 가지 못했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서 유족들에게 사체를 인계하지 않고 한꺼번에 매장해버렸기 때문이다.
1956년 5월 18일 당국의 허락을 받아 시신을 수습하지만 유골이어서 대부분 신분 확인이 불가능했다. 1961년에서야 유족에게 반환되었다. 같은 해 6월 15일에, 제주도민들이 희생자들을 위해 합동으로 묘지를 만들고 세웠던 위령비를 군사 정부는 무참히 파괴해버렸다.
우여곡절 끝에 2007년에서야 정부 지원을 받아 학살터를 정비할 수 있었다. 2015년에 이르러서야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처리 원고승소판결'로 드디어 67년 만에 불명예를 벗을 수가 있었다.
아침부터 바람이 불긴 했지만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터에서는 그 강도가 절정에 이르렀다. 서 있지 못할 정도로 강한 바람에 화장실로 대피해야 했다. 잠잠해졌을 즈음 다시 나와 일제 군사시설의 하나인 알뜨르비행장을 둘러보고는 들판길로 향했다. 맞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돌아서서 걷는 등 꼼수도 부리긴 했지만 들판에서 감자를 심는 사람들을 봤을 때는 이깟, 바람이야 뭐, 라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다.
▲ 알뜨르 비행장
차노휘
마침내 모슬포 항구를 지나서 10점 종점인 모슬포 올레에서 걸음을 멈춘 나는 걸어온 길을 가늠하듯 되돌아봤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걸었던 시간 동안 두서없는 바람이 불었지만 시간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를 알려주듯 이정표 역할을 했다. 바람도 규칙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몹쓸 바람이 불어서 모슬포가 되었다는 이곳에서 나는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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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문학박사. 저서로는 소설집 《기차가 달린다》와 《투마이 투마이》, 장편소설 《죽음의 섬》과 《스노글로브, 당신이 사는 세상》, 여행에세이로는 《자유로운 영혼을 위한 시간들》, 《물공포증인데 스쿠버다이빙》 등이 있다. 현재에는 광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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