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남매가 독립운동에... '산루리 영웅'들을 아시나요

수원박물관 '산루리의 독립운동가들' 특별전시

등록 2021.05.24 09:47수정 2021.05.24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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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당시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이다. 유교적 관념이 강하게 지배하던 1910년대 여성의 외부 활동은 여의치 않았을 터.


수원에는 유관순과 비슷한 시기, 치열한 삶을 살았던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다는 건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독립운동가 이선경(1902~1921)이 그 주인공이다.

그가 독립운동사에서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하는 건 이선경의 언니와 동생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수원박물관에서 산루리의 독립투사 들을 다룬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 추광규

 
수원박물관, '산루리의 독립운동가들' 특별전시

수원이 낳은 독립운동가 이선경의 순국 100주년을 맞아 수원박물관에서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다.

'산루리의 독립운동가' 특별전시는 이선경과 그의 형제들이 독립운동에 나선 배경과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선경뿐만 아니라 산루리에서 태어나 독립운동 펼친 독립 영웅들을 재조명하기 위한 전시회다.

특별전시는 산루리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사진 관련 유물 등 100여 점을 전시하고 영상으로도 소개한다.


수원박물관 김경표 학예사는 "독립운동가 이선경을 비롯해 수원 신간회 및 사회운동을 한 김노적 선생 등의 독립운동 자료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독립운동가 이선경은 수원의 산루리에서 태어나서 3.1운동을 했고 조선의 독립을 목표로 한 '구국민단'에서 박선태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이선경의 형제 자매들도 함께 독립운동에 뛰어 들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되고 있다. ⓒ 추광규

 
이선경은 이 과정에서 혹독한 고문을 당한 후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다. 1921년 4월 1일 자 기사에 의하면 다른 구국민단 단원들은 다 나와서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선경만 혼자 궐석재판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선경이 법정에 출석도 못 할 정도로 몸 상태가 극히 안 좋았을 거라고 추론할 수 있다. 실제 일제는 옥중에서 순국할 경우 파장을 우려해 급하게 석방했다. 하지만 이선경은 고문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석방 5일 만에 19살 나이에 생을 달리했다.

독립운동가 이선경의 삶은 어땠을까?

이선경은 수원 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숙명 여학교, 경기 여자 보통학교를 입학해서 서울로 통학을 한다. 서울로 통학을 하면서 만난 동네 학생 박성태, 최문순 등과 함께 '구국민단'을 결성한다. 

구국민단 검거 과정을 그린 자료를 살펴보면, 이선경은 당시 박성태에게 받은 130엔이라는 자금을 들고 상해임시정부를 가려고 경성에 머물다 일제에 의해 체포됐다. 이선경이 상해임시정부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상해임시정부 적십자' 간호부가 되기 위해서다. 

이선경이 활동했던 '구국민단'은 수원에서 서울로 통학을 하던 학생들이 중심이 돼서 만들어졌다. 단장은 박성태라는 산누리 출신의 학생이다. 이선경, 최문순, 임효정 등의 여학생들도 함께했다.

단체 활동은 독립신문을 각 마을에 배포하는 것도 포함됐다. 이는 구국민단의 활동 목표이기도 했다. 상해판 '독립신문', '애국찬가' 등의 신문들을 마을에 배포함으로써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선경이 체포된 후 당시 투옥된 곳이 '서대문 감옥'의 '여감방'이다.

김경표 학예사는 "일제에 의해 어떻게 보면 19살 어린 나이에 조국을 위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모진 고문을 당했고, 그 결과 목숨을 잃고 나라를 위해 끝까지 목숨을 바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 바로 이선경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원 산루리의 독립영웅들 테마전이 열리고 있다. ⓒ 추광규

 
특별전시에서는 이선경의 언니 이현경과 동생 이용성에 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이현경은 일본 유학하던 시절 1921년 3월에 3.1만세 운동 2주년 기념 만세운동을 했다. 귀국 후에도 전국 여성단체인 근우회 조직을 하는 등 활발히 활동했다. 

또 이용성은 수원에서 사회운동을 펼치면서 해방 이후에 수원시의회 의원으로 활동했다. 변절의 시대에 삼 남매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보기 드문 집안이다.

수원 산루리는 일제강점기 향교로와 수원화성의 4대문 중 하나인 팔달문 사이에 있던 마을이며 현재의 수원시 팔달구 중동·영동·교동 지역이다.

수원의 자랑이기도 하면서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큰 획을 그린 '수원 산루리의 독립운동가' 특별전시는 오는 7월 4일까지 전시를 이어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린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이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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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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