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26일 노동안전보건단체들이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턱 높고 제외 많은 산재보험"에 대한 제도개혁을 촉구하고 상징의식을 벌이고 있다
반올림
산업재해(이하 산재) 처리 지연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통은 이미 오래된 문제이자,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문제입니다. 대표적인 업무상 질병인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산재 처리에 평균 4개월이 걸립니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긴 처리 기간 동안 생계 문제의 불안에 직면합니다.
처리 지연의 문제는 산재 신청을 기피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더구나 대다수의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산재로 해고를 당해도 산재 승인을 받기 전까지 해고의 부당성을 주장할 수도 없는 막막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세종시 고용노동부 앞에서 농성 중에 있습니다.
처리 지연의 문제로 노동자들의 요구가 제기된 이후 근로복지공단은 몇 가지 해결방안을 제시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6대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추정'의 원칙입니다. 업무와 질병 간의 인과관계 에 대해 일일이 개별 심사를 할 것이 아니라 일정 기준 안에 들면 신속하게 처리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 한 해 동안 이를 적용하는 사례는 1만여 건 중에 겨우 367건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적은 이유는 '아직 세부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질병의 종류와 적용 직종을 협소하게 규정한 것도 모자라서 또 어떤 세부적인 기준이 필요한 건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편,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협소하게 정한 형태의 '추정의 원칙'을 적용받는 노동자들이라고 해서 산재 처리가 과연 빨라졌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특별진찰을 기다리는 시간, 특별진찰의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노동자들을 괴롭게 만들었습니다. 산재 처리 기간을 단축하겠다며 제도를 도입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공정성이라는 미명하에 또 다른 기준과 절차를 만들어 애초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강순희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의 언론 인터뷰는 이렇게 거꾸로 가는 공단 행보의 원인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산재 신청이 처리 지연을 유발하고 있다'는 이사장의 인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나라 산재 노동자 중 산재 신청을 하는 비율이 30% 수준에 불과합니다. 70%의 산재 노동자들이 모르고, 블편하고, 불안해서 산재 신청을 하지 않는 현실에서 '무분별한' 산재 신청이 처리 지연을 유발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적반하장입니다.
노동자들은 불안하고 불편해서 산재 신청을 꺼리고 사업주들은 산재 은폐를 위해 공공연하게 공상 처리를 일삼는 현실에서 산재 신청이 무분별하다는 인식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입니까? 빅데이터 분석으로 천편일률적인 기준을 공고히 하면 산재 처리 기간이 단축될 것이라는 강순희 이사장의 환상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더러 산재보험의 목적과 취지를 망각한 퇴행일 뿐입니다.
산재보험 문턱 낮아지면 숨어있던 70%의 산재 드러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