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 동상 앞에 놓여진 노동법편람. 2020.11.4
이희훈
하지만 이런 나날을 보내고 있자니 어렵사리 따낸 '자격'에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새삼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TV 프로그램의 장면이 있다. "동물을 살리려고 수의학과에 왔는데, 이제 보니 안락사로 죽인 동물이 더 많다"며 울던 어느 수의사의 독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수습에게 굳이 비유하자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스러진 전태일 열사의 이상만을 꿈꾸며 노무사가 됐더니,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 사람을 자르는 저승사자가 된 자기를 보며 자조하는 셈이다.
전혀 유쾌하지 않았던 '업무상 재해'로 멀쩡한 직장을 나와 노동법을 공부했던 나에게나, 각자의 여러 사정과 이상으로 이 길을 선택한 수많은 동료들에게나 실무에서 담당하는 노무사의 업무란 당연히 만족스럽지만은 않을 것이다. 특히 이제 막 업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처지에서, 꽤나 많은 동기들이 직업적 회의감을 느끼고 어렵사리 얻어 낸 자격 대신 다른 진로를 알아본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조금은 침울해지기도 한다.
기계적 접근보다는 인간적 접근으로
세상만사에 답이 명확한 게 있겠냐마는 노무사는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자존감을 되찾기 위해 어떠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마다 그 답은 모두 다를 것이지만, 아래와 같은 방법이 답이 아닐지 생각해보는 수습 마지막 한 달이다.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기자 생활에서 수많은 사람을 대하며 느낀 점은,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문언적이고 기계적인 해석에만 집착한다는 것이었다. 노동법 측면에서도 최저한도라고 고시해 놓은 최저임금이 사실상의 최고임금으로 기능하고, 60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라는 정년제가 '60세가 되면 자른다'는 새로운 명제가 됐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법은 실생활의 최소한도를 규율하는 역할을 하기에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다고도 할 수 있다. 문제는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최소한 플러스 알파를 생각해야 하는데도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나와 같은 수습들은 더하다. 책에서 보고 알았던 노동법과 실무에 나와 적용하게 되는 노동법은 이름만 똑같지 전혀 달라 보이기 때문이다. 실무에서의 노동 문제는 단순히 법조문이나 판례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까지 따져야 한다.
예를 들어 현실에서 99.9%의 사장들이 급여체계를 세팅하면서 업종 불문하고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무조건 최저임금 지급을 고집한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업주들에게 "급여는 어떻게 주시겠어요?"라고 물어보다가, 그 누구도 최저임금 이상 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이제는 너무 당연하게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인 듯 적용하게 되는 데 익숙해져 버린다.
또 말썽 부리는 직원에 대해 한탄하는 인사팀장들에게 "지속적으로 근태를 관찰해서 증거를 남기고 여러 차례 절차를 거쳐 해고하라"고 자연스럽게 자문하기도 한다.
방금 해고당해 사무실에 찾아온 젊은 아르바이트생에게 '영업'이라는 명목하에 사건화를 은근히 종용하고, 머뭇거리는 그에게 사장에게 내용증명 우편부터 보내 통보하라고 조언하는 것에도 익숙해지는 수습의 마지막 달이다.
한편으로 1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서 이런 수학 공식같은 기계적인 법 적용에 익숙해져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물론 이런 해결 방법 또한 한 가지 답이지만, 전문가인 노무사로서는 최후의 해법으로 제시하여야 하지 무작정 일반화해서 분쟁 해결의 공식처럼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분명 노무사는 수험 시절 배웠던 수많은 법·경영 이론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없음을 알고 있고, 법 또한 사람이 사람을 위해 만들었기에 유연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노동청과 노동위가 그렇게나 화해를 권고하는 것은 그만큼 법적 해결이 최후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방증이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냉혹한 싸움의 결과가 나온 뒤에도 분쟁이 해결되기는커녕 더 심해진다.
중요한 건 법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법을 해석하는 우리들의 태도다. 법은 최소한의 강제적인 기준일 뿐인데도 대다수는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려 들 뿐 이에 대한 해석이나 판단을 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피한다. 하지만 언젠가 '노동 전문가'가 되리라 희망하는 수습 노무사로서, 사장도 노동자도 모두 웃을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분쟁이 발생하면 서로를 다시는 안 볼 원수로 만들어 노동청에서 대면시키기보다는 먼저 진정시키고 대화를 통해 조금의 합의점이라도 만들어내는 것이 세련된 해결방법이다. 노동자를 무작정 쫓아내려는 사업주도, 일단 파업부터 하고 보겠다는 노동조합도 어떻게든 협상 테이블에 앉혀 최후의 기회를 부여하는 게 '진짜 전문가'로서의 임무가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해고'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노동의 종말을 인간적으로 풀어내려는 신입 노무사의 가치 있는 발악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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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영상기자 재직 중 노동 이슈를 마주하고 노무사로 전직했습니다. 현재 노동법률사무소 동감 대표노무사·한국공인노무사회 이사로 재직 중이며,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국가정책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2024년 고용노동부 <AI 노동법 상담서비스> 개발을 시작으로 공공AX 사업 자문역으로도 활동하며, 고용노동부장관 표창·올해의 공인노무사상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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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과 노동자 사이에서... 신입 노무사의 이유 있는 '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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