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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노동자 아빠, 아이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나의 꿈은 ‘노동자’입니다 19]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그라인더공 박보근

등록 2021.06.18 10:16수정 2021.06.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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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지식인 혹은 스타들의 목소리만 넘쳐나는 속에서 진짜 이 사회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살려내고자 합니다. 노동자 개인의 삶을 인터뷰하면서, 어릴 적 꿈과 직장을 구하는 과정, 일터에서의 보람, 힘든 점,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의식의 변화 등을 중심으로 진솔한 삶을 기록합니다. [기자말]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소속 선수미공장(선박의 선수와 선미를 제작하는 공장)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는 글라인더공 박보근씨. ⓒ 박보근

 
조선소 그라인더공 박보근씨, 그는 <경남도민일보>에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칼럼을 쓴 지는 10년 남짓 되었네요. 예전에 문학회에서 시도 쓰고, 신문에 기고도 했던 인연으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필자 소개란에 '시인'이라고 쓰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시를 발표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는데 '시인'이라고 쓰는 건 맞지 않다고, 그냥 '노동자'라고 해달라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편집자가 페이스북에 저를 새로운 필자로 소개했는데, 그 밑에 달린 댓글들이 전부 '노동자에게까지' 지면을 할애해 주는 멋진 신문이라는 것이었어요. 그걸 보고 우리 사회가 노동자를 보는 시선이 어떤지 체감했죠."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소속 선수미공장(선박의 선수와 선미를 제작하는 공장)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는 박보근씨를 지난 6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소속 하청업체는 계속 바뀌었지만, 20년 간 같은 공장에서 일해
 

"20년 동안 소속 업체는 계속 바뀌었지만, 원청인 대우조선과 일터는 그대로 승계되었어요."

박보근씨가 20년간 같은 공장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그의 노동이 임금과 처우에서는 '비정규직'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비정규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고용 유연화 때문에 원청 노동자를 계속 줄여서 점점 하청 노동자가 많아졌어요. 2015년 정도를 기점으로 이전에는 7:3 비율로 원청 노동자가 많았는데, 지금은 2:8 정도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아졌어요. 불황에 대비해서 상대적으로 해고가 쉬운 비정규직을 늘려온 거지요."


한국 조선업은 2000년 이후 세계 1위를 지켜왔고, 최근 중국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다가 다시 되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7~8년 전부터 조선업 전체가 불황을 이어오고 있기에 구조조정 또한 진행되고 있다.

"호황기 때 유지하던 인원을 불황기가 오면 구조조정을 하는데요. 그동안 4만 명 정도 되었던 인원을 2만 명 정도로 줄였어요. 결국 용접사, 취부사들은 다른 업종으로 옮기게 되고, 설계나 영업직이 떠나고 나면, 호황이 다시 왔을 때, 이미 떠나서 자리를 잡고 있는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거든요. 그러면 호황은 왔는데 못 치고 올라가는 거죠. 그 사례가 일본이라는 얘기가 있어요. 그렇게 해서 일본 조선 산업이 한국에 그 자리를 빼앗겼다고요."

박보근씨는 국내 조선 사업이 지속적인 수출 실적을 유지하려면 당장의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하기보다 호황일 때를 대비해서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라 했다. 실제로 조선업이 기술과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숙련 노동자의 존재가 매우 중요한 것을 감안하면,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말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30년 경력에도 최저임금 수준의 시급, 사고가 끊이지 않는 위험한 작업 환경
  

박보근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용접용 작업화 사진. 그는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올렸다. '신발을 갈아신습니다./철판 모서리에 찍히고/ 용접 불꽃에 데이고/ 쇳가루에 밑창 닳은/ 신발을 갈아 신습니다./석 달을 이십 년처럼 뜨겁게 신었습니다.......' ⓒ 박보근

 
"젊을 때는 힘들고 하루해가 잘 가지 않았어요. 경력이 쌓이면서 공구를 잡고 일을 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재미있습니다. 그나마 임금 수준이 괜찮았던 2000년대 초에는 '내가 저 앞에 뾰족한 꼭지에 들어가 작업했던 배가 파도를 헤치고 나가는 구나'란 생각에 보람을 느끼기도 했죠. 그렇지만, 갈수록 열심히 일한 만큼 합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기에, 그저 살기 위해 밥벌이만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한 것도 사실이에요."
 
30년 넘도록 한 가지 기술로 일하다 정년퇴임을 하는 한 늙은 노동자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이제 불 들어가는 깊이가 대충 눈에 보이고 물을 얼마나 쳐야할지 얼추 감이 잡히자 정년일세, 그려…." 조선소 수많은 기술직종 중에 '곡직(曲直)'을 평생 밥벌이로 하던 분이었다. 곡직은 말 그대로 굽은 것을 곧게 펴거나 반대로 평평한 철판을 원하는 모양대로 구부리는 일이다. 이들의 기본적인 작업 도구는 산소와 혼합 가스를 이용하는 가열 토치와 철판을 급랭시키는 물이 전부다. 용접을 하면 고열로 인해 철판에 변형이 생긴다.
이렇게 뒤틀린 철판을 그들의 말인 불대와 물대로 수축 팽창을 이용해 반듯하게 편다. 반대로 평평한 철판이 그들의 불대와 물대를 거치면 이물의 유려한 곡선이 나오고 고물의 날렵한 뒤태가 된다. 철판의 두께와 재질에 따라 열을 얼마나 더해야 하는지 어떻게 식혀야 하는지가 눈에 보이는 이 35년 경력의 장인이 수당을 포함해서 받은 마지막 시급은 8200원이었다. 머리조차 들어가지 않는 좁은 공간에서 보이지 않는 뒷면을 거울 조각으로 반사시켜 놓고 용접을 하는, 내년이 정년인 용접공 김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초당 200회 고속으로 돌아가는 그라인더로 오백 원짜리 동전 두께에 깊이 2밀리의 홈을 측정 장비 없이 파내는 박 씨도 다를 바 없다. - 박보근, 2015년 7월 28일 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2015년 7월 박씨가 <경남도민일보>에 썼던 칼럼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임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경력과 무관하게 임금 인상률이 최저임금 인상률보다 낮았기에 갈수록 실질임금은 줄어들어 상대적 박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2000년에 시급이 사천 원 정도여서 월 500시간 일하면 160~170만 원 정도 받았어요. 그런데, 최저임금이 400~500원 오르면 저희 임금은 100~200원씩 올랐으니, 20년 일했는데, 지금은 최저시급과 비슷하게 받고 있어요. 20~30년씩 일한 사람들이 올해 취업한 이주노동자들과 임금이 몇백 원 차이밖에 나지 않으니까요. 더구나 지금은 노동자 보호 차원에서 주당 근로시간을 제한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잔업, 특근 수당이 빠지게 되니 더욱 경제적으로 힘들죠."

사실 3D업종이라 일컬어질 만큼 육체적으로 힘든데다가 불안정한 고용과 낮은 처우 때문에, 불황 이전에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이직률이 높은 편이었다. 노동 강도와 위험성에 비해 처우가 나쁘기 때문이다.

"20년 전 조선소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느낀 점이 '80~90년대에 막장이 무너져서 매몰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태백이나 정선의 탄광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어요. 진짜 무서운 동네라고 생각했죠. 조선 산업도 일종의 국가 기간산업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산재사고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아요. 지금도 크게 나아지지 않아서 생명을 담보로 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017년 5월 1일에 삼성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이 충돌해서 25명이 다치고 6명이 사망했던 사고는 박씨를 비롯해 조선소 노동자들에게는 특히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원청 업체는 다르지만, 대우조선소와 같이 거제도에 위치한 삼성조선소에서 그 사고가 일어났던 날은 5월 1일 노동절이었다. 노동절에는 원청 노동자들은 쉬지만, 협력업체 직원들은 불려 나왔다가 그 사고를 당했다.
 
"컨테이너선 갑판이 바다에서 30미터 이상 높아요. 거기에 배를 운전하는 함교 브리지까지 올라가면 굉장히 높죠. 추락사고가 가장 많아요. 용접할 때 이산화탄소나 아세틸렌가스를 사용하는데, 질식사고도 많이 발생하고요. 화재, 가스 폭발로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구조물이 떨어지거나 후진하는 지게차에 치어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경우처럼 중장비에 의한 사고도 있고요.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사측에서는 노동자의 안전불감증 때문이라고 얘기하지만,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하청 노동자들에게 며칠 내에 정해진 분량을 해내라는 식으로 재촉을 하는 경우가 많고, 이런 게 사고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노동자가 떳떳이 일할 수 있는 미래가 오기를
 

박보근씨는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소속 선수미공장(선박의 선수와 선미를 제작하는 공장)에서 20년째 일하고 있다. ⓒ 박보근

 
"휴게실에 막일하는 사람들끼리 앉아 있으면 깊은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배울 점도 있고 재미있는데도, 육체노동자를 하층계급으로 보는 사회적인 시선은 분명이 존재해요. 이를테면 일하다가 작업복 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퇴근할 때면 땀 냄새나 나지 않나 나도 모르게 위축되기도 합니다. 운동복 차림이라면 신경은 쓰여도 위축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는 1986년 원예학과를 졸업했고, 1987년 대우조선 노동자 대투쟁 때는 농사를 짓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 졸업하고 진주에서 낙농 기술을 배우고 사천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상대학 앞에서 시외버스가 운행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학생들이 시위한다고 난리가 났다는 거예요. 그 해 6월에 이한열이 죽었어요. 그리고 두 달 뒤에 대우조선에서 이한열과 같은 나이인 스물두 살의 이석규가 노동자 대투쟁 중에 사망했어요. 세월이 지나니 이한열은 해마다 추모제를 지내고 민주화 투사로 떠오르는데, 똑같이 최루탄을 맞아 숨진 용접공 이석규는 잊혀져 가는 거예요.

제가 그 얘기를 하니, 누군가가 '노동자가 임금 투쟁하다 죽은 거하고, 민주주의를 위해 죽은 거하고 같나?'라고 하더라고요. 그날의 이석규의 죽음으로 노동자의 인권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말이죠. 2년 전에 제가 이 이야기를 칼럼으로 쓴 적이 있어요."

 
경찰은 폭력시위를 하지 않는다면 길을 터주겠다고 제안을 해왔어. 우리는 평화시위를 약속하고 앉은걸음으로 천천히 호텔로 향했지. 호텔이 바라보이는 옥포 사거리에 들어서자 삼면의 도로를 봉쇄하고 있던 경찰이 우리를 에워싸더니 갑자기 최루탄을 퍼붓기 시작했어. ……몇 푼의 임금과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염원으로 오리걸음까지 하던 자네들이 내가 이 세상으로 떠났다는 소식에 몰려와 병원 영안실 문을 용접으로 봉쇄하고 부르짖던 절규가 아직도 최루탄 파편보다 더 깊이 박혀 있다네. "돈도 필요 없다. 이석규를 살려내라!" 내가 억겁 동안 수만 세상을 다시 나더라도 잊을 수 없을 거야. -박보근, 2018년 8월 23일 경남도민일보 칼럼 <아침을 열며>
 
그가 소개한 칼럼에서 박보근씨는 87년 최루탄을 맞고 숨진 스물두 살의 대우조선 용접공 이석규씨의 목소리를 살려내고 있었다. 이석규는 노조결성을 막는 사측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가슴에 맞고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사망했다.

당시 이소선, 노무현, 이상수를 중심으로 이석규의 장례를 '전국 민주노동자장'으로 하기 위한 장례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전국적 추모대회가 열릴 예정이었지만, 경찰은 망월동 묘지로 향하던 장례 행렬을 15톤 덤프트럭으로 막은 뒤 이석규의 시신을 탈취해갔다. 이날 하루 동안 전국적으로 933명이 연행되고, 이상수·노무현·박용수를 비롯한 74명이 구속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노동자 대투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자녀들이 조선소 노동자가 되겠다고 하면 지지하겠느냐고 물었을 때, 박보근씨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 아이들은 제가 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요. 만약 아이들이 제가 일하는 것에 대해 자세히 듣고 '재미있겠어요. 보람 있겠어요. 저도 그라인더공 해보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저는 권하고 싶어요.

저의 동료들은 자녀들에게 자기 직업을 물려주기 싫어하지만, 저는 '그라인더공은 안 돼'라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노동자가 되어 떳떳이 일하며, 비정규직 하청 노동의 모순을 고쳐나가면 되겠죠. 아빠는 그렇게까지는 못했지만요."
#노동자 #대우조선 #용접공 #경남도민일보 #글라인더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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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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