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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1주기..."폭행도 피해자 방치도 여전, 안타깝다"

[스팟인터뷰]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 "스포츠윤리센터 제대로 역할 못해"

등록 2021.06.26 20:38수정 2021.06.26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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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숙현 선수는 자신이 당한 가혹행위를 호소했지만 철인3종협회 등 관련 기관은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 MBC


"한 선수가 주변의 폭행 사건을 신고하려고 스포츠윤리센터에 전화를 했는데, 신분을 밝혀야 고발이 가능하다는 말에 전화를 끊었다고 하더라. 최숙현 선수가 죽은 후 여러가지 대책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문제들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전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장)의 말이다.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팀 고 최숙현 선수가 폭행과 가혹행위로 세상을 떠난 지 26일로 꼭 1년이 지났다.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문 대통령은 '체육계 폭력 근절'을 강도 높게 주문했고, 정부와 체육계는 앞다퉈 대책들을 쏟아냈다. 국회는 이른바 '최숙현법'도 조속히 통과시켰다. 대책의 일환으로 '스포츠윤리센터(아래 윤리센터)'까지 대대적으로 출범시켰다.

처벌은 공공기관 관계자들을 제외한 팀 내 가해자들에 한해 이뤄졌다. 안주현 전 운동처방사는 오는 7월 15일 항소심(2심) 선고를 앞두고 있으며, 김규봉 전 감독·장윤정 전 주장·김도환 전 선수는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밀물처럼 쏟아진 대책들과 가해자들에 대한 끝나지 않은 처벌 속에서, 그렇게 1년이 흘렀다. 

<오마이뉴스>는 고 최숙현 경북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선수의 1주기를 맞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출신의 문경란 스포츠인권연구소 대표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혁신위원장을 맡았던 문 대표는 윤리센터 설립을 권고한 바 있다. 문 대표에게 최 선수 사건 이후의 체육계 현실과 그간 쏟아져 나왔던 대책의 실효성을 물었다. 문 대표의 첫 마디는 "기가 막히고, 착잡하다"였다.

"선수들 여전히 도움 못받아... 대한항공 탁구단 사건이 그 증거" 
  
- 고 최 선수 사건 이후 사회 전반에서 스포츠 폭력 방지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달라진 게 있나.  
"여전히 제자리다. 최근 불거진 대한항공 탁구단 사건이 이를 방증한다. 이 사건 피해자는 선배들에게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 팀 코치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지만, 되레 '네 탓'이라는 질책과 퇴출 압박까지 받았다. 당연히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도 없었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입을 막는 현실은 여전한 셈이다. 고 최 선수 1주기를 앞두고 여러 선수들에게 지금 상황이 어떤지 물었지만, 대다수가 '바뀐 게 없다'고 답했다. 피해 사실을 말 할 곳이 없다고 하더라." 

- 선수들이 전한 현장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을 안고 있나. 
"한 선수는 주변의 폭행 사실을 고발하려고 윤리센터에 전화했다가, 신분을 다 밝혀야만 고발이 가능한 시스템 탓에 결국 포기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겁이 났다고 했다. 신고자의 익명성이 잘 보장되지도 않을 뿐더러, 신원이 보호될 수 있다는 믿음이 안생겼던 거다. 최 선수 사건을 통해 드러난 문제 중 하나는 폭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피해 선수를 보호해 줄 기관과 시스템이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앞선 선수의 증언처럼, 지금도 많은 선수들이 피해를 호소하거나 도움 받을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 최 선수 사건 이후 이른바 '최숙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민체육진흥법 1조의 '목적' 부분에 '국위선양'이라는 문구가 빠졌고, 폭행을 가한 지도자의 자격 정지 기한이 늘어났으며, 윤리센터의  기능을 강화하는 내용이 법안에 담겼다. 당시 마련됐던 대안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고 있다고 보나. 
"실효성에 의심이 든다. 대표적인 게 윤리센터다. 정부가 최 선수 사건 이후 강조해서 내놓은 대안인데 여전히 미흡하다. 스포츠 인권 문제는 이 분야를 잘 아는 전문성 있는 조사관들과 실무자들이 투입돼야 하는데 전문성과 조사 권한에 대한 문제가 여전히 논란이다.  윤리센터 출범 시 혁신위에서 내놓은 권고 사항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 문체부로부터의 독립성, 기관의 전문성, 선수들로부터의 신뢰성 확보가 제일 중요하다." 

"엘리트 스포츠 정책 바꿔야 이 문제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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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인권연구소와 체육시민연대 등 40여 개 시민단체는 지난2020년 7월 20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철인3종 선수 사망사건 진상조사 및 책임자 처벌, 스포츠 구조개혁을 위한 공대위' 출범을 선언했다. ⓒ 김종훈

 
- 체육계가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최 선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있다. 사퇴 요구에 직면했던 대한체육회 회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문체부에서 요구했던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해임 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체육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안은 '가해자 엄벌주의'만  머물고 있다. 물론 가해자에 대한 엄벌은 필요하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 개혁을 위해서는 책임자 전원에 대한 엄벌과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을 큰 폭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부가 그런데 이 부분을 외면하고 있다." 

- 체육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나.
"스포츠 현장에서 폭력·성폭력이 반복되는 이유에는 '엘리트 스포츠 정책'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어린 선수들을 대회 성적만으로 진학시키는 체육특기자 제도가 대표적이다. 그 때문에 운동선수가 되는 순간 그 외의 것들과 담을 쌓게 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운동만 하던 선수가 운동을 못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면 많은 것들을 잃게 된다. 그래서 감독, 코치가 아무리 때려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이같은 체육계 패러다임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가령 체육특기자 제도를 폐지하고, 학기 중의 주중대회를 주말대회로 전환해서 학교·생활·스포츠가 공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매 사건마다 나오는 단편적인 대안만으로는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질 수 없다."

- 스포츠계의 근본적인 개혁, 과연 가능할까?
"지난 25일,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고 최 선수 1주기를 맞아 스포츠 인권 보호 추진 상황을 점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저는 이런 보도를 보면서 오히려 황당했다. 문체부는 점검했다는 내용만 알릴 게 아니라, 점검 결과와 부족한 점을 밝혀야 한다. 이런 행보는 홍보에 불과하다.

정부가 진정으로 스포츠의 현실을 개혁할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스포츠계의 인권문제는 여전히 참담하다. 민주화 이후 인권 측면에서 스포츠가 가장 낙후된 영역이다. 문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는 분이라면, 적어도 체육계 현장에서의 인권 유린도 없어지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엄중한 책임감으로 끝까지 책임져야 변화가 생긴다."
#최숙현 #1주기 #스포츠 #폭력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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