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옥의 주 메뉴인 설렁탕안일옥의 대표적인 메뉴는 설렁탕과 소의 각종 부위를 넣고 끓인 안성맞춤우탕이 유명하다. 오래된 식당의 역사만큼이나 그 맛의 내공이 만만치 않다.
운민
이 식당의 대표 메뉴는 아무래도 설렁탕이다. 그 밖에도 우족, 꼬리, 도가니, 머리 고기, 우설, 양지 등을 모두 넣고 끓인 안성맞춤우탕도 유명한데 좋은 재료가 들어간 만큼 가격도 비싸다.
설렁탕이 나오고 과연 그 맛이 어떨지 한 숟가락을 조심스럽게 떠먹어 봤다. "이런? 아무 맛도 나질 않는데... 맞다 소금과 후추를 넣어야겠군." 식당의 분위기에 빠져 막상 식탁 위의 양념통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식당의 연륜만큼이나 깊고 진한 육수의 맛이 우러나오는 훌륭한 맛이었다. 앞으로도 식당의 명성이 잘 유지되길 바라며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저번화 매산리 석불입상(태평 미륵)에서 언급했듯이 안성에는 미륵불이 유독 많이 남아있다. 안성 시내도 예외가 될 수 없는데 주공 아파트를 배경으로 장승과도 같은 독특한 인상의 아양동 석불 2기가 있다. 몸의 비례도 엉성하고, 전체적으로 투박한 솜씨지만 그렇기에 일반 민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와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한다.
예전 이 일대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두기의 석불을 가리켜 큰 것은 할아버지 작은 것은 할머니 미륵으로 불렀다고 한다. 역시나 고려시대의 석불로 추정되는 만큼 안성 일대의 미륵불에 관한 신비로움과 궁금증이 일어난다. 앞으로도 안성의 미륵불 탐험은 쭉 이어진다.

▲주공아파트를 배경으로 자리잡은 아양동 석불안성 시내의 주공아파트를 배경으로 아양동 석불이 자리잡고 있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양동 석불은 할아버지, 할머니 미륵으로 불리며 안성일대에 조성된 수많은 미륵불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운민
이제 잠시 길을 남쪽으로 돌려 안성천을 건너 다음 목적지로 가보려고 한다. 웬만한 강 못지않게 폭이 넓은 안성천은 한강, 청계천 같은 다른 하천처럼 번잡하지 않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걷기 좋았다. 안성천의 남쪽은 북쪽과 달리 임야지대가 대부분이지만 이 지역에도 우리는 문화재를 마주할 수 있다.
도기동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의 언덕 꼭대기에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는 삼층석탑이 자리해 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보통 석탑은 절의 앞마당에 세워지는 게 일방적이다. 하지만 도기동 삼층석탑은 절터라고 하기도 어려운 위치라 예불 이상의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독특한 비례의 삼층석탑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언덕에서 보이는 경치를 보면서 내 나름대로의 추론을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안성의 다른 동네에서 보이는 미륵불과 마찬가지로 이 마을의 무사 평안을 빌기 위한 장승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다시 계단을 내려와 입구에 적혀 있는 설명문을 읽어보니 여기 '도기동'의 마을 생김새가 마치 거북이 모양처럼 보였기에 거북이가 안성천을 건너면 마을이 망한다는 풍수지리적 믿음으로 거북이를 움직이지 못하게 탑을 세웠다고 한다.
처음엔 그런 목적으로 세워졌을지 모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마을을 바라보는 수호신처럼 든든하게 서 있는 석탑의 존재에 경이감을 표하게 된다. 안성 도심에서 머지않은 문화재들의 개성과 사연이 범상치 않다.

▲도기동 삼층 석탑의 전경안성천 남쪽 도기동으로 들어가는 언덕의 정상부에 위치한 도기동 삼층석탑은독특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운민
다시 안성천을 건너 시내로 돌아왔다. 안성의 시내는 조선시대처럼 더 이상 사람들로 붐비지 않지만 시간이 70~80년대에 멈춘 듯한 건물이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우리 주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슬레이트 지붕의 대장간과 방앗간, 쌀 정미소, 그리고 동네 아이들의 아지트였던 만화방까지.
어른들에게는 예전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고,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이색 명소로서 충분히 가볼 만한 거리다. 이제 골목을 지나 이름도 범상치 않은 낙원 역사공원에 이르게 된다.
▲안성 낙원역사공원의 입구일제시대부터 안성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자리잡은 안성공원은 후에 안성일대에 흩어진 석조문화재가 대거 욺겨오면서 지금의 낙원역사공원이 되었다. 비석, 불상, 석탑 등 다양한 문화재를 공원에서 찾을 수 있다.
운민
원래 이름은 안성 공원이라 하는데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기록상으로 볼 때 1920년대부터 근대적 공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안성시민의 휴식, 문화 공간으로 사랑받았던 안성 공원은 수목이 울창하고, 정자 하나만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지역의 유지가 정자 세 개를 짓고 죽산에 있는 석불과 보개면에 있던 고탑 등을 옮겨오면서 지금의 역사공원 틀이 갖춰졌다고 한다.
현재는 석불좌상, 석탑, 49기의 비석 등 안성에 흩어져 있던 다양한 석조 문화재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야외 석조 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따로 있으면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석조물을 단지 공원을 가볍게 산책하면서 쉽게 접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아닐까 싶었다.
안성 도심을 걸어 다니며 그동안 내가 미처 몰랐던 안성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한 것 같다. 하지만 아직 안성 도심의 매력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안성의 색다른 문화를 찾아 함께 떠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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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팟케스트 <여기저기거기>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obs라디오<굿모닝obs>고정출연, 경기별곡 시리즈 3권, 인조이홍콩의 저자입니다.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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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도시 경주, 전주 못지않네... 안성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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