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장사를 거쳐간 대표적인 인물 임꺽정 칠장사를 거쳐간 여러 인물 중 임꺽정은 그의 스승이 있는 칠장사를 위해 불상을 만들었고, 그 불상은 칠장사에 현재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다.
운민
지면의 한계상 칠장사의 다양한 매력을 미처 소개하지 못한 듯하다. 칠장사를 나중에라도 방문하시는 독자분들께서는 이 절이 담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사전에 알고 간다면 더욱 풍성한 답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 칠장사를 나와 속칭 궁예 미륵으로 알려져 있는 기솔리 국사암 석조여래입상으로 이동해본다. 그동안 경기도의 많은 고장과 명소를 두루 방문했지만 모든 방문길이 수월한 편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국사암으로 가는 길은 손꼽히는 험난한 길이었다.
차 한 대도 겨우 다닐 만한 급격한 오르막 길을 식은땀 흘리며 갔다. 그 길의 끝에는 조그마한 암자가 산 중턱에 웅크린 듯 있었다. 주차장에서 한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급경사의 길을 천천히 올라가 본다. 그런데 이 올라가는 길이 또 만만치 않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무릎을 잡으며 숨을 돌리길 수차례, 15분 동안의 예상치 못한 등산 끝에 궁예 미륵이 있다는 국사암에 도착했다. 절 자체는 최근에 지어진 듯,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지만 불전 바로 옆에는 심상치 않은 기운의 석조불 3기가 나란히 서 있다.
전체적으로 투박하게 조성된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석불이고, 미학적인 감동도 미술사적 의미도 크지 않다. 하지만 궁예라는 인물이 주는 강렬한 인상 덕분인지 3기의 석불에 감도는 위압감이 묵직하게 느껴진다. 3기의 미륵불 중 가운데 큰 미륵은 궁예라고 하고, 양 옆의 미륵은 궁예가 죽인 두 아들인 청광, 신광이라 일컫어진다. 안성 일대의 미륵불의 흔적은 국사암으로 들어가는 초입, 쌍미륵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궁예와 그의 아들이라고 전해지는 국사암 석조 여래입상 안성에는 궁예와 관련된 미륵상이 곳곳에 위치해 있는데 대표적으로 국사암 석조 여래입상은 궁예와 그의 아들 청광,신광을 의미해 만들어 졌다고 한다.
운민
조그만 절 뒤편의 2단 석축 위에는 각각 10미터의 간격을 두고 장승처럼 서 있는 두기의 석불, 기솔리 석불입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동쪽의 석불을 '남 미륵', 서쪽을 '여 미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최근까지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근래의 연구 결과로 태봉 시기, 즉 궁예 정권 당시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석불과 관련된 설화를 살펴보면 궁예의 설법을 들었던 사람들이 그 모습에 감동을 받아 세웠다는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안성 땅은 궁예의 정신적 고향이 아니었을까?
안성과 궁예와 관련된 유적을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보자.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칠장사와 처음으로 세력을 의탁해 명성을 알리기 시작했던 죽주산성, 그리고 안성에 산재해 있는 수많은 미륵불까지. 한국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던 궁예, 그는 역사의 패배자로 사라져 갔지만 이곳 안성에서 만큼은 그의 숨결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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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학 전문 여행작가 운민입니다. 팟케스트 <여기저기거기>의 진행을 맡고 있습니다. obs라디오<굿모닝obs>고정출연, 경기별곡 시리즈 3권, 인조이홍콩의 저자입니다.
강연, 기고 연락 ugzm@naver.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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