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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엄지 척' 하는 이 김치, 엄청 간단합니다

시어머니의 깊은 손맛은 못 따라가도... 여름 별미 '고구마순 김치' 만들기

등록 2021.07.12 10:38수정 2021.07.1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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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텃밭 작물 힘들게 농사 지은 채소를 받았어요. ⓒ 서경숙

 
주말 아침에는 아무리 피곤해도 일찍 눈을 떠서 월명산 산책을 나선다. 같이 가는 지인 동생이 준비가 끝나면 차를 가지고 집 앞에 와서 나를 데리고 간다. 조수석에 앉는데, 푸른 비닐봉지 안에 채소가 있다.


뭔가 한참을 바로 보고 있으니, "언니 고구마순이야~ 언니는 껍질 깔 시간 없을까 봐 내가 까왔어"라고 말한다. 고맙게도 껍질을 벗겨서 가져왔다.

고구마 줄기는 껍질 벗기는 일이 큰일이다. 시골에서 일을 많이 해 본 어머니들은 앉아서 껍질을 벗기고, 파를 다듬는 것도 손이 빨라서 금방 하시는데, 나는 파를 조금 까려고 해도 한참 걸린다. 이런 일을 귀찮아하고 직장을 다니다 보니 시간도 없고 해서 채소가 마르거나 썩어서 버리는 일이 많다.

농사꾼 다 된 동생이 가져다준, 귀중한 선물 
 

지인의 텃밭 작물 텃밭을 가꾸면서 풀 뽑기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돌아서면 풀이 나고~ ⓒ 서경숙

 
지인은 일주일에 2~3일은 노부모와 동생네 땅에 농사를 지으러 간다. 처음에는 작은 평수에서 시작했다. 동생네 시댁의 넓은 땅이 놀고 있다는 소리와 부모님들의 욕심에 농사 규모가 커졌다. 

여름 채소들이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밭으로 출발해서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5시간 이상 앉아서 풀 메고 땅 파고 씨 뿌리고... 지인은 텃밭 농사를 그만하고 싶은데, 노부모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준다며 차로 모시고 가서 힘든 일을 도맡아 한다. 

주말 운동을 다니면서 그렇게 힘들게 농사짓는 이야기를 수다로 들었기 때문에 그가 한 번씩 가져다주는 채소들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우리 같이 글 쓰고 책 읽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카시아 꽃 피는 것을 보면 달달하고 향긋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농사짓는 지인은 "언니 아카시아 꽃 필 때는 콩 심어야 해" 이런 소리를 한다. 웃음이 나오고 '농사꾼이 다 되었네' 하고 생각하게 된다. 


힘들게 농사지은 채소를 받았으니, 저 고구마순으로 무엇을 할까. 삶아서 나물을 해 먹을까? 된장에 멸치 넣고 자글자글 지져 먹을까? 아니다. 김치를 담가 먹어야겠다.
 

고구마순 김치 지인의 텃밭에서 나온 고구마줄기 ⓒ 서경숙

 
전라도에서는 여름에 고구마 줄기가 나오면 한 번씩 줄기를 잘라 줘야 하기 때문에 고구마순 줄기를 잡고 잘라내서 똑똑 끊어 껍질을 벗겨서 김치를 담가 먹는다.

여름만 되면 시어머님께서 고구마순 김치를 큰 김치 통에 한 통씩 담아주어서 아주 잘 먹었다. 그 기억을 더듬어 요리를 시작해 보았다. 요리까지는 아니고 살짝 겉절이처럼 담아 보기로 했다. 무로 무생채, 오이로 오이무침 담가 먹듯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고구마 줄기는 소금물에 살짝 담가서 껍질을 벗기면 잘 벗겨진다.

- 고구마순을 깨끗하게 씻어 소금에 살짝 절여놓는다.
- 부추를 씻어서 물기를 빼서 큼직큼직하게 잘라 놓는다.
- 양파, 당근은 채를 썰어놓는다.

홍고추는 믹서에 물을 조금 넣고 갈아놓는다.
볼에 고구마순, 부추, 마늘, 양파, 홍고추, 고춧가루, 소금, 매실청, 까나리액젓, 설탕 조금. 조미료 살짝, 깨소금을 넣고 잘 버무려 준다.
 
매실청을 넣으면 달달 해서 설탕도 조금만 들어가도 되고 여름에 생것을 먹으면 배앓이하는 것도 예방할 수 있다. 난 매실을 음식에 잘 넣는다. 김치 담글 때 쌀이나 밀가루로 풀을 쑤어 넣는데, 이번에는 겉절이로 조금만 하고 조금만 먹을 것만 하기 때문에 풀 쑤어 넣는 것은 생략했다.

텃밭 덕분에 푸짐해진 여름 밥상
 

고구마순 김치 지인이 준 고구마줄기 ⓒ 서경숙

 
전라도에서는 채소로 여러 음식으로 많이 만들어 먹었다. 여름에 먹는 고구마순 김치는 나이 먹은 사람들도 좋아하지만, 우리 집 아이들도 잘 먹는 음식이다. 많이 담가서 김치가 푹 익었을 때는 살짝 씻어서 된장에 지져 먹어도 맛이 있고, 씻지 않고 고등어 한 마리와 푹 지져(끓여) 먹으면 그 맛이 별미이다. 이번에는 양이 적어서 지져 먹을 것은 없을 것 같다.

고구마순 김치가 성공적으로 되었다. 시어머니께서 담가주신 김치의 깊은 맛은 흉내 낼 수 없지만, 맛이 아삭아삭 제법 김치 맛을 내었다. 지인의 텃밭 야채 때문에 오늘 점심 밥상이 푸짐해졌다.
 

텃밭 채소로 차려진 음식 지인은 텃밭에서 나온 채소로 만들었습니다. ⓒ 서경숙

 
아이들도 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고구마순 김치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으면서 엄지 척을 해준다. 엄마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법을 아는 것 같다. 함께 가져온 호박은 오징어와 부추를 넣고 부침을 하고 오이는 새콤하면서 시원한 오이냉국과 오이무침으로 만들었다. 채소가 가득한 지인의 텃밭 밥상이 되었다.

부지런한 지인의 텃밭 때문에 예전의 요리 솜씨를 다시 찾을 수 있었고, 맛있고 푸짐한 한 상으로 행복한 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작은 것의 나눔으로 큰 행복을 받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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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사 제안 #여름 음식 #고구마줄기 김치 #지인의 텃밭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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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좋아서 아이들과 그림책 속에서 살다가 지금은 현실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서는 영화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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