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내 통일부 로비
연합뉴스
이준석 대표는 외교부와 통일부의 분리가 비효율을 낳을 수 있다는 발언도 했다. 외교부가 있는데도 통일 전담 기구를 따로 설치해야 하는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이미 충분히 설명된 이야기다.
공화당이 국회를 주도할 당시인 1967년 1월 30일 국회 국토통일연구특별위원회가 발행한 <통일백서>는 '외교부를 비롯한 여타 기관으로는 통일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해 1월 31일자 <조선일보> '통일백서 주요 내용'은 그 부분에 관한 <통일백서>의 설명을 이렇게 소개했다.
"현행 정부조직법과 기타 법령은 외무부의 방교국(邦交國, 국교국) 국제연합과와 헌법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 그리고 중앙정보부, 공보부 조사국 제3과, 내무부의 이북오도청 등에서 통일 문제를 분장시키고 있으며, 민간 기구로는 북한해방촉진회, 국토통일협의회, 한국반공연맹(반관반민) 등과 각 정당의 해당 위원회가 있으나 기구의 구성과 규모로 보아 충분한 활동이 불가능할 뿐더러 통일문제의 제1차적 작업인 '문제에 대한 종합적·체계적 연구'를 전담할 기구조차 없는 형편이다."
외무부에서도 통일 업무를 처리하고 있지만 외무부의 특성상 이 업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중앙정보부 같은 부서에 맡긴다 해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비(非)전문기구에 맡겼더니 기초 작업인 '통일에 관한 종합적·체계적 연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위 기사에 요약된 바에 따르면 <통일백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우리는 북괴의 실태와 전술을 정확히 파악하며, 우리의 통일 방안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기구의 설치가 절실히 요청된다."
기사에 따르면 <통일백서>는 결론을 내리는 대목에서 "통일연구위는 국토통일 문제에 대한 전담 기구를 우선 정부 내에 독립된 기구로 설치하여야 할 것이며, 국회에도 이에 상응하는 기구가 설치돼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며 통일에 관한 전문 관청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의견에 따라 박정희가 만든 게 바로 국토통일원이다.
공화당과 박정희가 통일에 대한 진정한 열의가 없었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그런 그들조차도 남북관계를 전담할 관청이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그들이 꼭 통일을 위해 통일 관청을 뒀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점은 국토통일원을 통일원으로 격상시키고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킨 노태우 정권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가 1963년부터 통일 전담 기구의 설치를 운운한 것은, 북한이 조평통을 신설한 데 대한 대응 차원의 일이었다. 노태우 정권이 통일원을 격상시킨 것은 1980년대 후반의 탈냉전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심화될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통일에 관한 논의가 증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 상대방의 통일 공세에 대응하고자 그런 조치들을 취했던 것이다.
대륙위원회 등을 두고는 있지만 통일에 대해 소극적인 타이완이 중국의 공세에 시달리는 사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통일을 논의할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소극적 태도를 취하게 되면 상대방의 공세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통일을 하겠다'는 선언은 자신감 없이는 나오기 힘들다. 통일을 논의할 상대방 앞에서 '통일을 하겠다'고 선언하지 않고 '통일정책을 축소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자신감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보수 정권들이 실제로는 통일 의지가 없으면서도 통일 기구를 정비한 것은 북한에 대한 자신감을 과시하는 한편, 통일 논의가 부각될 때 상대방에게 밀리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1961년에 조평통을 설치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하필이면 이 시점에 설치한 것은 1960년 4.19 혁명을 계기로 남한에서 통일운동의 열기가 고조된 데 대한 따른 대응 차원의 일이었다.
2003년에 <역사학논총> 제3호·제4호에 수록된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의 논문 '4.19 직후 한국사회와 민족일보'는 "1950년대 후반 주한미국공보원은 한국의 농민들을 상대로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소원하는 바가 무엇이오?'라고 묻는 여론조사를 한 적이 있다"고 소개한다.
논문은 이 설문이 주관식이었는데도 '민족의 통일'이라는 응답이 16.39%로 3위를 기록했다고 한 뒤 "이처럼 당시 사람들은 통일문제를 민족적 이상과 명분의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현실과 직결된 문제로 생각하였다"고 설명한다.
그런 통일의 의지가 4.19 혁명을 계기로 뜨겁게 분출하자, 북한이 이에 대비할 목적으로 만든 게 조평통이다. 통일을 위해 조평통을 설치한 측면도 있지만, 남한의 통일 공세에 대비할 목적도 있었던 것이다. 꼭 통일을 위해 통일 전담 기구를 설치하는 게 아니라 동족국가와의 선의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보수 정당을 이끄는 국민의힘의 대표가 이런 맥락도 고려하지 않고 통일부 폐지를 운운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통일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분단국가에서는 통일 전담기구를 두는 게 현실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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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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