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생광(1904~1985) I '무녀' 종이에 채색 136×140cm 1980
국립현대미술관
위 첫 번째 작품은 시간이 좀 지나야 보인다. 또 보고 있으면 조용한 듯하나 갑자기 꽹과리 소리가 귀가 따가울 정도로 쟁쟁 울려오는 것 같다. 박수근 작품은 당대 '유학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석불에서 볼 수 있는 화강암 같은 질감과 독창적 화풍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의 화면은 회화만 아니라 조각, 설치, 판화의 요소가 뒤섞었다. 그의 천재성이 엿보인다.
제3섹션 '정착과 모색'에서는 박생광, 남관, 천경자, 권옥연, 문신 등이 소개된다.
위 박생광은 초기 한국화단에서 일본풍이 강하다며 배척당했다. 하지만 거기에 구애받지 않고 70~80년대 한국적 채색화에 탐색해왔다. 단청과 색동옷에서 영감받은 진채의 색감은 수려하고 격정적이다. 역동적 화면구성도 강렬하다. "역사와 전통을 떠난 민족예술은 없다"가 그의 모토다. 그래서인가, 위 그림의 주인공은 가장 한국적 인물인 '무녀'다.
사후 기증, 생존 시 예술가 지원
이 회장의 이번 기증전을 보면서, 그가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을까 궁금해진다. 홍라희 여사는 물론이겠지만 정보화 시대, '대중지성의 공유'로 인류를 구하려고 한 백남준의 영향도 있었으려나. 실제로 백남준은 '호암상(예술부분)' 2번째 수상자였고, 삼성과 이미 관련이 깊었다.
삼성 웹사이트에 "백남준과 삼성TV의 인연 30년 넘어 부활하다"라는 글이 있다. 백남준은 85년 작업부터는 소니가 아니라 삼성을 썼다. 두 사람은 87년 신라호텔에서 현대화랑 박명자 회장 주선으로 만났다고 한다. 앞을 내다보는 관점이 유사했는지 대화가 잘 통했단다. 88년 '다다익선' 작업 때도 삼성은 백남준에게 1003대 TV를 기증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이미 1963년부터 족보에도 없는 '비디오아트'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 진출했다. TV로 시작한 그는 30년 후 인터넷에도 관심을 가졌고, 이를 예술화했다. 이 회장도 세계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해 반도체를 30년 만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은 무노조경영, 분식회계, 경영권 불법승계, 산재사망대책 미흡 등 국민정서에 반하는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다만, 이번 이 회장 유족들의 미술품(문화재) 사회 환원 결정이 문화계에 미친 영향은 클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회장 유족이 이제 국제적 '뮤지엄 존'으로 최적지인 광화문에 '리움 메인 미술관'을 개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현 삼성미술관은 이 회장 자택 옆이라 미술 애호가들이 접근하기 힘들다. 경복궁 수준의 세계문화유산 같은 미술관을 남긴다면, 그 나름의 빛을 발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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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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