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년차, 임신을 결정한 나에게

스스로의 결정을 응원하며, 내가 내게 보내는 편지

등록 2021.08.05 13:44수정 2021.08.0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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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결혼 4년차, 37살이 된 지금의 너에게.


정말 큰 결심을 했고 그 과정까지도 많은 생각과 고민이 깊었을 거라 생각이 들어. 계속 임신을 망설이던 네가 아이를 갖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수많은 질문과 미래를 시뮬레이션해 보았겠지.

주변 지인들의 "결혼까지는 괜찮다, 아이는 정말 신중히 생각해봐" 이런 조언을 들을 때마다 '당신들은 이미 해봤잖아요?'라고 반문하기도 했잖아. 한편으로는 말하지 않아도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아가씨 때와 아이를 낳은 후 너무나 달라진 사람을 보며 겁을 먹기도 하고 말이야. 

너 자신이 없어지고 화장실에 갈 때도 아이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고, 밥도 마음 편히 숟가락을 들고 먹을 수 없으며 여행을 가려면 지금 널 위해 싸는 짐의 몇 배는 더 짊어지고 가야 해. 

아이가 좀 크면 말도 통하지 않겠냐고? 학교 가서 생활은 잘하나, 친구 관계는 괜찮은가. 혹시 소심하게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망설이는 건 아닐까? 공부는 이왕이면 잘하고 몸과 마음도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간섭 마"라며 문 '쾅'은 예사지.

성인이 돼서? 말도 마. 직장에 잘 들어갈까, 연애는 좀 할까, 어떤 산적 같은 혹은 여시 같은 사람의 꼬임에 넘어가 돈이라도 털리는 건 아닌가? 결혼을 잘 할 수 있을까...

정말 끝도 없이 이어지는 평생의 걱정과 고민을 끌어안고 살아야 할 수 있다는 겁박들 속에서 '엄마는 육아하는 동안 자기 자신이 없다'는 경고들을 받으며 아이라는 존재는 네 삶의 영역권 안에 없어왔다는 것도 알고 있어.


가족도 소중하지만 네 삶의 보물 1호는 너 자신인데,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도 높고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네가 아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생각도 많았고, 그런 생각의 꼬리에 결국 임신이라는 건 부정하며 지냈었잖아. 네가 결정한 그 사실 안에 네 책임감이 보였고 다부진 다짐이 느껴졌어. 그래서 나는 그저 너를 응원할게.

오늘 어떤 블로그 이웃분이 결혼하지 않은 여자 사진을 언급하셨어. 가지각색의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은 미혼의 여성은 매력이 통통 튀었고 '참 좋은 시절이다'라는 생각을 하셨다 했어. 그 말을 듣고, 별생각 없이 열어보았던 손바닥만 한 기계 안에는 네 삶의 조각들이 참 많이도 담겨있더라.

뚱뚱하기도 하고 날씬하기도 하고 못생기기도 하고 내 눈에 예뻐 보이기도 하고,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해외여행에서 찍은 사진들부터 집 안에서 고기를 구우며 찍은 소소한 사진들까지도 그 안에 너는 항상 있었어. 그리고 공통점은 웃고 있었다는 거. 네 삶이 힘들 때에도 즐거울 때에도 언제나 그 프레임 안에서 웃고 있는 네가 참 예쁘더라.

그렇게 예쁜 네가 주는 사랑을 받으며 자랄 아이는 얼마나 더 예쁠까. 한번 상상해봐. 안 그래도 걱정인형인 네게 끊이지 않을 걱정거리가 생기는 것도 맞아.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아까 얘기했던 사진들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네 옆엔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는 거.

네가 어떤 상황에서든 함께 웃어주고 울어주고 도와주고 힘줄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더욱이 온전히 네 편인 가족들도 있잖아. 그들은 그 누구보다 너의 임신과 출산을 축하해 줄 거고 너의 아이를 함께 사랑하고 아껴줄 거야. 아직 있지도 않은 일에 걱정을 하고 되돌릴 수 없는 일임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걸 이해하기에 해주는 말이야.

지금까지도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아갈 너라는 걸 믿는 나니까. 넌 분명 좋은 엄마가 될 거야. 널 낳고 부모님은 정말 행복하셨고, 첫째 딸이 조금이라도 불편해보이면 어디가 아픈 건 아닌가 신경 쓰며 참 많이 예뻐하셨어. 그렇게 사랑을 받으면 자란 너잖아.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네가 알지도 못하게 네가 받은 사랑을 흘러내려 보낼 거야.

노산이라 임신이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 중에도 네 모든 일상에 행복과 기쁨이 가득하길 축복할게.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설레는 마음으로 모두의 안녕을 바라고 건강하길 기도하자.

사랑한다 나 자신아.
#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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