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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꺾였다... 방향 잃어가는 법원개혁

'판사 임용 법조경력 10년→5년', 법안 발의 3개월만에 국회 통과 유력... 이탄희 공개 비판

등록 2021.08.22 20:27수정 2021.08.2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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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4일 부산고등법원에서 직원들이 오가는 모습. ⓒ 연합뉴스

 
1993년 사법제도발전위원회, 1997년 법원인사제도개편위원회, 1999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 2003년 법관인사제도개선위원회,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2009년 사법정책자문위원회... 그리고 2011년 법원조직법 개정.

20년에 가까운 논의 끝에 만들어진 '법조일원화'가 단계적 시행 약 10년 만에 흔들리고 있다. '일정 경력 이상을 쌓은 변호사들을 판사로 임용하기 어렵다'는 현실론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숙의를 거쳐 제도를 도입한 취지와 명분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민적 요구로 만들어진 것과 달리 '국민은 모르게' 사법개혁을 후퇴시킨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사법개혁 후퇴'라면서도... 법원 손 들어준 국회

지난 7월 1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1소위원회는 홍정민·전주혜·정청래·소병철 의원이 각각 준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다뤘다. 네 가지 법안은 모두 2022년부터 판사 임용에 필요한 법조경력이 현행 5년에서 7년으로 높아지고, 2026년부터 7년→10년이 되면 법관 수급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면서 법조경력 요건을 5년으로 낮추는 내용이었다. 

여야 모두 '고민스럽다'면서도 법원행정처의 '사람이 없다'는 말에 어쩔 수 없다는 듯 동의를 표시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추후 '10년'이 요건이 된다면 변호사 시절 관련 사건 등으로 이해충돌이 빚어질 우려가 있고, 당장 판사 충원 자체도 힘든 상황 등을 언급하며 법안 개정에 찬성했다. 그는 또 "10년 이상 변호사를 하다가 법관으로 왔을 때 여러 가지 법관이 갖춰야 할 소양, 도덕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고 했다.

판사 출신 의원들 사이에도 이견이 없었다. 최기상 민주당 의원은 현재 대법원 예규대로면 '법조 경력 5년+배석판사 4년'을 거쳐야 단독재판장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요건을 완화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고 봤다. 이수진 의원은 법조일원화가 "후퇴하는 것"이라면서도 판사 부족으로 "재판서비스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고, 법관 신뢰도도 떨어질 것이 걱정이라서 어쩔 수 없이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주혜 국민의힘 의원도 "사법부의 수준이 더 하락해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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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주민 위원장 직무대리가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오히려 법 개정이 "철학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스럽다"고 말한 쪽은 검사 출신 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그는 "이 법안이 소위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민주당에서 주도해서 만든 법안이지 않냐"며 "(여당에서)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내가 지금 하는 말"이라고 했다.

유상범 의원 : "법조일원화라는 것이, 2011년에 이 법안이 들어왔을 때, 그 시절의 '젊은 판사들이 사회적 경험도 없고 법조 경험도 적은 상황에서 재판을 받는 것을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회적 명령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제 그것을 5년으로 줄일 때는 단순히 여기 나와 있는 대로(법원행정처 관련 보고서) '사건처리가 지연되고 있다, 충실한 사건 처리 결과를 꼭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판사 충원이 어렵다' 이런 것만으로 그 시대에 요구했던 상황을 바꿀 수가 있느냐.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거듭 "우리 사법제도에서 법조일원화라는 것을 10년이라는 기간을 두고 지켜보는 과정"이라며 "지금 법원에서 여러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법관 자격 요건을) 사실상 2분의 1로 줄이는 정책으로 갈 수 있느냐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판사 임용 상황을 봐도 3년→5년으로 달라지던 첫 해에만 법관 수가 부족했고 이듬해부터는 안정세였다며 5년→7년으로 시행해보기도 전에 제도를 후퇴시키는 것은 고민스럽다고 했다.

유상범 의원 : "제가 반복해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게, 우리가 이건 퇴행하는 거다. 100%. 법조일원화라는 어떤 흐름을 퇴행시키는 거다."

하지만 유 의원도 '고심 끝에 찬성'을 택했다. 이제 이 법은 빠르면 8월 24일 법사위 전체회의 문턱을 넘은 뒤 8월 25일 본회의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단 3개월 만에... "퇴행 시도한 김명수 대법원장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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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해 10월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또 다른 판사 출신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21일 페이스북에 "판사 임용 경력 요건 축소 시도, 명확히 반대한다"고 나섰다. 

이 의원은 "사법개혁, 검찰개혁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데 '암행처리' 될 위험에 처해있다"고 지적했다. 법원조직법 개정안대로 '5년안'이 입법된다면 "엘리트판사 순혈주의와 판사 관료화를 막기는커녕 악화시킬 것"이고, "아무 경력을 요하지 않아 20대 로스쿨생이 바로 검사가 되는 지금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이대로면 이 부분 검찰개혁도 동력을 잃는다"는 이유였다. 

공교롭게도 해당 법안들은 모두 5~6월에 만들어져 두세 달 만에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여타 법안 처리과정과 비교하면 매우 빠른 속도다. 

이탄희 의원은 "법원행정처 고위법관들 주도로 순식간에 진행됐다. 국민과 개혁지지자들에게 제대로 설명된 바가 없다"며 "법조일원화를 이렇게 단 3개월 만에 뒤집을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이 모든 일은 최종적으로 김명수 대법원장 책임"이라며 "남은 2년 절치부심해도 모자란데, 이런 퇴행을 시도했다는 점을 역사는 있는 그대로 기록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관련 기사] 
법관 임용 경력 단축? '20년 역사' 무위로 돌리려는 국회 http://omn.kr/1ujb2
#법조일원화 #법원개혁 #사법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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