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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적 리얼리즘에 더해진 식민지의 고통, 이 영화가 극찬받은 이유

[리뷰] <자마>

21.08.26 10:20최종업데이트21.08.2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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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마> 포스터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토론토국제영화제 시네마테크 선정 '근 10년간 베스트영화 1위'에 선정된 <자마>는 2001년 작 <늪>으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아르헨티나 감독 루크레시아 마르텔의 약 10년 만의 신작이다. 18세기말 스페인 식민지인 남미를 배경으로 한 치안판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안토니오 디 베네데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세계를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한 질감을 선보인다.
 
치안판사 자마는 스페인 국왕의 전근 발령을 기다리나 몇 년째 무소식이다. "어떤 물고기는 죽을 때까지 평생 앞뒤로만 헤엄친다. 자기를 육지로 떠미는 물과 싸우지만 물이 물고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라는 작품의 내레이션처럼 그는 바다 건너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상부의 명령으로 육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도입부 바다를 바라보며 근엄하게 서 있는 그의 모습에는 슬픔의 정서가 함께 묻어 있다.
 
이런 중심플롯만 보았을 때는 애상과 고난의 정서로 무거운 분위기를 풍길 것 같으나 표현적인 측면에서는 블랙코미디의 색이 강하다. 식민지에 갇힌 자마가 귀부인을 흠모하는 장면이나 그가 업적을 세우고도 전근 발령을 받지 못하는 장면 등에서 보여주는 색감이 그렇다. 여기에 뜬금없이 자마가 절망하는 장면에 카메라 앞으로 등장하는 동물들 역시 이런 블랙코미디의 느낌을 살린다.
 
자마는 처연한 모습을 보이나 그의 모습에서 강한 동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작품이 블랙코미디의 색감을 지니고 있지만 핵심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식민지 시대의 아픔이기 때문이다. 도입부 바다를 바라보는 자마의 모습은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보여준다. 허나 이후 그가 여자 원주민들의 목욕을 훔쳐보는 장면이나 원주민의 뺨을 때리는 장면은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지 않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자마>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백인들 사이에서 노예로 생활하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표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배경처럼 존재할 뿐이다. 작품은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특정한 국가나 시대를 택하지 않는다.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은 이 점에 대해 기록된 역사를 믿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역사는 누군가의 시점으로 쓰이기 마련이다. 당시 시대를 담은 역사는 백인의 입장에서 원주민들을 바라보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쓰인다. 당시 식민지 개척자들이 새로운 문명을 바라보고 느낀 놀라움과 이들의 시점에서 담은 동정의 시선은 온전히 원주민의 것이 아니다. 때문에 특정 지명과 사건을 택하지 않으며 당시 원주민에게 가해졌던 역사의 아픔이 보편적인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활용하는 것이 자연이다. 대자연 속에 담아낸 인간의 모습은 인간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보이게 만들며 그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 효과의 일환으로 주인공을 따라가며 그 감정에 이입해 서사에 집중하기 보다는 한 발짝 뒤에서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며 그 세계를 이해하게 만든다. 자마의 시선에서 식민지 시대에 대한 체험을 느끼기 보다는 대자연 속에서 당시의 인간 군상을 경험하며 그 아픔을 조명한다. <씬 레드 라인> 같은 테렌스 멜릭의 영화나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같은 영화가 대표적인 예인데 거대한 자연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며 인간을 객체로 느끼게 유도한다.
 
대표적인 장면은 전근에 실패한 자마가 절망할 때 뒤에서 등장한 알파카가 화면 앞으로 얼굴을 들이미는 순간이다. 배경이었던 자연이 인물의 행위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이 장면은 인간을 자연 속의 객체로 느끼게 만든다. 이 지점이 관객의 환호를 가져온 건 블랙코미디의 색감을 극대화하면서 마술적 리얼리즘을 실현을 더했다는 점 때문이다. 연출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의미를 하나의 장면에 담아내는 높은 수준의 기교를 선보인다.
  

<자마> 스틸컷 ⓒ 엠엔엠인터내셔널(주)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현실 속에 판타지를 결합한다. 대표적인 것이 보르헤스의 문학으로 그의 작품들은 현실을 배경으로 그 안에 판타지적인 요소들을 결합한다. 이로 인해 몽환적인 감성을 자아낸다. 동물이 등장하는 장면이나 도입부에 가족을 보고 싶어 하는 자마와 대화를 나누던 소년이 결말부에 갑자기 재등장하는 등 마술적 리얼리즘의 요소를 선보이며 몽환적인 감성에 젖어들게 만든다.
 
이런 색감은 리산드로 알론소 감독의 <도원경>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작품은 원주민 학살이 자행되던 19세기 말 아르헨티나 오지 파타고니아에 부임한 덴마크 장교가 딸이 사랑의 도피를 하자 그 뒤를 추적하는 내용을 다룬다.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배경을 드러내지 않고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 등이 한 공간에 섞이며 마술적 리얼리즘의 색감을 보여준다. 서사에 대한 몰입 대신 대자연을 통해 인간을 개체화 시킨 점 역시 공통점을 지닌다.
 
두 작품 모두 식민지 역사의 아픔을 배경으로 하지만 특정한 사건이나 학살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사건을 재현하는 기록으로의 영화가 아닌 시대의 문제를 보편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드는 체험으로의 영화를 시도한다.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은 SF와 역사 장르에 큰 차이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트랜짓>에서 크리스티안 펫졸드 감독이 유럽 난민의 모습을 다루지만 시대상을 지우며 과거 현재 미래에도 모두 난민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처럼 한 국가와 민족을 향한 폭력이 특정 시대상에 머물지 않는 문제임을 표현한다.
 
역사를 서사를 갖춘 스토리를 통해 들려주기 보다는 그 시대와 공간을 형성하는 SF적인 질감을 통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이국적인 풍경을 담아낸 미술과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 자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블랙코미디의 색감은 영화적인 매력을 통해 관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요소들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처음 정식 개봉하는 루크레시아 마르텔 감독의 작품이란 점에서 그 작품세계에 빠져들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선사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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