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이 똑! 쌀 떨어졌단 말에, 간 떨어질 뻔.
남희한
누군가는 코로나로 인해 집에만 있다 보니 오래된 TV도 보이고 낡은 가구도 보여 나가서 쓸 돈으로 이런 것들을 바꿨다는데, 우리 집에선 냉장고와 쌀독이 비어버리는 바람에 다시 채워 넣기 급급하다.
우유 두 개 들이 한 팩을 사서 길게 가면 3일. 시리얼이라도 먹는 날엔 한 끼에 한 통을 비워 버리는 기염을 토한다. 이럴 땐 우유가 사실상 몸에 좋지 않다는 일부 학자들의 말을 믿어야 하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숙고하게 된다.
어머니가 오래간만에 본 손주들 준다고 사주신, 소쿠리 4개에 담긴 딸기를 3일 만에 클리어했고 제주도 지인으로부터 산 10kg 귤 한 상자가 5일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사과, 복숭아, 거봉, 뭐가 됐든 올망졸망 모인 아이들이 그 작은 입을 오물거리기 시작하면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먹고 돌아서면 배고픈 아이들. 삼시세끼는 물론이고 중간 중간 간식도 거를 수가 없다. 심심하면 입도 심심해지는지 자꾸 먹을 것을 찾는다. 이를 또 두고 보지 못하는 아내는 매 순간 분주하다. 호떡에 팬케이크에 감자전에... 과자로 대충 때우는 법이 없다. 아, 잘못 봤다. 과자도 이미 '순삭'했구나.
재작년인가 치킨을 한 마리 시켰다가 지금의 현실을 직감한 적이 있다. 예전 같았음 아이들에게 몇 조각으로 살점을 떼어주고 나면 아내와 내겐 맥주 안주 정도의 치킨은 남았었는데, 그날은 단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아이들 배로 흘러 들어갔다. 양손에 비닐장갑을 낀 아내와 내가 마주보며 했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어쩌지? 우리..."
그런 아이들이 2년간 살을 찌우고 배를 키웠다. 활동도 많은 탓에 식성이 어른 못지않다. 그나마 점심은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해결하던 아이들이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물다 보니 제대로 된 현실 자각 타임이 왔다. 아내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생활비를 올려 달라!!!"
따로 생활비를 받아쓰지도 않으면서 저런 멘트로 앞으로의 추가 지출을 경고했고 나는 불가항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앵겔 지수 50%나 50.1%나
퇴근길에 우유가 없다는 아내의 전화에 마트를 향했다. 우유만 사서 가리라 마음먹었건만 아이들이 좋아하던 과자들이 눈에 들어와 박힌다. '좋지도 않은 거, 뭣 하러'하며 지나가려는데 참... 결국 손에 쥐고 만다. 왜 이럴 때 꼭 아이들의 오물거리는 입이, 반달 모양으로 미소 짓는 눈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또 지갑이 더 열리고 만다.
개그맨 이봉원이 6억 원의 빚이 있었음에도 후배들에게 밥을 사주었다는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걱정스러워 하는 후배들에게 했다는 그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괜찮아, 빚이 6억이나 6억 7만 원이나..."
그래. 엥겔 지수 50%나 50.1%나. 엥겔 지수에 비례해서 행복 지수를 올려 버리면 될 일이다. 이 과자 묶음에 아이들의 미소가 있다. 초롱거릴 눈망울과 터져 나올 함성에 나 역시 미소가 지어진다. 투자 대비 효용이 제법 크다. 이렇게 오늘의 소비도 합리화되고 만다.
머지않아 아이들이 과자에 눈을 반짝이지 않을 그때, '한 때'가 될 지금이 아쉽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 때'의 횟수를 늘려주고 있는 이 코로나도 잘 이용해 보려 한다. 최대의 복수는 그럼에도 잘 사는 거라고 하지 않았던가. 코로나 보란 듯이 꼭 잘 먹고 잘 지내 볼 테다.
이 답답한 국면도 최대한 만끽해 보려는 다짐 덕분인지 과자 봉지가 제법 가벼워졌다. 자... 이제 쌀이 남았는데... 쌀도... 아, 이건 갈수록 더 무거워지겠구나. 하하. 별수 없네, 더 행복해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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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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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쌀 떨어졌어요" 2주만에 이 말을 또 듣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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