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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 '정종'은 사지 않겠습니다

정종은 일본 사케... 차례상에 우리 전통주를 올려보는 건 어떨까

등록 2021.09.06 09:45수정 2021.09.0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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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추석(秋夕)이다. 추석(한가위)은 농경사회였던 예로부터 지금까지 한국인에게 중요한 명절이었다. 조선 순조 때 학자인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849)'에는 8월 한가위의 세시풍속으로 '술집에서는 햅쌀로 술을 빚어 팔며 떡집에서는 햅쌀 송편과 무와 호박을 넣은 시루떡을 만든다'고 했다. 가을 추수를 끝내기 전에(조선시대 추수는 음력 9월) 덜익은 쌀로 만든 별미 오려송편('오려'란 올벼를 뜻함)과 햅쌀을 이용해 빚은 신도주(新稻酒)가 그러했다.

이제 집에서 햅쌀을 이용해 신도주를 만들어 차례에 사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차례가 끝난 다음 '음복'이라 하여 제사에 쓴 술이나 음식을 그 자리에서 나누어 먹는다. 이렇게 돌아가신 조상과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조상의 덕을 이어받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차례에 사용되었던 술들 상당수가 일본식 제조 방법을 이용한 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추석 또는 명절에 사용해온 술들 중 상당수가 '정종'이라 불리는 청주(현재의 주세법상 청주는 일본식 사케를 지칭)였다. 정종(正宗)은 1840년 일본의 한 양조장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883년, 부산의 이마니시 양조장이 조선 최초의 일본식 청주 공장을 세우고 정종(正宗)이란 청주를 생산했다.

정종이라는 이름을 상표명으로 사용하는 곳이 많다 보니 보통명사화되어 어느 양조장에서나 사용이 가능했다. 결국 정종(正宗)이라는 브랜드를 앞세운 술들이 지역마다 등장했다. 서울 만리동에 미모토정종(三巴正宗), 마산의 대전정종(大典正宗)과 정통평정종(井筒平正宗), 부산의 히시정종(菱正宗)과 벤쿄정종(勉强正宗), 대구에 와카마즈 정종(ワヵマツ正宗), 인천에 표정종(瓢正宗) 등 외에도 많은 양조장에서 '정종'을 생산했다.

'정종' 하면 좋은 술?
  

정종 광고 일제강점기시기 신문에 나온 정종 광고들 ⓒ 국립중앙도서관

 
해방 후에도 청주 제조장이 적산(敵産)으로 넘어오면서 일본 청주는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다. 자연스럽게 정종(正宗)하면 좋은 술을 뜻하는 단어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고 고급술로 인식 되었다. 이후에 명절에 좋은 술을 올린다는 생각에 일본식 '정종' 술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최근에도 '정종'이라는 단어를 우리의 맑은 술 또는 약주로 잘못 알고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차례주'라 해서 누룩을 사용하고 전통 제조법으로 만든 술의 사용 비율이 늘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가정에서는 '정종'을 제사에 사용하고는 한다. 최근 여자는 제사 음식만 만들고 남자는 제사만 지내는 이분법적 형태의 과거 잘못된 제사 문화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많아지고 있다. 술 역시 일본식 술인 '청주=정종'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 전통주를 사용하는 문화를 만들었으면 한다.

차례에 어떤 전통주를 사용할지 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차례상에 올라가는 술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 조선 시대 왕실의 으뜸가는 행사 중 하나였던 종묘제례에서도 막걸리와 맑은 술(약주)이 사용되었다.


종묘제례에서는 모두 세 차례 술을 올리는데, 첫 번째 올리는 '예제'는 단술(감주)이며, 두 번째 올리는 '앙제'는 술을 여과하지 않고 만든 탁한 술(막걸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맑은술(약주)을 올렸다. 아직도 부산·경남 지방에서는 제사나 차례상에 막걸리를 사용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전국에는 800개 정도의 지역 전통주 양조장들이 존재한다. 각 도에 적어도 1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양조장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술들은 지역의 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경우에 따라 햅쌀을 사용하기에 과거 조상에게 올렸던 신도주를 차례 상에 올리는 것이 된다.

또한, 제사 술은 조상들에게 좋은 술을 올리는 것도 있지만 '음복'을 통해 우리도 좋은 술을 마시게 된다. 올 추석 차례에는 '정종' 대신 지역에서 생산되는 지역 전통주들을 사용하는 것을 추천해 본다.
 

2021 우리술 품평회 수상제품 차례주로 사용하기에 좋은 전통주들 ⓒ 농림축산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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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추석 #차례주 #사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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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연구를 하는 농업연구사/ 경기도농업기술원 근무 / 전통주 연구로 대통령상(15년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 진흥) 및 행정자치부 "전통주의 달인" 수상(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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