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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잔에 담긴 빙하 조각에 과학계가 발칵

[신진화의 백 투더 퓨처] 남극 빙하로 과거 이산화탄소 농도 복원

등록 2021.10.19 07:01수정 2021.10.19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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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학자. 캐나다 앨버타 대학교에서 빙하로 과거 기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과거는 미래의 열쇠입니다. 미래 이산화탄소 농도를 예측하기 위해 과거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빙하 속에 기록된 80만 년 동안의 과거 이산화탄소 농도 기록을 여러분께 읽어드리겠습니다.[기자말]

남극 위를 걷는 남극 월동 대원 ⓒ 최한진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하다 '바로 이거야! (유레카)'를 외쳤다면, 빙하 시추를 위해 남극으로 간 프랑스 연구원 클로드 로리우스(Claude Lorius)에겐 위스키 한 잔이 유레카의 순간이었습니다.

1965년 그는 남극의 아델리랜드(Adélie Land)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고된 활동이 끝나고, 그는 밤마다 동료들과 식전주로 위스키를 마셨습니다. 그는 온 더 록 (on the rocks) 스타일로 위스키에 얼음을 넣어 마셨는데 그날 위스키에 넣어 마실 얼음이 똑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시추한 빙하에서 얼음 몇 조각 떼어다 위스키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얼음 조각에서 방울이 톡톡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샴페인을 따른 것처럼요. 그는 그 모습을 보고 빙하가 형성될 당시의 기체가 빙하 속에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남극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프랑스 그르노블에 위치한 빙하연구소(Laboratoire de glaciologie et géophysique de l' environnement)에서 빙하 속 포집된 기체를 이용해 이산화탄소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빙하 속 작은 공기 방울의 정체

과거 대기가 어떻게 빙하에 포집될 수 있었을까요? 남극 빙상의 두께는 평균적으로 약 2km입니다. 대륙에 눈이 쌓이면 최상부에는 신선한 눈 형태로 보존되어 있지만 60-110m 아래부터 눈이 위의 눈의 압력을 받아 얼음 상태가 됩니다. 눈과 얼음 사이에는 눈과 얼음의 중간 상태가 존재하는데 이를 펀(firn)이라고 합니다.

눈송이가 살아 있는 빙하의 최상부에서는 대기가 눈송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순환하다, 펀에서는 확산이라는 원리로 아래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러다 약 60-110m에서 최종적으로 대기가 빙하 속에 포집됩니다.
 

빙하에 포집된 공기 방울들 ⓒ British Antarctic Survey

 
아이스커피를 마실 때 얼음 표면을 들여다보신 적 있으신가요? 얼음 표면을 보면 투명합니다. 그러나 110m 이하에서 획득한 빙하를 들여다보면 빙하 안에 아주 작은 공기 방울이 보입니다. 당시의 대기인 것이지요. 이것은 얼음의 20% 정도 차지합니다. 방울 하나 하나가 과학자에겐 타임머신인 셈입니다.

과거 대기를 연구하려면 눈이 녹지 않고 연속적으로 쌓인 곳의 빙하로 해야 합니다. 그런 곳이 바로 남극과 그린란드입니다. 하지만 그린란드 빙하에는 먼지(dust) 함유량이 많아 먼지에 포함된 탄산칼슘과 빙하에 존재하는 산이 반응해 빙하 안에서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져 실제 과거 이산화탄소 농도를 복원하는데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와 반대로 남극은 먼지 양이 적어 과거 이산화탄소 농도를 정확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남극 빙하를 이용해 복원한 이산화탄소 농도는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를 반영합니다. 대기가 빙하 속에 포집될 때 즉각 포집되는 게 아니라 얼음 깊숙이 내려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몇 년치의 이산화탄소가 한꺼번에 빙하 속에 저장되기 때문입니다. 이산화탄소는 1년 이내에 전 지구적으로 잘 섞이기 때문에 남극에서 복원한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지구 전체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나타냅니다.

세상 단 하나의 샘플

남극의 면적이 1420만km²이니 빙하학자들에겐 어마어마한 연구 자원인 셈입니다. 남극 빙하는 눈들이 층층이 쌓여 책의 옆면처럼 층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빙하가 돔의 중앙부에서 돔의 가장자리로 흐르기 때문에 빙하를 수직적으로 들여다보면 층이 휘어져 있습니다. 층이 휘어지지 않고 똑바로 유지된 부분을 찾아 시추합니다.

대륙에 쌓인 빙하를 원통형 드릴기를 이용해 수직 방향으로 얼음을 채취하는 데 이를 시추라고 하고, 시추를 통해 얻은 원통형 빙하 샘플을 빙하 코어 (ice core)라고 합니다. 그렇게 획득한 빙하를 이용해, 빙하 속 방울들을 다 터트려 기체를 뽑아내고 그것을 가스 크로마토그래피(gas chromatography)라는 장치를 이용해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복원합니다.
 

2018년 한국 극지연구소 빙하코어연구팀이 남극 (Tourmaline plateau)에서 빙하를 시추하는 모습 ⓒ 한창희

 
실험이라는 게 참 어렵습니다. 내 실수로 실제 이산화탄소의 농도보다 더 높게 측정될 수 있고, 반대로 실제보다 낮게 측정될 수 있으니까요. 실수로 만들어진 데이터를 많은 사람이 실제 값인 줄 알고 믿을 수 있으니 실험자의 압박은 어마어마합니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어떠한 단서를 얻기 위해 과학자들은 오늘도 실험실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실험이 항상 잘 되면 좋겠지만 실험기기가 때때로 불안정해, 어렵게 남극에서 시추해온 빙하 샘플을 날려 먹을 수 있어, 매 순간 실험 장비 옆에서 긴장하며 실험을 합니다. 다시 남극에 가서 빙하코어를 시추하지 않는 이상 다시 얻을 수 없는 세상 단 하나의 샘플이니까요.

위스키 한 잔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1980년대부터 이산화탄소 농도 복원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남극 빙하를 이용해 80만 년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데이터를 복원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기사에서 들려드리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클로드 로리우스 박사의 일화는 영화 <빙하와 하늘>(원제: La glace et le ciel)로 제작되었습니다.
#이산화탄소 #빙하 #남극 #기후변화 #기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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