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꾸로 읽는 세계사> 전면개정판 표지
돌베개
<거꾸로 읽는 세계사>의 또 다른 특징은 제1차·2차 세계대전, 팔레스타인 내전, 베트남 전쟁, 러시아 혁명, 대공황 등 유독 전쟁과 재난 관련 사건들을 다룬다는 점이다. 인류의 진보와 문명의 발전이라는 밝음 뒤의 그림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명과 암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은 인간의 본성과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울하게 간첩죄를 뒤집어쓰고 반역자로 몰린 프랑스 장교 드레퓌스의 이야기를 통해 근대 프랑스 민주주의의 그늘을 드러낸다. 대공황 당시 영양 실조로 죽어가는 뉴욕 빈민가의 아이들과 파산한 경쟁 기업을 헐값에 사들이고 가격이 바닥에 떨어진 주식을 매집해 더 큰 부를 축적하는 이들의 대비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맹신이 가져온 비극을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언젠가 다가올지 모를 '제2의 대공황'에 어떻게 대비해야할지 과거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당부한다. "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교훈을 얻는다"는 역사학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결론이다.
"사회주의 세계체제가 무너진 1990년 이후 자본주의는 '더 나은 대안이 없는' 경제체제가 됐다. 컴퓨터와 정보통신기술의 혁명,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사회의 생산력은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불황과 '승자독식'으로 흐르는 양극화 현상에서 보듯, 인간은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을 임의로 통제하지 못한다. 대공황은 사람들이 더 많은 상품의 생산에 열광하고 물질적 부의 축적을 최고의 선으로 여기던 시기에 세상을 덮쳤다. 인간은 자신이 요술램프에서 불러낸 거인을 다루지 못하는 소년과 같았다. 오늘 우리는 그때와 얼마나 다를까?" - 129쪽
역사가의 글쓰기에 대한 성찰
유시민 작가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1980년대 지식 청년의 지적 반항'이라는 평을 들은 <거꾸로 읽는 세계사>에는 예전의 내가 있었다. 열정은 넘치지만 공부는 모자란, 열심히 배우지만 사유의 폭은 좁은, 의욕이 지나쳐 논리적 비약을 일삼는, 공감하기보다는 주장하는 데 급급한, 현학적 문장을 지성의 표현으로 여기는, 글쓰기의 기초가 약한 젊은이가 보였다." - 7쪽
바로 이것이 그가 구판을 절판시킨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구판을 재밌게 읽었던 사람으로서 작가의 이러한 표현에 그다지 동의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그럼 전면개정판은 얼마나 더 잘 썼다는 거야?'라는 생각에 기대가 됐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역시 믿고 읽는 유시민의 필력에 또 한 번 감탄할 따름이었다.
처음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읽을 때는 그저 새로운 지식을 빨아들이기에 바쁜 10대 청소년에 불과했지만, 세월이 흘러 역사로 '밥' 벌어먹고 살게 될 역사학도가 되어 다시 이 책을 접하니, 새로운 관점과 각오로 이 책을 읽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하면 쉽게 읽히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매일 같이 책과 논문을 읽고 발제문을 쓰면서 글을 다듬고 또 다듬지만, 그러한 글쓰기가 과연 대중들에게 통할 것인가 두려울 때가 많다. 학문적 엄밀함만 따지다보니 대중과 괴리된 어려운 단어나 문장으로 오히려 역사에 대한 '장벽'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런 점에서 스펀지 빨아들이듯 높은 흡입력을 자랑하는 유시민 작가의 글쓰기 능력은 새삼 부럽고 존경스러운 것이다.
역사란 학문은 정설처럼 보이는 것들이 나중에는 낡아빠진 학설로 치부되며 다시 쓰이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최신 연구성과들을 반영하고 세월의 흐름에 따른 작가의 농익은 사유로 다시 쓴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구판을 읽었던 이들에게도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세계사 공부의 즐거움을 가르쳐준 책, 역사의 그늘에 가리워진 사람들의 가치를 일깨워준 책. 나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앞으로도 개정 2판, 3판을 거듭하며 많은 이들에게 내가 받은 것과 같은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전면개정
유시민 (지은이),
돌베개,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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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서울강서구궁도협회 공항정(空港亭) 홍보이사 / '어느 대학생의 일본 내 독립운동사적지 탐방기', '다시 걷는 임정로드', '무강 문일민 평전', '활 배웁니다' 등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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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에 다시 쓴 책... 유시민 작가에게 또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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