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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개그냐?"... 잔인한 서바이벌에 고개 끄덕이는 까닭

[TV 리뷰] KBS 2TV <개승자-개그로 승부하는 자들>

21.11.22 10:57최종업데이트21.11.22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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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개승자-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의 한 장면 ⓒ KBS

 
KBS 2TV 예능 프로그램 <개승자-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이 웃음뒤에 가려진 '잔인한 서바이벌'의 진면목을 드러내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20일 방송된 <개승자> 2회에는 1라운드 '개그판정존 탈출 미션'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 팀들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다. 

총 13팀 중 지난 주에 이어 3번 박준형, 4번 김대희, 5번 김민경, 6번 김원효, 7번 변기수 팀의 무대가 공개 됐다. 앞서 첫 회에서 공개된 무대에서는 2번 이수근팀이 승리하여 처음으로 개그 판정존을 가장 먼저 탈출했고 1번 박성광팀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각 팀이 무대를 펼쳐 마지막까지 판정존에 남아있는 팀이 탈락하는 밀어내기 방식의 서바이벌이었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된 박준형은 송병철, 서남용, 류근지를 영입하며 '국민 남친'이라는 코너를 선보였다. 평균신장 185cm의 우월한 피지컬을 자랑하는 박준형 팀은 화끈한 상의탈의와 소품을 활용한 차력쇼, 느끼한 감성의 작업멘트로 여심을 공략하는 콘셉트를 내세웠다. 송병철은 준비한 소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가 하면,  허벅지 근육을 이용한 수박 격파도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 당황했지만 실수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위기를 탈출했다. 박준형 팀은 52대 47의 근소한 차이로 박성광팀을 누르고 개그 판정존을 탈출했다.

김대희는 박성호, 임재백, 김태원, 송중근을 섭외했다. 김대희 팀은 개그맨들이 한 자리에 모여 코너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콘셉트로 'D-1'라는 코너를 선보였다. 앞서 경연한 팀들의 리허설을 유심히 지켜본 김대희 팀은 상대팀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패러디하는 전략을 들고 나왔다. 박성광 팀이 했던 '전남 무안'애드리브를 "유치하다. 그런 개그는 박성광도 안 한다"고 디스하고, 이수근 팀의 노래 개그는 "너무 바쁠 때 어쩔 수 없이 하는 개그", 박준형 팀의 국민 남친을 "그게 개그냐"며 화를 내며 타박하는 식의 패턴이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없었고 개그 판정단은 76대 23이라는 압도적인 격차로 김대희 팀을 외면하며 박성광 팀이 살아남았다. 

최근 여성 희극인 중 대세로 꼽히는 김민경은 정승환, 송영길, 박소라, 정해철과 팀을 꾸려서 '이별 중'이라는 코너를 준비했다. 진지한 연애담 속에서 김민경의 체구와 괴력을 감당하지 못하는 멤버들의 리액션이 웃음포인트였다. 김민경 팀은 리허설에서 동선이 좀처럼 맞지 않아 불안감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본 무대에서는 몸을 날린 남성 멤버들의 열연에 힘입어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개그 판정에서는 69대 30으로 김대희 팀을 꺾고 살아남았다.

김원효 팀은 이광섭, 조승희, 송필근과 팀을 꾸렸다. 김원효 팀은 <개그콘서트> 추억이 남아 있는 연습실에서 팀워크를 다졌다.  김원효의 아내 심진화가 응원차 간식을 사들고 연습실을 방문하여 내조의 여왕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심진화는 <개승자> 상금이 1억 원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 "무조건 우승한다는 마음으로 참여를 해라"며 김원효를 독려했다. 김원효는 이광섭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검사로 변신해 특유의 능청스러운 입담과 반전 개그를 선보였다. 김원효 팀은 73대 26으로 김대희 팀을 여유있게 제쳤다.

변기수 팀은 정범균, 장기영, 김승진, 박형민과 함께 힙합 문화와 아티스트들을 패러디한 '힙쟁이' 무대를 준비했다. 변기수 팀은 경언 전 정범균의 공연에서 시험삼아 새로운 코너를 올렸지만 반응이 애매하자 위기감을 느끼고 중간에 아이디어를 급히 교체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리허설에서도 내용을 계속 수정할 정도로 불안감이 있었지만, 변기수 팀은 힙합의 저항 코드를 살려서 KBS과 방송심의까지 거침없이 비판하는 풍자 개그로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변기수 팀은 68대 31로 승리하며 생존에 성공했다.
 

KBS 2TV <개승자-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의 한 장면 ⓒ KBS

 
김대희 팀은 충격의 4연패에 빠지며 표정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동료들도 예상치못한 베테랑의 부진과 남일같지 않은 상황에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김대희는 "개승자의 대결 구도나 콘셉트를 들었을 때 '좀 잔인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실제 1라운드를 하면서 몸으로 부딪쳐 보니까 생각보다 더 잔인하다는게 느껴졌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베테랑 희극인들에게는 잔인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공개 코미디에 왜 서바이벌 형식이 도입될 수밖에 없는지 확인시켜준 무대이기도 했다. 트렌드에 뒤떨어지고 진부한 개그스타일에 판정단의 즉결 평가는 냉정했다.

김대희 팀은 4연패를 당하는 동안 상대팀과 모두 더블 스코어 이상의 큰 격차를 드러냈고 가장 많이 득표한 게 31표(VS 변기수 팀)에 불과할 정도로 판정단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 대기실에서 지켜보던 절친 김준호조차 김대희 팀의 패인을 짚으며 학연으로 엮인 팀 구성과 함께 "잡담만 하다가 끝났다"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하지만 살아남은 팀들도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 1라운드 13팀 중 절반을 넘긴 7팀의 무대가 공개된 가운데 크게 인상이 남거나 다음 무대가 더 기대된다는 느낌이 들만큼 강렬한 한 방을 남긴 팀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모두 <개그콘서트> 시절에 충분히 보여준 기존의 캐릭터와 이미지를 재탕하는 데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신공격, 가학성, 외모를 이용한 선입견 등 기존 한국식 개그에서 지적받던 문제점들도 여전했다. <개승자>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갈수록 하향평준화된 <개콘>이 왜 시대에 뒤처진 프로그램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단지 희극인들의 노력과 아이디어가 부족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개승자>는 단지  완성된 코너만을 보여주던 <개콘>과 달리, 아이디어 회의와 리허설을 통하여 희극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하나의 무대를 준비하는지 그 과정의 어려움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만 보다 빠르고 자극적인 유투브-SNS 문화에 익숙해진 MZ세대의 감성을, 짜여진 대본 중심의 콩트와 낡은 웃음 공식에만 익숙한 <개콘> 세대가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과도기적 현상에 가깝다.

박성광도 직접 언급했듯이 희극인들에게 "재미없다"는 말보다 더 잔혹한 것은 없다. 희극인들에게는 과거의 영광을 벗어나 달라진 요즘 웃음 트렌드를 피부로 체험하고 자신들의 현 주소를 객관화하여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다.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팬들의 판정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개승자>의 서바이벌 무대는 잔인하고 냉정하지만,  코미디 트렌드가 나아가야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의미에서 기꺼이 감수해야할 과정이다. 
개승자 서바이벌 김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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