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크업 용품 장보는 중 2학기 초 메이크업팀 아이들과 함께.
안사을
모든 곡을 다 선보일 수는 없고, <우리의 꿈을 노래해>와 <아름다운 대화>를 공연하기로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공연 소식을 반가워했다. 신기해하기도 했다. 심기일전해서 열심히 연습했고 각종 의상과 소품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다시 점검하고 수정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부의 '원격수업' 방침이 내려왔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일주일 전부터 전교생이 등교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공연은 수능 시험 바로 다음 날이었고, 해당 기간 연습을 하지 않으면 무대에 서는 것이 불가능했다.
교장, 교감, 부장 선생님들과 함께 회의했고 다른 교사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 선에서 해당 학생들(9명)만 등교시키기로 했다. 물론 학생들에게 먼저 동의를 구했다. 아이들은 학교를 열어주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집이 너무 먼 학생들은 기숙사를 열어주고 본인이 관리하기로 했다.
이날부터 우리의 작은 전쟁이 시작되었다. 마치 이 뮤지컬의 탄생 배경처럼 누군가는 착실하게 시간을 지켜서 열심히 연습한 반면, 몇 명의 아이들은 단 한 번도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속이 타는 것은 제 시간을 지켜 준 아이들이었다.
약속 시간은 오전 10시. 12시가 되어서야 빼꼼히 얼굴을 보이는 아이에게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겸연쩍은 표정으로 학생이 말했고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와 표정으로, 그렇지만 대단히 차분하게 응했다.
"쌤. 왜 화 안 내요?"
"내가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어?"
"네..."
"물론 선생님은 화가 났었어. 그런데 네 얼굴을 보는 순간 화가 다 풀렸어.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네. 멀리서 온 것만도 어디야. 대신 나 말고, 저기서 죽치고 앉아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린 네 친구들에게 더 미안해했으면 좋겠다."
"네. 죄송합니다."
"난 앞으로도 화를 내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행동을 할지는 네가 정해."
그 학생이 다음 날 함께 고산 읍내에서 밥을 먹으면서 나에게 한 고백이 다시 한번 나의 마음을 울렸다.
"쌤. 이렇게 막상 나와서 같이 연습하고, 나와서 밥 먹으면서 대화하고 하면 진짜 좋고 재밌거든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는 게 진짜 미치도록 힘들어요. 그래서 자꾸 늦는 거예요. 연습하는 거는 진짜 좋아요."
당연히 완벽하지 않고 부족함 많은 학생이지만 그 진심만큼은 누구의 것보다 소중하고 예뻤다. 이러한 고백이 간간이 있었기에 우리는 함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고 서로를 북돋울 수 있었다.
수능 감독을 마치고 나는 다시 학교로 출근했다. 아이들과 저녁 8시에 만나서 마지막 연습을 하기로 했다. 다음 날 9시에 전주로 출발해야 하니 전원 모두 기숙사에서 재워주기로 했다. 밤 10시쯤에는 처음으로 동선이 흐트러지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이 되었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곡을 끝마쳤다.
대단히 수줍은 태도와 눈빛을 가졌던 어떤 학생은 집에서 맹연습을 했는지, 아마추어 배우 뺨치는 수준의 몸짓과 시선 처리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실제 무대에서 더욱 당차게 발휘되었다.
공연 당일 아침, 단 한 명도 늦지 않고 교육청에서 보내준 차량에 탑승했다. 리허설 내내 교육청 관계자들은 학생들을 향해 사랑이 가득 넘치는 시선을 보냈다. 어쩜 그리 아이들이 예쁘냐는 찬사를 몇 번이고 들었다. "그러게요!"를 외치는 나의 눈은 마치 누운 초승달처럼 눈웃음을 가득 띠고 있었을 것이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시각 우리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먼저 내가 나가, 뮤지컬 교과와 본 창작 뮤지컬의 배경 및 내용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는 말을 했다. 뒤이어 <우리의 꿈을 노래해>가 시작되었다. 무대의 커튼 뒤에서, 새내기 교사 역을 맡은 학생과 함께 숨을 죽이고 서 있었다.
▲공연사진1 <우리의 꿈을 노래해> 중 자신의 파트를 부르는 학생, 그리고 곡의 분위기에 맞는 안무로 함께하는 아이들.
안사을
이 공연이 무대에서 제대로 시작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성공적 경험이었을 것이다. 중간에 실수를 하건 말건 그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힘을 내서 연습하면 된다. 학생이란 그래도 되는 존재이니 말이다.
<아름다운 대화>까지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본교의 선생님들 몇 분이 낸 소리가 가장 컸다. 누구보다도 이 분들의 눈에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예뻐 보였을 테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공연의 영상을 싣는 것에 대해 대단히 많이 고민했다. 학생들의 얼굴이 보이고, 부족한 모습이 보이고,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부족한 공연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공개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10대의 내면적 고민과 성장의 모습을 그저 아름다운 눈길로 바라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또한 모든 아이들에게는 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더욱 안전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회와 가정, 그리고 학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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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해왔습니다.
2025년, 한 아이의 아빠가 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쓰는 육아일기를 통해 한 아이의 양육 뿐 아니라 한국의 교육, 인류와 생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민하는 시민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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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가 뭐야?' 이 뮤지컬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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