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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인간의 죽음, 비극적 살인인가 실패한 실험인가

[리뷰] EBS <공상가들>

21.12.10 10:53최종업데이트21.12.1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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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토크쇼 <공상가들(The dreamers)>이 미래 범죄를 바라보는 독특한 상상력과 철학적 통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9일 방송된 EBS <공상가들> 첫 회에서는 호스트를 맡은 배우 하석진이 프로파일러 김윤희, 뇌과학자 장동선과 함께 등장해 미래의 공간에서 벌어진 가상의 범죄를 파헤치는 시간을 가졌다.
 
토크쇼의 무대가 된 '테서렉트'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모티브로 했는데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공을 초월한 곳이라는 컨셉트였다. 마치 SF 영화의 한 장면같은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공간에서 세 사람이 처음으로 만났다.
 
여기서 하석진은 평소에 공상을 즐기는지 첫 질문을 던졌다. 장동선은 "과학자의 본업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공상이라도, 그안에서 관찰하고 실험하면서 새로운 가설을 세울 수 있기에 공상과 과학은 사실 뗄수 없는 관계다"라고 설명했다. 김윤희는 "프로파일러다보니 미래에는 어떤 범죄가 발생하고 어떻게 대비해야할지에 대한 공상을 많이 한다. 그러다보니 좀 어둡고 공포스러운 공상을 많이 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범죄는 어떤 모습일까. 장동선은 "미래의 세상에는 물리적인 세상의 나와 디지털 공간 속의 내가 하나가 된다. 누군가의 아이덴티티(정체성)을 훔쳐가는 범죄가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전망했다. 
 
김윤희는 "정신 조작의 범죄가 성행할 것 같다. 요즘에 그루밍이나 가스라이팅 범죄가 많듯이 다른 사람의 의식을 조작하는 거다"라며 "미래에도 범죄자들은 범죄 욕구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타인의 의식을 조작하여 범죄욕구를 충족하는 거다"라고 전망했다.
 
세 사람은 테서렉트에서 먼 가상 미래속 범죄분석관의 기억을 재현한다는 설정으로 첫 공상의 문을 열었다. 첫 사건은 2094년 미래에 벌어진 연쇄살인사건이었다.
 
2094년 12월 26일 눈내리는 늦은 밤, 뒷골목에 시신이 버려져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의 모습은 충격적이게도 몸통은 온전하지만 머리가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다. 피해자는 이십대 초중반의 여성, 신원은 미상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또 한 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놀랍게도 첫 번째 피해자와 신상에서 살해 방식까지 모두 똑같았다. 이번에도 현장에 남은 증거나 흔적이 전혀 없었다. 그 뒤로도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된 시신이 무려 5구까지 계속 발견됐다. 동일범의 소행으로 인한 연쇄살인이었다.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십대 초중반의 여성, 더미(인공 신체)에 의식을 이동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미래 사회는 마인드 업로딩(인간의 마음을 데이터로 변환한 이후 컴퓨터에 전송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의식을 늙지도 죽지도 않는 인공신체로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두뇌의 모든 정보를 서버에 업로드하고 더미의 양자 두뇌에 다운로드하는 방식이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이 모든 질병을 극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원한다면 영원히 사는 것도 가능했다.
 
장동선은 "현재도 마인드 업로딩에 대한 논의가 실제 진행중이다. 나라는 존재가 몸을 바꿔가면서 살 수 있게 되니까 영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지구상에 무한히 많이 살 수는 없으니까 인구나 출산 통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마인드 업로딩은 천재 뇌과학자 리사 연이 창립한 '이터널 라이프'라는 회사에서 서비스 중이었다. 회사를 통하여 피해자들의 신원을 파악한 결과, 피해자들은 모두 무연고에 기초연급 수급자라는 공통점이 발견됐다. 또한 희생자의 더미를 분석하던 중 그녀들의 양자두뇌 확률이 완전히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희생자 다섯이 똑같은 두뇌를 같고 있다는 것, 즉 그녀들은 모두 복제인간이었다.
 
미래 사회에서는 원래 의식을 더미로 이동하는 경우에 복제를 방지하기 위하여 원래의 두뇌와 업로드된 의식은 자동으로 파괴된다. 인간의 존엄성 추락 등 여러 가지 심각한 사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의식 복제는 엄격히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고 위반시 살인보다 무거운 죄가 선언됐다.
 
희생자가 복제인간으로 밝혀지면서 사건의 실마리가 풀렸다. 마인드 업로딩 서비스를 직접 운영하고 복제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바로 이터널 라이프의 CEO 리사 연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리사 연의 행방을 추적하는 와중에 다섯 희생자들이 규칙적으로 방문하던 장소가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바로 MTD라고 불리우는 미래의 정신질환 치료소였다. 다섯 복제인간이 모두 MTD를 이용했다는 것은 공통의 정신질환이 있다는 의미였다. 희생자들이 방문한 MTD의 이용자 명단을 조사한 결과, 같은 증세로 치료받은 환자는 희생자들 포함 여자 여섯에 남자 하나, 총 7명이었다. 이중 희생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환자 한 명은 바로 리사 연이었다.
 
이로써 리사 연이 자신의 복제인간을 대거 만들어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리사 연은 얼마 후 MTD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찰이 리사 연을 체포하기 전에 의문의 남성 한 명이 나타나 리사 연을 차량에 태우고 달아났다. 경찰은 추격전 끝에 저항하던 남자를 붙잡고 차안에서 쓰러져 있던 리사 연을 구해냈다. 남성은 희생자와 리사 연이 다니던 MTD에서 똑같은 우울증을 앓고있던 또다른 인물이자 유일한 남성이었다.
 
목숨을 건진 리사 연이 마침내 진상을 털어놓았다. 리사 연은 "마인드 업로딩이 흔해지고 번식과 복제가 강력히 통제되는 시대, 인간의 새로운 종 번식과 통제의 방법으로 마인드 업로딩과 더미를 활용하면 어떨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하여 실험을 하나 했다"고 고백했다. 기억조작을 한 뒤에 본인의 의식을 다섯 더미에 복제한 것. 그리고 리사 연이 하나 더 준비한 것은 여성이 아닌 남성의 더미였다.

문제는 아무리 기억을 조작해도 어긋난 신체-두뇌상이 맞아떨어지지 않는 것. 두뇌는 여성, 육체는 남성이었기에 마지막 실험체는 극심한 혼란을 느끼고 방황했다. 도무지 통제가 되지않는 감정적 동요의 원인을 찾던 실험체는,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진실을 알게 됐고 복수를 결심했다. 이 세상에 불완전한 리사 연이라는 존재는 자신을 빼고 모두 없애버리고 싶었다는 것. 다섯 희생자가 모두 죽고 리사 연만 남은 상태였다.
 
사건의 진범은 바로 리사 연의 유일한 남성 복제인간이었다. 리사 연은 "딸만 낳으라는 법은 없었으니까"라며 복제인간을 자식처럼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사 연은 복제인간이 죽이려고 했던 자신을 오히려 '불완전한 오리지널'이라고 자조하며 "모두 내 잘못이다. 내 호기심 때문에, 실험은 실패한 셈"이라고 자백했다. 사건분석관의 기억은 여기서 끝났다.
 
장동선은 "미래에 마인드 업로딩이라는 기술이 가능해진다고 해도, 완벽한 기술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윤희는 "그 남성(범인)은 가장 불완전한 존재였기 때문에 가장 완전해지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 죽이고 자신만 존재함으로서 그 완성을 실현하려 했던 것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장동선은 마인드 업로딩에 대한 논란은 이미 진행형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이나 랜달 코일 등은 마인드 업로딩은 2045년 정도면 실제 구현가능한 기술이라고 전망했다. 인간의 의식을 디코딩해서 데이터로 올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뇌과학자들도 있다. '나'라는 존재는 뇌세포의 연결로 이루어져있고, 이 신경세포의 연결을 완전히 똑같이 어딘가에 구현할수 있다면 나의 존재를 복제도 가능하다는 것
 
하석진은 마인드 업로딩이 실제 가능하고 상용화된다면 영생을 이유로 그 서비스를 택할 것인가 질문했다. 장동선은 "나라는 존재는 시간과 공간과 관계 속에 단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내 주변 환경과의 관계속의 나이기 때문에 모든 세상과 관계까지 똑같이 복제하지 않는다면 그건 진정한 내가 아닌 사진이나 비디오에 가깝다"며 마인드 업로딩에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김윤희 역시 "나이가 들고 한계와 죽음이라는 것도 생각하면서 '불완전한 나'를 좋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석진도 공감하면서 "우리가 시간이라는 압박을 느끼다보니 더 열심히 살면서 삶의 의욕과 활력소를 찾게된다. 그런데 영생이란 게 보장되는 순간 대충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고백했다.
 
장동선은 "(영생이 주어지면) 존재에 대한 소중함이 줄어들 것 같다. 어차피 이거 복붙(복사해서 붙이기)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때의 나라는 존재와, 내가 사라져 버리는 존재라고 느낄 때 나에 대한 소중함은 다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하석진은 섬뜩한 상상을 꺼냈다. "게임을 할 때 어떤 미션을 실패하면 다시 불러오기를 한다. 범죄자들이 범죄를 일으켜놓고 다시 예전 의식으로 돌아와서 범행 전의 의식을 불러와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밝혔다.

김윤희는 "범죄자들의 대부분은 자아 정체감이 약하다. 의식이 계속 더미로 이동한다면 내가 과연 누굴까. 이 사람이 나도 아닌데 범죄를 저질러도 상관없잖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며 정체성의 혼란속에서 도덕성이나 죄책감도 희미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렇다면 복제인간의 범죄는 살인사건일까, 실패한 실험일까. 김윤희는 "리사 연은 분명히 인간을 복제한 것이니 불법에 해당한다. 복제인간 5명에 대하여 살인죄가 성립되느냐의 문제인데, 저는 살인이라고 본다. 복제인간들은 각기 자신을 자아로서 다른 객체로서 인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장동선은 "복제인간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누군가 SNS에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고 했을 때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속 인물에게 표정도 짓고 웃게 만들 수도 있다. 더 나아가면 사람 두뇌속의 감정과 기억을 SNS에 업로드하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다. 이런 것이 마인드 업로딩의 미래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일부 또는 전체를 업로드한 것이지만 내가 나의 데이터를 지운다고 살인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다만 장동선은 "복제인간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한 주제다. '어디까지가 인간인가'를 정하는 것 과학자나 판사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하며 "과학자의 시각에서는 실험에 불과할 수 있지만, 사회적 합의에 따라서는 심각한 살인이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윤희는 "어쩌면 리사 연의 의도는 아이를 가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김윤희는 "복제인간처럼 나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 나와 닮았지만 나와 연결되어 있는 또다른 존재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출산이 통제된 시대에 리사연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당시엔 복제밖에 없었을 테니까"라며 여성의 입장에서 리사 연의 심경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장동선은 "모든 존재는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하고, 보통 사람들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으면서 흔적을 남기려하듯이, 마인드 업로딩도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싶은 본능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하석진은 "마인드 업로딩같은 기술이 가능해진 미래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봤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원치않는데 후손을 남길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리사 연이 범죄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히며 "미래의 가상스토리가 굉장히 철학적으로 다가온다"고 고백했다. 이어진 다음주 예고편에서는 '화성 폭동사건'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높여다.
 
<공상가들>은 극도로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계의 범죄 해결 과정을 들려주고 그에 관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이다. 2090년대 미래 도시, 화성, 안드로이드 공장 등 미래의 풍경을 전문가들의 조언과 XR 기술을 활용해 구현해낸 뛰어난 비주얼에, 실제 미래에서 벌어질수 있는 범죄 이야기가 결합되어 색다른 긴장감을 선사했다.
 
자칫 복잡하거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될 수 있는 과학과 미래를 다루면서도 치밀한 구성과 전문가들의 분석이 더해지며 시청자들이 마치 한 편의 영화 리뷰 프로그램을 보는 듯 흥미진진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이면에는 과연 '무엇이 인간을 진정한 인간답게 만드는가'에 대한 철학적 담론도 담겨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차별화되는 특별한 능력은 바로 현재를 넘어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고 그려볼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 아직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라는 격언처럼,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언젠가 우리 앞에 다가올 현실이기도 하다.
공상가들 하석진 미래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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